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부전 속요에 대한 일고찰 - 고전시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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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사 부전 속요에 대한 일고찰 - 고전시가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목자가 나라를 얻는다.’는 노래가 있었다.
<『대통운부군옥』 권9 42판>
③ 木子得國諸 我太泰敵大王辛禮時寫待中 與崔瑩決策攻違瑩及我太祖日 實人欲攻選陽 聊等宜盡力 太祖 今者出師有四不可 以小道大一不可 夏月發兵二不可 學國遠正委乘其虛三不可 時方暑雨解 大軍淚四不可 太祖退謂瑩明日宜以此言復瑩諾 夜瑩復入願母納他言 明日編太祖 業興 師不可中止 柳不見李子松耶 太祖對 子松雖死 美名華於後世 等雖生 失計 何用鼓 網不聽 太退而弟位日 生民之網 自此始 左右都統使遺人告崔瑩 軍多戰死 水深難以行軍 瑩不以鳥意、太祖論諸將 若犯上國之境獲罪天子 宗社生民之網立至 蓋與等見王親陳福福 徐君則之惡以安生靈乎 諸將 東方社樓安危在公一身 敢不堆命於是回軍 度顆綠江 太祖乘白馬 細形白號 軍中望見相調 古今來世 安有如此人乎 時童諸有木子得國之語 軍民無老 少歌之 太祖由仁門入 都人男女持酒樂迎勞 太祖建黃龍大雄 使吹大觸一通 瑩每正討 諸將不用轉 獨太祖於馬前吹轉 故都人聞轉皆喜 禮與寧如及瑩在八角願 瑩不肯出 郭忠輔等直入願中索瑩 禮執瑩手別 瑩再拜隨忠輔出 太祖謂瑩 若此事變 非本心述大義 非堆國家未寧 人民勞困免至天 故不得烏 好去好去相對而位 逢流瑩手高縣 先是童議 西京城外火色 安州城外煙光 往來其間李元帥 願言救濟熱蒼 平壞城中夜火 安州城外煙 黃龍雄騎 大觸一聲來軍前 種際田中草黃玄 木子得國今宜然
<『洛下生文集』 海東樂府>
목자득국요 우리 태조 강헌대왕은 신우 때 시중이었다. 신우는 최영과 더불어 요동을 공격하기로 정책을 결정하고, 최영과 우리 태조를 불러 말하기를 “과인이 요양을 공격하기를 원하니, 경들은 마땅히 힘을 다하시오”하였다. 태조가 말하기를 “지금 군사를 내는 데 네 가지 불가함이 있으니,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이 첫 번째 불가함이요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두 번째 불가함이요 왜구가 빈틈을 노려 올 염려가 있으니 세 번째 불가함이요, 장마가 들면 활이 풀리고 질병이 퍼질 염려가 있는 것이 네 번째 불가함입니다.”태
조가 물러 나와 최영에게 이르기를 “내일 마땅히 이 말을 다시 올립시다.” 최영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밤에 최영이 다시 들어가 원컨데 다른 말을 듣지 말라고 아뢰었다. 다음날 신우가 태조를 불러 이르기를 “일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군사를 멈출 수 없다. (그리고) 그대는 이자송(의 일)을 알지 못하는가’하였다. 태조가 대하여 이르기를 “이자송은 비록 죽었으나 그 이름이 후세에 드리웠고 신등 나라 얻네” 라는 말이 있었는데, 병사와 백성이 노소를 가려지 않고 이 노래를 불렀다. 태조가 숭인문 안으로 들어가니 도성 사람들이 술과 장물을 가지고 맞이하였다. 태조는 황룡 새긴 깃발을 세우니 큰 소라 나팔을 불렀다. 최영이 정벌할 때 여러 장군들이 나팔을 불지 않고 오직 태조의 말 앞에서만 나팔을 불렀기 때문에 도성 사람들은 나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였다. 신우와 영비 그리고 최영이 팔각전에 있었는데 최영은 나오질 않았다. 곽충보등이 팔각전 안으로 들어 가 최영을 묶었다. 신우가 최영의 손을 잡고 이별의 눈물을 흘렸다. 최영은 재배하고 곽충보를 따라 나왔다. 태조가 최영에게 이르기를,
“이 일은 본디 대의를 거스르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안녕치 못 할 뿐더러 백성들이 고통과 원망이 하늘에 이르렀으니 어쩔 수가 없었소.”하였다.
