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를 통한 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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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 제기

2. 표절, 모방 그리고 패러디

3.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 - 패러디
(1) 메타 언어를 통한 자기 독립성
(2) 언어 유희를 통한 의미 재구성

4. 패러디 읽어내기와 시 쓰기

본문내용

의 문학비평가 H.L 멩큰의 말과 같이, 비평은 일종의 창작 행위로서 그 의미를 부여받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비평과 무관한 행위인가. 창작 속에는 여러 가지 비평 활동이 기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날 그것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 패러디 기법을 통한 창작 행위이다. 패러디는 결코 기생적 공생의 양식이 아니다. 패러디의 작용 속에는 텍스트의 생산과 수용의 행위가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패러디의 사상적 위상은 오묘하다. 패러디 속에는 이중의 목소리가 녹아 있고, 이를 통해 일종의 비평적 행위를 창출한다. 그것은 작가의 비평적 행위뿐 아니라, 텍스트를 해독하는 해독자로서의 독자에게도 비평적 활동을 요구한다. 여기에 패러디 읽어내기의 교육적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근래의 메타픽션은 연기자와 관객, 작가와 공동 창조하는 독자 사이의 형식적 차이를 거의 유념하지 않는다. 그리고 패러디는 다른 텍스트들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하나의 위협, 심지어 혼란을 야기시키는 어떤 힘으로 간주되고 있다. 패러디는 문학의 규범들을 '비사실화하고 찬탈해'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다른 텍스트의 자질을 전용(표절 혹은 차용)하는 것은 개개의 상품으로서의 예술 작품의 공인된 위상에 오명을 남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디의 위반은 궁극적으로 패러디가 함몰시키려고 하는 바로 그 규범들에 의해 공인된다. 심지어 조롱하면서 패러디는 다시 강화되는 것이다. 형식적인 의미에서 패러디는 조롱된 관행을 패러디 속에 명기함으로써 그 관행의 지속적인 존재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패러디는 예술의 현주소뿐 아니라 예술의 출처를 밝혀줌으로써 예술의 합법성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 린다 허천, 앞의 책, pp. 123∼124
이런 패러디의 기능 때문에 패러디는 오히려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앞에서 예를 든 텍스트들처럼 기존에 잘 알고 있던 텍스트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패러디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에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패러디는 일종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린다 허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호부여자와 해독자 사이의 묵계에 의해 모든 예술적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정확한 기호화의 의도가 수용자에게 인식되지 않을 경우, 그들 사이의 대화행위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패러디와 아이러니의 독특한 일련의 전략의 일부이다. 환언하면, 일반적인 예술의 기호에 덧붙여, 독자들은 자신들이 읽고 있는 것이 패러디이며,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떤 타입의 패러디인가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들이 읽고 있는 작품이 단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만, 다시 말해서 패러디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읽혀진다 해도 패러디 되는 텍스트나 전통을 알아야만 한다.
패러디는 이제 독자들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효과적인 하나의 기제일 수가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풍자와 유사한 읽기 방법이 동원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패러디된 텍스트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해도, 올바른 의미의 파악을 위해서는 패러디라는 전통이 가지고 있는 규범적 성격을 독자가 인식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패러디와 글쓰기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패러디가 이중의 비평 활동이라는 측면과 맞물리게 된다. 패러디된 작품은 일단 우리가 기존에 잘 알고 있던 작품에 대한 일차적 비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그 다음에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이차적 비평을 한다. 역시 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한 편의 시 텍스트를 읽으면서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까지도 함께 흡수하게 된다. 이는 비평의 목적 중에 하나인 교육적 효과까지도 유발함을 의미한다. 즉 시 텍스트의 읽기를 통해 간접적인 비평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위치가 독자의 위치로 전이됨을 의미한다.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코드를 해독해 내지 않으면 안 되므로, 패러디를 구현하는 작가에게는 그러한 작업이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미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패러디된 텍스트는 창작 교육의 역할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미학에서 말하는 창작 과정은 '창작적 기분 → 창작 구상 → 내적 정련 → 외적 완성'의 단계를 밟게 된다. 패러디된 텍스트는 이 대부분의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문제 제기에서 제시한 바 있는 장정일의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작가는 김춘수의 <꽃>을 읽는 순간 창작적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본래 텍스트가 주는 내용과 형식적인 자질이 작가에게 독특한 감응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질들은 원래 작가가 상정한 소재인 '꽃과 존재'에 대비하여 '라디오와 사랑'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게 해 준다. '꽃'에서 '이름'이 문제가 된 것처럼 '라디오'에서는 '전파'가 문제가 된다. 라디오는 전파만 타게 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적 정련의 과정을 통해, 제2의 텍스트는 외적 완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모방이 아닌 재창조 작업이 되는 것이다.
동일한 문학과 문학, 미술과 미술, 음악과 음악의 장르라면 이러한 과정은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예술 영역이 서로 혼합되는 경우에는 그 과정이 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각각의 영역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규범이 모두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창조성의 새로운 범주인 패러디에 대해 살펴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창작 교육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것이 기존의 교육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라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이에 대해 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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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0.12.09
  • 저작시기2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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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8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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