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노동자의 사회적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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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노동과정론과 정체성 연구

2. 분석틀의 탐색

3. 노동자 정체성과 활동가 그룹의 문화적 특징

4. 결론에 대신하여
1) 공통적 특징들
2) 활동가 집단과 문화적 권위
3) 활동가 집단의 위상적 관계
4) 유사­가족주의와 종속된 주체

본문내용

쥴리아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이를 기호적 코라(semiotic chora)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J.Kristeva,(1984), Revolution in Poetic Language, (N.Y.:Columbia Univ. Press), pp.25-33
반면, 노조운동사의 강조와 같은 희생을 강조하는 서사적(과거 지향적 이데올로기적 이야기체) 문체는 상징적 질서에의 포획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립은 구분되어 변별적 대립 관계지만, 그 대립은 부정되어 동일화 된다. 서사구조는 가족 혹은 유사가족과 같은 구조에 의해 중층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무의식적 표상들로 에너지가 구속됨으로써,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공간속에서(즉, 가족 혹은 써클이나 학연, 지연 등의 연줄조직과 같이 유사가족적인 공간속에서) 자유로운 에너지의 순환이 형성되고 반복된다. 이 글쓰기 즉, 실천은 엄격한 언어적 구조에 따르는 규범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의 가족은 실제 가족인 동시에 유사 가족적 집단이다. 이 속에서 말하는 것은 주체의 공간상의 위치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 나는 활동가다!
메타 언어적 특성은 부정을 긍정에 종속시켜 상위 차원이 지닌 긍정성속에 그것들을 봉합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언제나 새로운 대상, 그러나 접근 불가능한 대상이 설정될 뿐이다. 이러한 구조는 위계사회의 구조이다. 성층화한(stratified) 거대 조직들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글쓰기 실천은 발화 주체의 위상적 관계를 보여주는 의미화 실천에 관한 기호학적 분류이다.
) J.Ktisteva,윗책, pp.90-106
지금까지의 발화하는 주체로서 활동가들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타자와의 관계 즉, 의미 작용과 관련해서 갖게 위상적 관계는 어떠한가? 조직과 활동방식, 가족주의 혹은 유사­가족주의, 그리고 인간됨의 기준을 가르는 기술이 문제인 것 같다.
4) 유사­가족주의와 종속된 주체
일반 노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활동가들도 육체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과거에는 다소 거리를 두었던 가족주의적 구조속으로 급속하게 재 포획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농촌에서의 빈곤과 도시 주변부 계층으로서 중산층적 안식처로서 가족의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거나, 가족으로부터 단신 이탈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희망으로서만 존재해 왔던 가족의 재구성이 이제 현실화되었다. "오로지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는 꿈만을 위해서 실연당한 설움을 (극복하여) 잊으려고 미친 듯이 일하여 반장이 되었다"라는 어느 노동자의 한스런 언급에서 보여지듯이, 그리고 이제는 마누라가 억척스럽게 해서 피자 집을 차렸고 제법 장사도 되기 때문에 "구태여 감독자들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어느 전직 소위원의 언급이나, "그동안 모은 돈으로 땅을 마련했고, 융자받아 집을 지어 가게라도 마련하려 한다"는 쉬고 있는 활동가의 언급들에서 가족이라는 안식처가 부각된다.
공과 사의 도식적 분리 하에, 가족은 피난처로서 표상화되고 있다. 동시에 부양자로서의 의무로 표현되는 가족 구조 속의 위치 설정은 활동가 주체의 발화를 정언적으로 규정짓는 것 같다. 술부는 문법에 정확히 따른다. 가족사의 서사적 구현 속에서 자신의 위치는 가장으로 변하였지만, 여전히 가족 삼각형에 갇혀 있다. 이 삼각형은 집단으로 회사로, 조직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듯하다. 이들의 쉬고 싶다는 표현은 '노동자 권력'으로 부터, 조직으로부터, 동료와 회사로부터의 소외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의식화된 활동가의 경우는 과학과 사상성으로 위계화하는 담론을 산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곧 위계적 그물망속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방식이 아닐까? 조직 속에서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지식-육체노동의 분리라는 모순은 이론과 실천 속에서 언제나 이미 현실화되었고 또한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면 도구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기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푸코를 따르자면, 그것은 규제적 자아(regulatory self) 이상으로 기능하는 자아를 기획하는 인간으로 인간들을 종속화 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그것은 인간을 통치하고 인간 행위를 바라는 방향으로 조성하기 위한 수단, 기법, 공간, 판단 체계 그리고 프로그램들의 총화이다.
) N.Rose, 윗책, pp.128-150
푸코나 들뢰즈 갸타리 등의 기술 개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특정 부류의 사람으로 경험하는 바로 그것이 (즉, 자유를 추구하고, 억압에서 벗어나려 하며, 개인적 권력을 추구하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동물로서 경험하는 것), 일련의 인간 기술들(human technologies)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 푸코, 들뢰즈와 갸타리의 기술 개념에 대해서는 Deleuze G.(1988), Fouacult, Trs. G.Hand, Minneapolis: Univ. of Minnesota Press. 들뢰즈와 갸타리(1994), 『앙티외디푸스』, 민음사, 부록, 그리고 미셜푸코, 이희원(역), 『자기의 테크놀로지』, 31~86쪽을 참조할 것.
그 기술들은 인간 존재의 제 양상들(modes of being human)을 그것들의 대상으로 취한다.
) 그러한 총체의 공간적 형태에 관해서 이진경, 『근대적 시ㆍ 공간의 형성』, 1997을 참조할 것.
'신중하고 절제적인 삶을 사는 책임있는 아버지', 경영자들이 지닌 권위의 불가침성과 보상의 기대에 터한 '노동자들의 유순함'과 '성실한 노동자'와 같은 이상(ideal)들은 어떤 지식 체계와 윤리적 가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을까? 푸코나 들뢰즈 등에 의하면, 인간됨에 관한 이상과 모델들은 다양한 실천들에서 그리고 인간 행위에 관한 특수한 문제들과 해결책들과의 관계속에서 접합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개인 모델을 윤리적 이상으로 제시하려는 신경영기법들의 프로그램적 시도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경영관리자나 활동가 및 노조 간부들의 합리성의 신화 및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감수성의 특징이나 스타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신병현, 윗책.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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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3.25
  • 저작시기2002.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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