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요약
1) 만고충신 박제상과 돌이 된 여인
2)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호랑이 처녀
3) 수로부인과 헌화가에 대한 학술적 평가
4) 미스터리한 왕국 가야
2, 독후감
3, 참고자료
1) 만고충신 박제상과 돌이 된 여인
2)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호랑이 처녀
3) 수로부인과 헌화가에 대한 학술적 평가
4) 미스터리한 왕국 가야
2, 독후감
3, 참고자료
본문내용
격파하였다. 이때 내물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는 눌지왕이다. 418년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볼모로 간 동생 복호(卜好)를 데려왔으며, 또 박제상(朴堤上)을 일본에 보내 볼모로 간 다른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까지도 왕자들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박제상에 대한 칭송하는 말들은 많다. 하지만 박제상은 충신일지언정 무정한 사람이다. 봉건적인 인식으로 보면 충(忠)이 인의(仁義))보다 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고대의 역사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 볼모를 교환하는 것은 흔한 외교의 방식이었다(물론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도 귀족이나 유력자의 자제들을 수도에 두고 교육하면서 감시하는 것은 페르시아 시대 이전부터 (이란인들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키루스 대왕) 통용되던 오래된 방식이다. 심지어 진시왕은 생부인 자초가 조나라의 볼모로 잡혀가 있던 시절에 낳은 자식이다. 물론 형제를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이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종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질을 속임수로 빼돌리는 것은 사실상 전쟁을 하자는 선전포고와도 같다. 만일 외교적 수사로 박제상이 상대국을 설득하여 인질을 구했다고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사정상 명백한 술수로 볼모를 구출했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엄연히 가족이 있는 박제상에게 그것은 큰 희생이었다. 그럼에도 박제상이 왕제들을 구하러 간 것은 고구려나 왜로부터 독립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눌지왕의 자주노선이 발휘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학자들은 흔히, 기이」 편의 ‘수로부인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수로부인 설화는 신라 성덕왕 대의 순정공의 아내인 수로부인에 얽힌 두 개의 일화, 즉 ‘노옹헌화담’과 ‘해룡 납치/구출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설화는 수로부인의 뛰어난 미모, 꽃을 꺾어다 준 신비한 노인의 정체, 바다용의 의미 등 다양한 상징과 모티프들로 이루어져 있고 향가 「헌화가」와「해가」가 실려 있어 공연 예술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한 설화이다. 기이편 '수로부인' 이야기를 바로 앞에 나오는 '성덕왕'조의, 기근과 그에 대한 구휼 기사와 긴밀히 연관된 것으로 보곤 한다. 그래서 '수로부인'조의 내용을, 기근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는 기우제 같은 제의(祭儀)를 지내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많다. 그 경우, 기사 중에 나오는 해정(海汀), 임해정 등을 기우제를 행한 장소로 보고, 주선(晝饍)을 제물로, 거기다가 헌화가를 지어 바친 노인이 끌고 왔던 암소까지 제의의 희생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수로부인은 자연스레 제의를 진행한 무당이 되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수로부인을 당시 신라 최고의 무당으로 간주하여 국무(國巫)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수로부인과 헌화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설화가 가진 다층적 의미와 사료 혹은 자료의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슴 떨리는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김현)의 손에 죽은 호랑이처녀는 행복했을까? 그래도 아마 지금처럼 달빛은 부서지고 있었을 것이다.” 161p
경주 황성공원 남쪽 호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설화에서는 김현(金現)이 라는 청년이 그가 관계하였던 호랑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서천(西川)가에 세웠는데 지금은 호원사의 터만 남았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원성왕 때 김현이 밤늦게 흥륜사의 전탑(殿塔)을 돌다가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이 여인은 호랑이의 이류(異類)로서 집안의 재앙을 홀로 막고자 자기 몸을 희생하되 김현의 칼에 죽기를 원한다. 이 여인의 가족들은, 아마 오빠들이라고 여겨지는데 많은 사람들을 해친 원흉들이었나 보다. 오죽했으면 누이가 그들을 대신해 죗값을 치르겠다고 나섰겠는가? 호랑이들이었으니 사람이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실제라면 아마 연쇄살인마이거나 탐관오리들이었을 테지만 설화니까 호랑이가 적절할 것 같다. 아무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죽으려고 하는 호랑이 처녀의 마음이 너무 애달프고 짠하다. 호랑이는 자신이 상처 입힌 백성들을 치료하는 방법까지 일러주고 정인의 칼을 품고 남자의 품에서 죽어갔다. 하룻밤 상대로 거쳐 간 여자들을 몰래 영상에 담아 소장하고 지인끼리 두루 돌려보는 작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이자.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슬픈 이야기다.
