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작가연구 - 히치콕 프랑수아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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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작가연구 - 히치콕 프랑수아 트뤼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카메라 거리를 조화시키면서 기존 형식을 무시하는 태도로 대담한 내용을 찍는 미덕을 보여 줬다.
누벨바그는 자전적 영화로서 한 소외된 소년의 초상을 그린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 1959), 2차 세계대전의 기억에 침식되는 한 일본인 남자와 프랑스 여인 간의 사랑을 그린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히로시마 내사랑〉(Hiroshima Mon Amour, 1959), 당돌하며 희극적인 방식으로 미국 갱 영화에 경의를 표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1960)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관습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로 제멋대로 진행되는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행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비약과 생략적인 편집 태도를 취했다.
누벨바그 작가들은 저마다 각각의 접근 방식과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내보인다.
[1] 인물은 당돌하고 비전통적이며 대체로 감상을 배제하여 다룬다.
[2] 구성은 느슨하고 사실적이며 혁신적이다.
[3] 경량 장비의 사용. 소형 촬영기와 장비를 사용하여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영상과 음향을 얻어낸다.
[4] 현지 촬영과 야외 촬영의 선호.
[5] 생략 편집을 활용하여 이미지들의 연관, 이미지와 음향, 그리고 매체 자체에 대한 주의를 상기시킨다.
[6] 영화적 공간과 시간에 관한 실험.
[7] 초창기 영화들에 대한 암시를 통해 전통의 지속과 단절을 짚어내고 특정 작품이 품고 있는 영화적 자의식에 관해 언급하며 특정 감독이나 영화에 경의를 표한다.
[8] 인간과 우주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주의적 감각을 갖고 있다.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상이점도 명료하다. 낭만적 경향의 트뤼포, 정치적 급진주의 성향의 고다르, 레네의 구조주의적 실험, 로메르의 도덕적인 감수성, 리베트 영화의 연극성, 루이 말(Louis Malle)의 절충주의적 성향 등이 그것이다. 누벨바그 영화 중 역대 비평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받는 작품으로는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e, 1960)와 〈쥘과 짐〉(Jules et Jim, 1962),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 1962),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nnee Derniere a Marienbad, 1961) 등이다. 이 감독들은 모두 자신만의 길을 갔지만 누벨바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 영화는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작가주의 영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와 시작된 누벨바그
: 영화 <400번의 구타>가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400번의 구타>는 6월 3일에 파리 샹젤리제의 두 개 관에서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45만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파리에서도 단관 개봉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단, 흥행작에 한해서는 장기간 상영이 되었다.) 영화는 사회적 이슈를 낳았다. 오늘날 프랑스 영화의 신화처럼 전해지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영어로 ‘New Wave\', 즉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신속한 촬영, 새로운 젊은 배우를 통한 동시대의 이야기, 스튜디오가 아니라 자연광을 이용한 야외 촬영, 적은 예산과 소규모 인원의 제작 방식은 <400번의 구타>를 통해 절정에 달했다. 이후 3년간 170명에 달하는 감독이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으며 누벨바그는 문화 운동이자 신화가 되었다.앙투안 드 베크와 세르주 투비아나가 쓴 전기인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따르면, 누벨바그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쓴 것은 1957년 10월 3일자 ‘렉스프레스’지였다. 프랑수아즈 지루는 ‘젊은이들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누벨바그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1958년 6월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누벨바그, 젊음의 초상>을 펴내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저작이었지만 프랑스 사회의 내부 변화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역할을 펼쳐 보였다. 1959년의 칸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통해 각광 받은 <누벨바그>를 통해 다시 한번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제 누벨바그에 대한 토론은 하나의 현상이자 이슈가 되었으며, 칸 영화제가 끝난 후 몇 개월 만에 누벨바그에 관한 책이 프랑스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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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3.30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4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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