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당신이옳다. (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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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혜신의 당신이옳다. (독서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자격증이 무의미한 트라우마의 현장

Ⅱ. ‘당신이 옳다. ’
1장. 왜 우리는 아픈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2. 존재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폭력적 시선


3.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 부족할 때,


04. 만성적 ’나‘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


2장. 심리적 CPR.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1. 사람을 그림자 취급하는 사회적 공기.


2. 공감의 완주화, 남에게 맡겨버린 내 마음.

3. 우울은 삶의 보편적 바탕색


3장. 공감. 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


5장. 공감의 허들 넘기. 진정한 치유를 가로 막는 방해물.


6장. 공감 실전. 어떻게 그 ‘한사람’이 될 수 있을까?

Ⅲ. 마치며

본문내용

의 말을 자주 듣는다. 누가 그 기준을 정한 건가? 이런 류의 규정들이 오랜 버릇처럼 우리에게 남아있다.
모름지기 성공한 사람이란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집단 사고가 작동한 결과다.
성공한 사람은 부지런할 것이다. 머리가 좋을 것이다. 합리적일 것이다등 집단적 지레 짐작이 집단 사고다. 모름지기 여자란, 모름지기 장남이란, 모름지기 성직자란, 모름지기 학생이란..., 우리 사회에 이런 집단 사고들은 자연의 곡선을 직선으로 밀어버리는 포크레인 같은 심리적 폭력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이미 내려 졌으므로 그가 어떤 개별성을 가진 존재인지에 집중하는 일에 당연히 소홀해진다.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역할에 충실한 관계란 모름지기 주부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아빠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이다.우리의 오랜 습관이다.
‘우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구두 위에서 간지러운 발가락을 긁는 행위다. 내 마음, 내 느낌 등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써 내 육성에 접근해 가는 것이 제대로 된 관계의 시작점이고, 그게 바로 공감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수재들만 통과한다는 국가 고시에 합격한 사람 중에도 어리석고 무지하고, 비합리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공감은 들어주는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외형적 무엇에 압도 되지 않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6장. 공감 실전. 어떻게 그 ‘한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잘 모를때는 아는 척 끄떡 끄떡하지 말고 더 물어야 한다. 관계란 것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에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수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상대방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인가 , 공감을 잘한다는 건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상태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있는 상태다. 엄마와 아들도 각자 개별적 존재들이라서,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다르다.
좋은 질문은 따로 있지 않다. 아이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 그 태도가 더 공감적이고 치유적이다. 엄마의 죄책감과 화는 어떻게 표현하는게 좋을까? 무엇보다 엄마가 아이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
사람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건 원래의 상처 그 자체보다 그 상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통해 받는 2차 트라우마다. 1차 트라우마가 총을 맞은 것이라면, 2차 트라우마는 확인 사살을 당하는 것이다.
부모의 사과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워크숍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단언컨대 부작용 같은 거 없다. 부모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부모의 사과 한 마디 듣고 싶어서 평생 엇나가며 폭발하는 사람은 봤어도 사과를 받고 나서 엇나가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부모인 내가 자식을 사랑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느껴야 사랑이다.
과다 출혈로 인한 응급 상황에서의 압박은 평시의 스킨십과는 달라야 한다.
고통을 손가락 지시로 덜어낼 수는 없다. 체중을 실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은 ‘심리적 참전’이라 할 만큼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당연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덜어내야 하는 일임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공감은 나도 모르고,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 심리적 CPR이 된다. CPR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그 즉시 시행하지 않으면, 목숨을 놓친다.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치명상을 입는다. 나중에 치료를 하더라도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다. 이런 치명상을 몇 번 거듭해서 입다보면, 살아낼 힘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 중 하나가 거짓말에 대한 두려움이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받고 자유를 얻은 아이는 상처 이전과는 ‘또다른 아이’로 성장한다.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아이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게 끝이 아니구나? 해결하고, 벗어날 수 있는 거구나?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구나 ? 하는 것을 몸으로 익힌다. 그 힘으로 삶을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비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울 테니”-로버트 프로스트 ‘쓰러져있다’ 중
축구선수 지단은 철벽 수비수들을 둘러 싸여 공격의 실마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지단이 움직이면 순간들을 아직도 떨리게 기억한다. 자시니 창조해낸 공간에서 펼치는 지단의 축구는 아름다웠다. 공감이 그렇다. 옴짝 달싹 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없는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공감하는 일이다.
Ⅲ. 마치며
미국의 문명 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수동적인 동정과는 달리 공감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어느 노인을 병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 노인은 큰 수술을 받은 후 1년 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시원한 냉수 한 컵을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누구의 손이 진심으로 잡아주는 것이지,
그냥 건성으로 잡아주는 손은 어떤 것인지 다 알 수 있다”고..
더불어 사는 사회는 “당신이 옳다”는 지지와 격려, 그리고, 수용속에서, 그런 적극적 공감 속에서 다가올 것이다. 이 시대가 진영논리로 나뉠것이 아니라, 공감해주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점점 나아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한 사람’ 누군가를 살리고, 회복시키고, 일으키는 ‘한 사람’이 당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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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0.07.17
  • 저작시기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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