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견문을 통해 본 유길준의 국가관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서유견문을 통해 본 유길준의 국가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유길준의 서유견문
2. 자유론과 서유견문
3. 국가의 정체(政體)
4. 주권과 자강

본문내용

점차 보호할 제도와 법률을 점차 제도를 개정하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정체의 완전한 변경을 요구하는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이미 형성된 제도는 시세(時勢)에 따라 변용하는 것이 마땅히 옳을 것이라며 제도의 변화에 대해 옹호의 관점을 피력하는 것 역시 이러한 점진적인 입헌군주제도로의 변화를 염두 해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책 p. 161
4. 주권과 자강
그의 국가주의적 태도는 조선이 처해있던 국제적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80년대에 이르게 되면 동아시아를 이루고 있었던 조선과 청나라, 일본의 국제관계는 기존의 사대교린관계로부터 완전히 탈각되어 있었다. 조선과 일본은 1878년 두모진 수세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조약 개정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조선 정부는 두모진의 수세 관청을 설치하고 일본과 교역하는 조선의 상인에게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는 무관세 조약 체제 하에서 일본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강화도 조약의 개정 작업을 시작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 2차 수신사가 파견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 수신사의 파견이후 일본의 조선 상주공사 문제가 해결된다는데 있다. 고종은 하나부사의 내조를 계기로 상주공사를 암묵적으로 승인하게 된다. 상주공사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점은 조일 양국이 근대적 관계로 이행했다고 판단해 볼 수 있다. 또한 청과의 관계의 측면에서는 청이 조선을 조공국이 아닌 속국으로 구속하려고 했던 것과, 영선사로 파견되는 어윤중 등을 통해 고종이 언급하는 내용 들을 통해 파악해 볼 때 양 국은 이미 전통적인 사대관계로부터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관계설정으로 변모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국가의 생존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길준은 일본과 미국에 체류하면서 서양 문명과 사상적 진보를 접했고, 특히 천부인권과 자유에 대해 정치한 이해를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을 둘러 싼 환경은 민권보다 주권의 보호와 영속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유길준의 사상은 적극적인 국가개조 보다는 현 국가 체제의 유지와 자강의 논의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가 애국에 대해 하나의 장을 만들어 따로 서술할 만큼 애국의 문제에 싶은 관심을 드러낸다는 점, 또한 조선인 개개인의 모든 행동을 조선 국가 자체의 평가로 환원하는 점 등은 이러한 국가주의적 인식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앞의 책 p. 324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20.11.03
  • 저작시기201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3919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