참고자료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이재호, 한겨레출판
지금까지도 왕자들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박제상에 대한 칭송하는 말들은 많다. 하지만 박제상은 충신일지언정 무정한 사람이다. 봉건적인 인식으로 보면 충(忠)이 인의(仁義))보다 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고대의 역사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 볼모를 교환하는 것은 흔한 외교의 방식이었다(물론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도 귀족이나 유력자의 자제들을 수도에 두고 교육하면서 감시하는 것은 페르시아 시대 이전부터 (이란인들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키루스 대왕) 통용되던 오래된 방식이다. 심지어 진시왕은 생부인 자초가 조나라의 볼모로 잡혀가 있던 시절에 낳은 자식이다. 물론 형제를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이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종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질을 속임수로 빼돌리는 것은 사실상 전쟁을 하자는 선전포고와도 같다. 만일 외교적 수사로 박제상이 상대국을 설득하여 인질을 구했다고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사정상 명백한 술수로 볼모를 구출했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엄연히 가족이 있는 박제상에게 그것은 큰 희생이었다. 그럼에도 박제상이 왕제들을 구하러 간 것은 고구려나 왜로부터 독립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눌지왕의 자주노선이 발휘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학자들은 흔히, 기이」 편의 ‘수로부인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수로부인 설화는 신라 성덕왕 대의 순정공의 아내인 수로부인에 얽힌 두 개의 일화, 즉 ‘노옹헌화담’과 ‘해룡 납치/구출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설화는 수로부인의 뛰어난 미모, 꽃을 꺾어다 준 신비한 노인의 정체, 바다용의 의미 등 다양한 상징과 모티프들로 이루어져 있고 향가 「헌화가」와「해가」가 실려 있어 공연 예술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한 설화이다. 기이편 '수로부인' 이야기를 바로 앞에 나오는 '성덕왕'조의, 기근과 그에 대한 구휼 기사와 긴밀히 연관된 것으로 보곤 한다. 그래서 '수로부인'조의 내용을, 기근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는 기우제 같은 제의(祭儀)를 지내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많다. 그 경우, 기사 중에 나오는 해정(海汀), 임해정 등을 기우제를 행한 장소로 보고, 주선(晝饍)을 제물로, 거기다가 헌화가를 지어 바친 노인이 끌고 왔던 암소까지 제의의 희생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수로부인은 자연스레 제의를 진행한 무당이 되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수로부인을 당시 신라 최고의 무당으로 간주하여 국무(國巫)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수로부인과 헌화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설화가 가진 다층적 의미와 사료 혹은 자료의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슴 떨리는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김현)의 손에 죽은 호랑이처녀는 행복했을까? 그래도 아마 지금처럼 달빛은 부서지고 있었을 것이다.” 161p
경주 황성공원 남쪽 호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설화에서는 김현(金現)이 라는 청년이 그가 관계하였던 호랑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서천(西川)가에 세웠는데 지금은 호원사의 터만 남았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원성왕 때 김현이 밤늦게 흥륜사의 전탑(殿塔)을 돌다가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이 여인은 호랑이의 이류(異類)로서 집안의 재앙을 홀로 막고자 자기 몸을 희생하되 김현의 칼에 죽기를 원한다. 이 여인의 가족들은, 아마 오빠들이라고 여겨지는데 많은 사람들을 해친 원흉들이었나 보다. 오죽했으면 누이가 그들을 대신해 죗값을 치르겠다고 나섰겠는가? 호랑이들이었으니 사람이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실제라면 아마 연쇄살인마이거나 탐관오리들이었을 테지만 설화니까 호랑이가 적절할 것 같다. 아무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죽으려고 하는 호랑이 처녀의 마음이 너무 애달프고 짠하다. 호랑이는 자신이 상처 입힌 백성들을 치료하는 방법까지 일러주고 정인의 칼을 품고 남자의 품에서 죽어갔다. 하룻밤 상대로 거쳐 간 여자들을 몰래 영상에 담아 소장하고 지인끼리 두루 돌려보는 작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이자.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슬픈 이야기다.
참고자료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이재호,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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