목차
1.소개
2.감상의 길잡이
3.핵심정리
4.시구 풀이
2.감상의 길잡이
3.핵심정리
4.시구 풀이
본문내용
당에는 등나무도 심었다. 집 뒤로는 언덕을 향해 길이 나 있고, 그 언덕에 올라서면 바다가 보인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시는 바로 그 바닷가 보이는 언덕에서 얻은 시일 것이다.
▶성격 : 서정적, 낭만적, 목가적, 전원적
▶어조 : 전원적, 목가적 어조
▶특징 : ① 반복적 운율에 의한 시상의 안정감, ② 비유적 표현
▶구성 : ① 산에서 바다를 보던 난이와 나(제1연)
② 작은 짐승처럼 바다를 바라다보던 난이와 나(제2연)
③ 자연에 동화된 난이와 나(제3연)
④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던 난이와 나(제4연)
▶제재 : 작은 짐승.(자연)
▶주제 : 자연 친화의 마음
이 시의 문맥을 통해 현재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면 모든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으로 되있는 것으로 보아 화자의 현재는 평화롭지도, 순수하지도 않음을 반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3연에서는 자연을 의인화하여,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제2연에서 화자와 난이는 ‘작은 짐승처럼’이라는 직유로 표현되다가 제4연에서
‘작은 짐승이었다’로 바뀌고 있다. 이는 난이와 나가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된 경지에 올음을 알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에서 ‘난이’는 ‘나’의 과거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존재이고, 또
‘난이’는 ‘나’에게 대자연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을 느끼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시적 자아가 과거의 자신과 난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난이는 과거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존재가 되고, 화자는 난이를 통해 자연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을 느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난이에 대한 그리움에서 자연에 대한 노래로 옮아 가게 되고, 마지막에서는 자신과 난이를 ‘작은 짐승’에 비유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었던 유년 시절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상징적 존재인 ‘난이’를 통해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동화적 성격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하여 시인은 “상처 입은 작은 역정의 회고”라는 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장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로 미루어 볼 때, ‘常無慾以觀其妙(사람이 항상 욕심이 없으면 묘문을 깨달을 수 있다.)’의 견지에서 본다면 인간 역시 한 마리의 작은 짐승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는 도교적 사상 근원이 이 작품에 깔려 있지만, 한편 망국의 백성으로 짓밟힐 때로 짓밟힌 그 당시의 우리는 차라리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미쳐서 날뛰는 일제를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던 고달픈 작자의 심정을 읽어 주었다면 이 시가 지닌 정신에 접근한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단순히 동화적 성격의,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동경의 시로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시인이 망국의 백성으로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면, 차라리 이 시에는 자연에로의 회귀를 통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인의 소극적 저항이 스며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아름다운 동화 속의 세계는 결국 비애를 간직한 유년 시절이었던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시의 화자는 순수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현재 화자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모든 문장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음으로 보아 화자의 현재가 평화롭지도 순수하지도 않다는 것을 역(逆)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화자 혹은 시인이 처해 있던 1930년대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이 시에 표현된 과거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에 나타난 이상적인 세계와 달리 실재했던 것이지만, 이미 1930년대의 시점에서는 ‘그 먼 나라’처럼 되어 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어느덧 성인이 되어 거칠고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 그 순수하고 평화롭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의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말없이 앉아서 /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자연에 귀속되기를 바라는 천진 난만한 어린이의 모습만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의 눈에 어리었을,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낄 수 있을 때, 이 시를 제대로 감상한 것이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미래에 대한 어떤 전망도, 현실 극복의 의지도 보여 주지 않는 것까지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격 : 서정적, 낭만적, 목가적, 전원적
▶어조 : 전원적, 목가적 어조
▶특징 : ① 반복적 운율에 의한 시상의 안정감, ② 비유적 표현
▶구성 : ① 산에서 바다를 보던 난이와 나(제1연)
② 작은 짐승처럼 바다를 바라다보던 난이와 나(제2연)
③ 자연에 동화된 난이와 나(제3연)
④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던 난이와 나(제4연)
▶제재 : 작은 짐승.(자연)
▶주제 : 자연 친화의 마음
이 시의 문맥을 통해 현재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면 모든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으로 되있는 것으로 보아 화자의 현재는 평화롭지도, 순수하지도 않음을 반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3연에서는 자연을 의인화하여,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제2연에서 화자와 난이는 ‘작은 짐승처럼’이라는 직유로 표현되다가 제4연에서
‘작은 짐승이었다’로 바뀌고 있다. 이는 난이와 나가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된 경지에 올음을 알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에서 ‘난이’는 ‘나’의 과거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존재이고, 또
‘난이’는 ‘나’에게 대자연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을 느끼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시적 자아가 과거의 자신과 난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난이는 과거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존재가 되고, 화자는 난이를 통해 자연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을 느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난이에 대한 그리움에서 자연에 대한 노래로 옮아 가게 되고, 마지막에서는 자신과 난이를 ‘작은 짐승’에 비유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었던 유년 시절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상징적 존재인 ‘난이’를 통해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동화적 성격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하여 시인은 “상처 입은 작은 역정의 회고”라는 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장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로 미루어 볼 때, ‘常無慾以觀其妙(사람이 항상 욕심이 없으면 묘문을 깨달을 수 있다.)’의 견지에서 본다면 인간 역시 한 마리의 작은 짐승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는 도교적 사상 근원이 이 작품에 깔려 있지만, 한편 망국의 백성으로 짓밟힐 때로 짓밟힌 그 당시의 우리는 차라리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미쳐서 날뛰는 일제를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던 고달픈 작자의 심정을 읽어 주었다면 이 시가 지닌 정신에 접근한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단순히 동화적 성격의,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동경의 시로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시인이 망국의 백성으로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면, 차라리 이 시에는 자연에로의 회귀를 통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인의 소극적 저항이 스며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아름다운 동화 속의 세계는 결국 비애를 간직한 유년 시절이었던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시의 화자는 순수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현재 화자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모든 문장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음으로 보아 화자의 현재가 평화롭지도 순수하지도 않다는 것을 역(逆)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화자 혹은 시인이 처해 있던 1930년대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이 시에 표현된 과거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에 나타난 이상적인 세계와 달리 실재했던 것이지만, 이미 1930년대의 시점에서는 ‘그 먼 나라’처럼 되어 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어느덧 성인이 되어 거칠고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 그 순수하고 평화롭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의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말없이 앉아서 /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자연에 귀속되기를 바라는 천진 난만한 어린이의 모습만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의 눈에 어리었을,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낄 수 있을 때, 이 시를 제대로 감상한 것이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미래에 대한 어떤 전망도, 현실 극복의 의지도 보여 주지 않는 것까지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