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근대 중국, 일본, 한국의 불평등 조약체제로의 편입과정을 약술하고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동아시아의 입장에 입각해서 각자의 감상을 서술하시오.
1) 중국
2) 일본
3) 한국
4) 역사적 의미
2. 만주국(1932~1945년)에 대해서 약술하고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중국, 일본, 한국의 입장에 근거하여 서술하시오
1) 만주국의 역사와 간단한 평가
2)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
(1) 중국
(2) 일본
(3) 한국
1) 중국
2) 일본
3) 한국
4) 역사적 의미
2. 만주국(1932~1945년)에 대해서 약술하고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중국, 일본, 한국의 입장에 근거하여 서술하시오
1) 만주국의 역사와 간단한 평가
2)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
(1) 중국
(2) 일본
(3) 한국
본문내용
으켜 관동군과 만주군을 제압하였으며 황제인 푸이가 체포되면서 완전히 멸망하였다.
2)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
(1) 중국
중국에게 ‘만주국’은 치욕의 역사 그 자체라 볼 수 있겠다. 전쟁을 통해 영토를 빼앗기거나 할양한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는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전쟁이었고 영토를 빼앗아 괴뢰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중국(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만주국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주국이 괴뢰국인 것도 문제이겠지만, 만주국을 사실상 건국한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당시 중국과 상당히 적대적인 국가였기에 적국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를 당연히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만주국의 모든 실권을 일본이 쥐고 있었으니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영토로 봐도 사실상 무방하였다.
이 때 친 일본적인 중국 군벌들도 일부 존재했지만, 대부분 반일본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고 이들은 193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일본과 교전을 한다. 이것만 봐도 당시 만주국의 정통성이 얼마나 없었는지 잘 알 수 있겠다. 그리고 만주국이라는 국호 자체가 만주일대에 거주하는 여진출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이들은 만주에서도 소수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한화되었기 때문에 만주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환호하지 않았다.
(2) 일본
일본에게 만주국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기술한 책은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일본인에게 만주국이란 ‘자랑스러운 역사’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대한 영토를 지녔던 중국을 전쟁으로 이기고 그 결과로 만주라는 엄청난 영토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주가 단순히 영토만 넓은 것이 아니라 무려 4천 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었기에 상당히 중요했다.
그리고 만주국은 일본에게 마지막 남은 변명거리일 수도 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것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극단적으로 해석한다면 중일전쟁을 과거 청나라의 영토를 만주국에게 돌려주기 위한 전쟁이라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너무 억지스러운 것이겠지만 말이다.
일본은 만주국 점령이후 벌어진 여러 전쟁으로 발생한 배상책임을 만주국에게 돌릴 수 있다. 즉, 전쟁이 만주국의 의지로 벌어진 것이라 말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 전쟁배상금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상관없는 문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한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주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만주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세력이 수년 만에 궤멸되었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무장투쟁 독립군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것은 적잖은 의미를 준다.
이외에도 일본의 괴뢰국으로 건국된 만주국을 보면서 한일의정서가 체결된 이후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는 고종, 순종, 만주국은 푸이가 있지만 사실상 실권은 일본이 모두 장악한 상황, 서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물론 두 나라 내부에 서로의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의 절대적인 숫자가 차이가 났지만 말이다.
아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지만 않았어도 만주국은 괴뢰국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일본에 병합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월간조선 편집부, 2017,『조약협정』,「조선뉴스프레스」.
컬툰스토리, 2015,『아편전쟁, 근대 중국의 운명을 결정짓다』,「태믹스」.
강진아, 2016,「동아시아의 개항 : 난징조약에서 강화도조약까지」,『현대사광장』7권 0호.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
2)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
(1) 중국
중국에게 ‘만주국’은 치욕의 역사 그 자체라 볼 수 있겠다. 전쟁을 통해 영토를 빼앗기거나 할양한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는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전쟁이었고 영토를 빼앗아 괴뢰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중국(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만주국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주국이 괴뢰국인 것도 문제이겠지만, 만주국을 사실상 건국한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당시 중국과 상당히 적대적인 국가였기에 적국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를 당연히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만주국의 모든 실권을 일본이 쥐고 있었으니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영토로 봐도 사실상 무방하였다.
이 때 친 일본적인 중국 군벌들도 일부 존재했지만, 대부분 반일본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고 이들은 193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일본과 교전을 한다. 이것만 봐도 당시 만주국의 정통성이 얼마나 없었는지 잘 알 수 있겠다. 그리고 만주국이라는 국호 자체가 만주일대에 거주하는 여진출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이들은 만주에서도 소수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한화되었기 때문에 만주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환호하지 않았다.
(2) 일본
일본에게 만주국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기술한 책은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일본인에게 만주국이란 ‘자랑스러운 역사’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대한 영토를 지녔던 중국을 전쟁으로 이기고 그 결과로 만주라는 엄청난 영토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주가 단순히 영토만 넓은 것이 아니라 무려 4천 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었기에 상당히 중요했다.
그리고 만주국은 일본에게 마지막 남은 변명거리일 수도 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것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극단적으로 해석한다면 중일전쟁을 과거 청나라의 영토를 만주국에게 돌려주기 위한 전쟁이라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너무 억지스러운 것이겠지만 말이다.
일본은 만주국 점령이후 벌어진 여러 전쟁으로 발생한 배상책임을 만주국에게 돌릴 수 있다. 즉, 전쟁이 만주국의 의지로 벌어진 것이라 말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 전쟁배상금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상관없는 문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한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주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만주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세력이 수년 만에 궤멸되었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무장투쟁 독립군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것은 적잖은 의미를 준다.
이외에도 일본의 괴뢰국으로 건국된 만주국을 보면서 한일의정서가 체결된 이후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는 고종, 순종, 만주국은 푸이가 있지만 사실상 실권은 일본이 모두 장악한 상황, 서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물론 두 나라 내부에 서로의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의 절대적인 숫자가 차이가 났지만 말이다.
아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지만 않았어도 만주국은 괴뢰국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일본에 병합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월간조선 편집부, 2017,『조약협정』,「조선뉴스프레스」.
컬툰스토리, 2015,『아편전쟁, 근대 중국의 운명을 결정짓다』,「태믹스」.
강진아, 2016,「동아시아의 개항 : 난징조약에서 강화도조약까지」,『현대사광장』7권 0호.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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