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석촌 - 김기림 - 작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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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편석촌 - 김기림 - 작가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생애와 활동
2. 김기림과 모더니즘
3. 김기림의 시론
4. 작품경향
5.문학사적 의의
-침고문헌

본문내용

김기림은 1908년 5월 11일(음력 4월12일)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면 임명동(臨溟洞) 276번지에서 선산 김씨 병언(秉淵)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의 6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사업에서 큰돈을 벌어와 넓은 과수원과 농토를 사들여 부유하게 자랐으며, 마을에 학교를 세워 김기림의 백부를 교장 겸 교사로 하여 마을의 아동들을 모아 국문, 산수, 한문 등을 가르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학교는 한일합방이 되자 곧바로 일본인들이 보통학교를 세운다고 해서 강제로 빼앗기고 이에 김기림의 백부는 큰 충격을 받고 두문불출하게 된다. 이것이 김기림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일본인이 세운 경성고보를 가지 않고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그의 백부의 민족정신은 은연중에 김기림에게 영향을 주어, 김기림은 그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생활에도 불구하고 신문기자 생활을 하고 문단생활을 할 때도 친일적인 글을 거의 쓰지 않는다.
김기림은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경성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고,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냈다. 그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29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작품 활동도 비롯되었는데, 이 기간이 김기림에게는 평생을 통해 젊음의 정열을 불태운 시기라 하겠다. 1933년 그는 이종명과 김유영의 발기로 조직된 <구인회>에 가담한다. 이 모임은 처음에는 동인활동이기 보다는 친한 친구들의 모임이었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문학보다는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로 박태원의 소개로 만난 이상과의 만남은 김기림과 이상이 가장 친한 친구로 남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시집 「氣象圖」와 「太陽의 風俗」과 또 다른 시편들, 그리고 비평, 수필, 소설 등 엄청난 작품들이 이 무렵에 쓰였다. 후에 조선일보사를 휴직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호쿠대학를 마치고 돌아와 복직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고 신문도 폐간되어 그는 고향 가까이 있는 경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게 된다.
해방 이후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으나 정국은 날로 혼미를 거듭하고 민족분단으로 잠시 시류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바로 자신의 길을 찾아 마음을 가다듬어 대학의 강단에서 강의하면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다. 이 무렵의 활발한 활동은 이북에 있는 고향의 가족들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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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기타(docx)
  • 자료번호#1090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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