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논쟁 (특정주의-증거주의적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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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원주의 논쟁 (특정주의-증거주의적관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요약

II. 견해

본문내용

개진되어져 있는 4가지 입장의 차이를 숙지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아니 거의 모든 부분에서 특정주의자 혹은 배타주의자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는 교파와 신학교에서 체득하고 수확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에 대한 명백한 개인적 고백을 통해 점진적으로 깨닫고 체험하는 진리의 경험 또한 그러하다. 다원주의자까지는 아니라도 내포주의자의 주장들도 종종 매력 있게 들려지기는 하나, 성경을 상고하며 개혁파 전통주의자들의 견해를 접하면 할수록 오히려 깊은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행하심과 성취하심에 대해 전심으로 설득되고 마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포주의자들과 다원주의자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다. 그것은 이 시대의 외침이요, 또한 인류의 궁극적 외침이며, 구원의 은혜를 받고 순례자의 삶을 사는 동안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지식과 사고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초두에 나의 견해는 특정주의 곧, 배타주의자의 견해와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구원관과 일반계시의 한계에 관한 것에 깊이 동의한다. 또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 대한 구원여부도 불가지적인 입장보다는 피조 세계와 피조물의 모든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토대로 이해하는 것이 이해에는 어려움이 다소 있을지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 특정주의의 구원관과 일반계시의 한계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개인의 신앙고백은 구원의 필수 요건이다. 특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성경은 모호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 아닌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에 대한 선포이다. 역사에 여기저기 흔적으로 남겨진 탁월한 철학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견해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나님과 그의 세계를 탐구하듯이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궁극적인 실재를 인간의 내면적 근거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깨닫고자 하거나, 혹은 그 실재가 이루어 놓은 세계나 그 세계를 채우고 있는 존재들을 토대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도출시킨다. 이런 인류의 종교적 활동이 아무리 유익하고, 이전에는 알지 못한 신비한 세계의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하늘로부터 열려져 직접 그 궁극적인 실재가 스스로 찬란하게 드러나신 것에 비할 때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개인의 신앙고백의 참 된 시작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함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놓으신 탁월한 능력을 경험함으로써 터져 나오는 것인가? 이런 것들을 분명히 포함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명백한 고백이란 더 근본적인 것을 포함한다. 그 신앙고백은 십자가에 눈부시게 감추어져 있는 개인의 절망과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심히 놀라며, 그 흉측함을 보는 것을 동반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과 세상의 행위에서 도덕을 찾고, 올바른 것을 찾으며, 그것을 토대로 동일하게 하나님의 도덕과 올바름을 판단하고자 했던 스스로의 결함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을 동반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신앙고백이 구원의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분명한 고백은 스스로 만들 수 없으며, 의도하여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복음을 듣고 영접하지 않는 자는 그 복음(좋은 소식) 때문에 망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소식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듣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복음은 멸망의 길에 놓인 사람들을 구원하는 소식이지만, 멸망 길에 놓인 사람들을 더욱 그 길로 달려가게 하는 소식이기도 하다. 다원주의자들이 이야기 하는 하나님의 공평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궁극적인 실재를 찾아가는 각자 나름대로의 여정으로, 정상을 향하여 가는 다른 길임을 인정할 때 그 궁극적인 실재는 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인류 보편적인 사고는 합리적이긴 하지만 이런 공평함은 오히려 불공평함을 자아낸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거부한 사람과 그 소식을 듣지 못하여서 거부할 수 없었던 사람은 마지막에 받게 되는 형벌이 같을 것인가? 같다면 그들의 사고로 볼 때, 불공평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다원주의적인 보편적 사고에서 특정주의적인 배타적(?)사고로의 전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개인의 신앙 고백에 담겨 있는 부분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명백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없이 구원을 운운할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을 구원하지 않는 하나님은 부도덕하다는 견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사람이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구원의 방편을 제시하셔야 한다는 견해는 복음을 듣기만 하면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자유가 사람에게 있음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자율성은 하나님의 자율성에서 기인되었음을 말씀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창조되었기에 자유함이 주어졌음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유롭게 선택하신다. 모든 사람이 우상을 섬길 때 그 중에 있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자유, 야곱을 더 사랑하신 자유, 모세는 꿈이나 환상으로 대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신 자유,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는 자유 등등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자유에 잇대어 있는 인간의 자유를 나타낸다. 복음으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나, 그 복음을 듣는 자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겠다는 선언, 복음이 오직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나타나게 하신 의도는 모두 하나님의 자유다. 또한 하나님의 자유는 부도덕하지 않은데, 그것은 도덕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자유에 대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모든 존재를 통치하시기로 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인 것이다. 복음을 듣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복음이 있는 문화에서 태어나게 하는 것, 그 복음을 듣고도 영접 하지 않은 자를 그들의 자유대로 허용하시는 것, 복음을 듣지 못하여서 구원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신 것 등등이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부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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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03.13
  • 저작시기20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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