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전쟁 초기 지연전 및 낙동강 방어 작전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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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25 한국전쟁) 전쟁 초기 지연전 및 낙동강 방어 작전의 경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지연작전 의의 및 차후작전에 미친 영향
1) 서론
2) 본론
3) 결론

2. 낙동강 방어선 형성 배경 및 군사적 의의
1) 서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최후의 방어선으로 구상
1. 북한군
1) 7월 중순 대전을 탈취 → 소백산맥 돌파, 한미 연합군이 전선을 강화하기 전에 조기 결전을 위해 서부전선에서는 제6사단, 제4사단을 호남 지방으로, 경부 국도축선에서는 제3사단, 제2사단을 계속 공격, 동부전선에서는 새로이 예비인 제13사단과 신편 제8사단을 추가로 투입
2) 북한군의 진출 상황
가. 제6사단 : 광주(7. 23) → 순천(7. 24) → 진주 방면 공격
나. 제4사단 : 대전 → 금산 → 진안을 거쳐 거창 방향
다. 제3, 2사단 : 영동방면
라. 제15, 13, 1사단 : 문경 → 함창 → 상주 방향
마. 제8, 12사단 : 풍기, 영주 탈취 후 안동방향
바. 제5사단 : 동해안에서 영덕을 공격, 7월 25일 경 순천-거창-상주-영덕 선까지 진출
2. 유엔군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전선을 조정하여 미군이 서부지역, 한국군은 중동부 산악지대 및 동해안 담당
<미 군>
가. 서부지역 : 7월 18일 포항에 상륙한 미 제1기병사단이 영동일대
나. 7월 10일 ~ 15일간 부산에 상륙한 미 제25사단은 7월 20일 상주 정면
다. 미 제24사단은 대전전투 이후 김천, 군의, 의성 등지에서 재편성
<한국군>
가. 중동부 지역의 한국군은 7월 24일 부대를 재편성
나. 제2군단을 제1사단, 6사단으로 편성하여 중부지역의 함창 정면
다. 제1군단을 제8사단, 수도사단으로 동부지역의 안동정면
라. 제3사단은 육본 직할로 하여 동해안을 담당
영동-영덕에 이르는 160km 전선에는 미군과 한국군이 전재하였지만 영동 남쪽으로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 노출
나. 북한군 제6사단의 호남 우회기동
1. 7월 3일 한강선을 돌파한 북한군은 7월 4일 수원 점령, 북한 제3, 4사단은 계속 경부국도를 따라 남하하였으나 제6사단은 천안을 지나면서 잠적
2. 7월 20일 미군의 항공 정찰결과 군산-전주 방향으로 이동하는 대규모 병력을 발견하였으나 다음날 악천후로 정찰기 운용 불가하여 추적 미실시
* 전주방향으로 진출하는 부대를 대전전투를 치룬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병력이 호남으로 우회하는 것으로 오판, 계속 남하한다면 25일 경에는 안의를 거쳐 진주까지 진출할 것으로 판단
다. 미 제8군의 대응
1. 미 제24사단 투입
가. 7월 24일 당시 김천, 군위, 의성 등지에서 재편성하고 있던 미 제24사단에 이날 부산에 상륙한 미 제29연대 전투단 2개 대대를 배속하여 하동-거창간을 점렴
나. 제29연대의 전투력 열세로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지 못하여 7월 31일 진주까지 피탈
다. 현재 진주까지 진출한 적이 제4사단의 일부 병력이 아니라 제6사단이며, 서측방에서 압력을 가해오고 있는 북한군은 1개 사단이 아니라 제4사단과 6사단의 2개 사단 규모라는 것을 확인
2. 미 제8군의 재 판단
가. 유엔군의 증원과 병참 보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산을 확보하는데 있어 마산-부산 축선이 가장 위험한 접근로라고 판단 중대한 결심
* 마산- 부산축선이 위험한 접근로인 이유
① 부산에 이르는 최단거리 접근로
② 진주 일대 배치된 미 제19연대의 전투력 열세, 병력배치 미약
③ 적이 이 지역을 돌파하게 되면 아군 주력이 포위, 병참선 차단
④ 지형면에서도 마산이 피탈되면 그 이후에는 방어할 만한 지형이 없음
나. 예비대를 보유하지 못한 미 제8군은 부득이 적과 접촉중인 일선에서 부대를 차출
3. 미 제25사단의 투입
가. 상주방면의 미 제25사단을 마산 지역으로 투입하기로 결심
* 미 제25사단 차출 이유
① 미 제25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15사단과 3사단은 지연전간 전투력 손실이 많아 비교적 적의 압력이 미약
② 한국군 사단은 배치지역과 기동력으로 판단시 마산까지 투입하는데 많은 시간 소요
③ 미 제25사단은 낙동강방어선 내부의 교통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구비조건 확보
나. 미 제25사단은 240km의 거리를 36시간만에 이동하여 마산정면에 8월 3일 19:30에 투입하여 부산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었음
마.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
1. 상주 정면의 미 제25사단을 차출 후 이로 생긴 간격을 없애고 또한 낙동강이라는 천연적인 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을 저지하고자, 8월 1일 부로 전 부대에 낙동강 방어선을 점령토록 명령
→ 8월 1일 ~ 4일까지 한국군과 미군 전부대는 낙동강선으로 철수 / 8월 4일 부 낙동강 방어선 구축
3. 결 론
낙동강 방어선은 적의 진출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며, 장차 작전의 주도권을 탈취하여 전세를 역전시켜야 할 반격의 도약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방어선의 이점은 개전이래 최초로 ① 한국군과 미군이 서로 전선을 연결할 수 있어 상호 협조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고 북한군의 사용전술이었던 일점양면전술과 같이 ②우회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으며, ③방어선 서측의 낙동강과 북측의 횡격실 고지군을 이용할 수 있는 천연의 방어지대일 뿐만 아니라 ④방어선의 내부에는 방사선형의 병참선 발달로 보급 및 병력기동이 유리하기 때문에 내선의 이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으로의 전면적 철수는 차후 반격작전을 위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⑤낙동강은 도하장비를 갖추지 못한 북한군에게 도하시 많은 전투력 손실을 강요할 수 있었다.
아군은 내부 방사선형의 병참선 발달로 보급 및 병력기동이 유리하기 때문에 내선의 이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었다. 반면 공격하는 북한군에게는 ⑥보급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킴으로써 아군이 공세적 방어를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북한군을 역습으로 격퇴할 수 있었다.
또한 ⑦전선의 축소로 예비대를 확보하여 “기동과 역습”이 용이해졌고, ⑧연결된 방어선을 형성하여 북한군의 우회, 침투를 방지함으로써 철수에 익숙했던 장병들에게 포위가 되더라도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고 있으면 아군 예비대가 증원된다는 심리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어 북한군이 공격하더라도 진지를 포기하는 사태가 감소하였다.
이처럼 대구에 지휘소를 위치시키고, 전선을 축소해서라도 예비대를 확보하여 돌파된 정면에 역습을 실시하여 상실된 방어선을 회복하고 돌파구내의 북한군을 격멸함으로써 장차 반격의 여건을 조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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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0.12.21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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