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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텍스트들은 앞으로 백지가 되거나 백지에 가까워지려는 창조적인 불가능성이다. 이수명이라는 이름이 씌여진 시점부터 나는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시집 첫 표지의 필체가 기억이 투영되도록 허락된 사건은 아니었다. 애초에 필자는 불가능한 주체를 꿈꾸며 필체 앞에서 창조적인 불가능성을 눈여겨 본 것이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현전이며 명확한 의미들을 추구하기 위한 형식 없는 글쓰기라고 하겠다. 불가능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겠지만 절대로 의미를 충족시킬 수 없는 외마디 외침이다. 사물과 주체가 양립할 수 없는 상태, 양언(兩偃)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 이번 사례를, 필자는 진중히 여기고자 한다. 이처럼 사물과 주체의 모순 앞에서 無가 되는 체험을 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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