“잘 가시오 잘 가시오”하며 서로 울었다. 마침내 최영이 고봉현에 유배되었다. 일찍이 동요가 있었다. 서경성(西京城) 밖에는 불빛이요, 안주성(安州城) 밖에는 연기 빛 일세, 그 사이를 왕래하는 이원수(李元帥)여, 원컨대, 백성을 구제소서. 평양성 가운덴 밤불이 타오르고, 안주성 밖엔 불꽃 연기이네. 황룡 새긴 깃발과 흰 깃털 단 화살, 큰 소라 나팔 소리 군대 앞에 이르네. 기장 심은 밭의 풀은 누르고 감스레 한데, 李民가 나라를 얻는다더니 지금 정말 그렇구나.
〈『낙하생문집』 해동악부〉
④ 太祖潛邱時 有人鍾門 敵異書 得之智異山嚴石中 書有木子乘獲 下復正三韓境等語 使人迎之 則去 尋之不得 高麗書雲雲觀所藏秘記 有建木得子之說 又有王民滅李民興之語 終高麗之季 秘以不發
〈『大東野乘』 卷53 東聞雜記上>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이전 개인 저택에 있을 때, 어떤 이가 문에 이르러 특이한 책을 바치면서, “지리산 암굴에서 얻었는데 책에 ‘목자가 돼지를 타고 아래로 삼한의 경계를 다시 바르게 하리라.’ 라는 말이 있었다.” 고 하여 사람을 시켜 당부하도록 하였으나 이미 떠나고 없었다. 찾고자 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고려 서운관이 소장하고 있던 비기에 ‘건목자의 설과 왕씨가 멸하고 이씨가 흥한다.’ 는 동의 말이 있었는데 고려가 망할 때까지 감추어져 나타나지 않았다.
<『대동야승』 권53 동각잡기상>
⑤ 辛網二十一年犯違 童諸有木子得國之語 軍民無老少皆歌云又童諸云 西京城外火色 安州城外煙光 往來其間李元帥 願言救濟勳蒼
<『增補文斷備考』 卷1l 象繹考11 童諸>
우왕 21년에 요동을 침범할 할 때, 동요에 ‘목자(木子)가 나라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군민(軍民)들이 노소(老小)없이 모두 노래하였다. 또 동요에 이르기를, ‘서경성(西京城) 밖에는 불빛이요, 안주성(安州城) 밖 에는 연기 빛 일세.
그 사이를 왕래하는 이원수(李元帥)여, 원컨대, 백성을 구제하소서.”라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 권11 상위고11 동요>
. 영선악(迎仙樂)
(1) 관련 기록
① 祝圖丘社樓 享太願先農文宣王顧 亞終敵及送神拉交奏鄭樂冊王姐 王太子 王子 王姬 王太子加元服 實就幕歐 引寶主 出就位 拉奏迎仙樂
<『高麗史』 卷71 樂志〉
원구 사직(社樓)에 제사할 때와 태묘(太蘭), 선농{先農), 문선왕묘(文宣王願)에 제향할 때, 아헌(亞敵), 종헌(終敵), 송신(送神)에 모두 향악을 번갈아 연주한다. 왕비, 왕태자, 왕자 왕녀를 책봉할 때와 왕태자에게 관례(加元服)시키는 의식에서 손님이 나가서 휴식할 때와 빈주(賣主)를 인도하여 신과 홀을 제거하고 나와서 정한 위치에 섰을 때에는 모두 영선악(迎仙樂)을 연주한다.
<『고려사』 권71 악지>
② 冊王姐 王太子 王姬 及王太子加元服時 拉奏此樂
<『增補文敵備考 卷106 樂考>
왕비, 왕태자, 왕녀를 책봉할 때와 왕태자에게 관례 시키는 의식에서 모두 이 음악을 연주한다.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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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20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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