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문학의이해4공통) 교재중 한국한문학역사적전개1-2정독한다음 한국한문학-최치원 계원필경 박지원-의 역사적국면가운데 가장중요하다고 생각되는이유를 서술하시오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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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한문학의이해4공통) 교재중 한국한문학역사적전개1-2정독한다음 한국한문학-최치원 계원필경 박지원-의 역사적국면가운데 가장중요하다고 생각되는이유를 서술하시오0k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교재 중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1-2)”를 정독한 다음,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국면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기를 골라서 그 특징을 설명하고 그렇게 생각한 나름의 이유를 서술하시오. (30점)
1)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조선시대 한문학-
2) 그렇게 생각한 나름대로 이유
(1) 갈래로서의 특징
(2) 국문학과의 관계

2. 교재와 워크북에 제시된 한시 중, 2020년을 사는 한국인이 꼭 읽어 봤으면 하는 작품을 선택하여 그 특징을 설명하고 그렇게 생각한 나름의 이유를 서술하시오. (20점)
-한국인이 꼭 읽어야 할 한시- 최치원의 계원필경-
1) 계원필경의 특징
2) 그렇게 생각한 나름의 이유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
3) 문학사적 위상

3. 강의와 교재 및 워크북에서 설명한 한문산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그 특징을 설명한 다음, 해당 작가가 지닌 장점과 단점을 나름의 시각으로 평가하시오. (20점)
1) 한문산문 작가 박지원
2) 박지원 한문산문의 특징
3) 장단점
4) 문학사적 평가
Ⅲ. 결 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에서 보면 그들의 주변문학처럼 인식되기 쉽고, 한글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어딘지 걸맞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리 국자(國字)로 창작된 문학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정은 서구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들면서 자국어를 표방하고 나서기 이전에는 그들 역시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문학을 창작해 왔던 것이다. 또한,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던 일본·베트남 등도 우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자를 문학행위의 도구로 사용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경험은 우리 민족의 의지의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지정학적인 조건, 상층문화의 유입 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 선인들이 중국에서 한자와 문학형식을 차용하여 문학활동을 하였지만, 그 속에 담긴 사상·감정이나 풍토·지리·풍속 및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우리의 것이라는 점이다.사실상 우리 문학은 이중구조 속에서 발달해 왔다. 즉, 선비층은 한문을 구사했고 서민층은 한글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족문학이라 한다면 양자를 다 지칭해야 하고, 연구자들도 양자를 균형 있게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만일 한문학 유산을 우리 문자로 기술되지 않았으니 우리 문학이 아니라는 형식논리에 집착하여 특수한 역사상황을 무시한 채 국문학의 영역에서 배제하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국문학의 기형화를 초래하여 우리 문학은 그 양과 질에서 빈약함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여기에서 말하는 ‘기형화’란 한문학과 한글문학은 너무도 밀착되어 있기에 한쪽을 베어 버리면 다른 한쪽도 불구가 되는 운명을 맞게 됨을 의미한다. 예컨대, 설화나 소설은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 많은 분량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웅혼한 서사성이 그 속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문소설만을 가지고서는 우리의 서사적 맥락을 제대로 찾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서정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고려속요(高麗俗謠)를 비롯하여 얼마간의 시가라는 것이 있지만, 이것들은 양적으로 지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감정의 드러냄에 그친 것이어서 선문학적(先文學的)인 위치를 차지할 뿐이고, ‘시조’라는 것도 역시 유가 선비들의 여기적(餘技的) 소산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비해서 한시의 세계는 양적으로도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지극히 우수한 것이 많아서 명실공히 한국 서정문학의 주된 흐름을 담당하게 된다. 그 밖에 비평문학이나 문학사상, 그리고 민속 분야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자료가 한적(漢籍) 속에 실려 있는 실정이어서, 한문학을 뺀 민족문학은 생각조차 하기가 어렵다.
현재 우리의 한문학 유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정확히 조사된 바가 없으나, 대략 도서목록에 수록된 양으로 보면 전적의 종류는 1만8000, 그리고 책의 수는 7만7000에 이른다. 이 속에 실려 있는 각종의 작품은 엄청난 숫자에 이르지만, 모두가 우리의 고전으로 향유할 만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우선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추려내고 정리하여 사적으로 체계가 완성될 때만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국문학의 영역과 광장이 넓어지고 나아가 우리 문화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바도 크게 될 터이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7년 만인 18세의 나이에 유학생을 상대로 한 과거인 빈공과에 합격하고 관직 생활에 들어섰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선주(宣州)의 율수 현위(水縣尉)가 되어 하급 지방관을 지냈는데, 이때 지은 작품을 모아 ‘중산복궤집’(中山覆集)이라는 문집을 엮었다. 몇 년 뒤 23세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고변의 종사관이 돼 약 4년간 군영에서 수많은 문서를 도맡아 저술하였다. 특히 24세 때 서두에 소개한 ‘격황소서’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28세에 귀국을 결심하고 당나라를 떠나 이듬해 3월 신라로 돌아왔는데, 그의 유학 과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유명하다.
“무협의 겹겹 봉우리 나이에 베옷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은하계 여러 별자리의 나이에 비단옷으로 동국에 돌아오다.”(巫峽重峯之歲, 絲入中原; 銀河列宿之年, 錦還東國) 무협의 봉우리 12개는 유학 갈 때 나이를 나타내며, 하늘의 대표적인 별자리 28개는 중국을 떠날 때 나이를 나타내는 전고(典故)로 활용한 것이다.
비단옷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출세하여 금의환향했다는 의미이지만, 신라에서의 삶은 기대에 충족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큰 포부를 펴보려고 의욕을 가졌으나 골품제 한계로 좌절을 겪었다. 몰락해 가는 신라 말 정세 탓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여건도 마땅치 않았다. 10여년 동안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전전하다가 40여세 장년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사방을 소요했다. 경주의 남산, 영주의 빙산, 합천 청량사와 해인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의 월영대 등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마침내 은거를 결심하고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특히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는 설화가 널리 퍼져 마침내 신화가 되었다.
박지원이 「양반전」을 포함하여 초기에 쓴 9편의 단편들은 대체로 당시의 역사적 현실이나 인간의 내면적인 세계 혹은 민족 문학의 맥을 연결하는 것들로서 강한 풍자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양반전」은 조선 시대 봉건사회의 와해 속에서 여전히 군림하는 양반들의 부도덕성과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비판풍자하는 한편, 양반들의 군자지도(君子之道)의 회복과 동시에 인륜의 도를 말하고자 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자료
-공용, 2020,고소설론과작가, 고소설 작가 김시습허균김만중박지원의 문학관 및 작품
-김혈조, 《박지원의 산문문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2년.
-설성경·박태상,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1986)
-이현식, 《박지원 산문의 논리와 미학》. 이회문화사. 2002년.
-『한국문학사상사시론(文學思想史試論)』(조동일,지식산업사,1978)
-『한문학개론』(이종찬,이우출판사,1981)
-『한국고전시학사(古典詩學史)』(김형대 외,홍성사,1981)
-한국고전번역원, 2018, 서울신문 공동기획, 최치원의 계원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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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0.11.23
  • 저작시기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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