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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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밀레토스와 그외의 자연철한자들

2. 플라톤의 자연철학

3.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4.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과학 : 헬레니즘 시대

5. 고대말, 중세초(암흑기)의 과학

6. 이슬람 과학

7. 중세대학과 스콜라학풍의 과학

8. 과학 혁명
#과학 혁명의 의미과 사회·문화적 배경
#천문학 혁명
#역학 혁명
#베이컨과 실험과학
#과학 단체의 출현과 새로운 과학 활동
#근대의 자연관 - 데카르트와 기계적 철학

9. 뉴튼 과학과 계몽사조
#뉴튼 종합
#뉴튼 과학의 성공과 계몽사조

본문내용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 과학연구의 조직화, 거대화 경향이다. 20세기에 접어들기까지 과학연구는 기본적으로 개인활동이었다. 하지만, 입자가속기, 허블망원경, 게놈 프로젝트가 보여주듯이 이제는 수백, 수천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거대한 조직을 이루어 수행하는 활동이 되었다.
둘째, 과학연구의 군사화 경향이다. 과학이 전쟁을 위해 동원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였다. 독일은 우수한 과학인력을 이용하여 천연자원의 대체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영국과 미국은 잠수함 탐지 등에 과학자들을 동원했다. 하지만 과학자와 과학지식이 전쟁의 성패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처음이었다. “레이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원자폭탄은 전쟁을 종식시켰다”라는 유명한 말은 과학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각국은 과학연구의 군사화에 박차를 가했고, 실제로 굉장히 많은 과학연구가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지원되었다.
셋째, 과학과 기술의 퓨전화 현상이다. 20세기 초반만해도 과학과 기술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과학자와 기술자는 여전히 신분상의 격차가 있었고, 또 교육이나 연구의 목적과 방법도 각기 달랐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이러한 구분은 애매해지기 시작했고, 20세기말이 되면 더 이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었다. 즉 “과학”과 “기술”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된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위에서 지적한 두 경향, 즉, 과학의 조직화, 거대화 경향과 군사화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지식이 산업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컴퓨터, 재료공학, 우주산업 등을 떠올려 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과학기술의 폐해가 심각해졌다. 20세기의 과학 기술은 인간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질병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순기능 외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나타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자연파괴와 환경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되었지만, 20세기에 과학이 산업에 직접적으로 응용되면서 그 폐해는 훨씬 더 심각해졌다. 또, 현재 강대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의 양은 전 인류를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유전자 복제가 제기한 윤리문제 역시 심각하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폐해는 필연적으로 반과학운동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다.
다섯째, 제3세계 출신 과학자의 등장이다. 20세기초까지 과학사는 철저하게 서양과학자 중심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을 필두로, 중국과 인도 출신의 과학자들이 20세기 전반에 이미 중요한 업적을 내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 밖의 제3세계 국가 출신 과학자들이 과학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20세기 내내 과 학연구활동의 중심이 여전히 서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제3세계 과학자의 등장은 분명히 중요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과학자의 이미지 변화이다. 서구에서 과학자는 전통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철학자”였다. 그런데, 2차 대전을 전후로 과학활동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이러한 “철학자”의 이미지는 엷어지고 대신 기능적인 “전문가”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과학자는 우주의 원리를 연구하는 이상한 괴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구를 하는 보다 친숙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20세기에 과학이 많은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 과학의 성장을 주도한 것이 여전히 서구 과학자사회였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필자는 그중 중요한 하나의 원인으로 서구과학자사회가 계속해서 “사람 키우기”에 성공했던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막대한 예산지원이나 효율적인 조직체계보다 훨씬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20세기에 과학이 조직화, 거대화되면서 역설적으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바로 이점이야말로 우리 나라 과학계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편리하게(?) 무시되어 왔던 것이다.
과학발전에 있어서 “사람 키우기”가 왜 중요할까? 이미 19세기 중엽쯤 되면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 할지라도 관심 있는 연구를 혼자서 다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의 각 분야가 확대된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유능한 제자나 후배를 받아들여 잘 훈련시켜서 흥미 있는 주제를 나누어 갖는 것이다. 리비히의 화학연구실이 선구적인 모델이었 다. 그런데 선생과 제자, 선배와 후배 과학자의 사이는 아주 긴장되고 미묘한 관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명한 선생이나 선배 밑으로 들어간 학생이나 후배는 가까운 미래에 선생이나 선배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야심을 가진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양자는 사제간이거나 동료인 동시에 잠재적인 라이벌, 심지어 미래의 적수였으며, 따라서 인간적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과학사의 많은 예들은 성공적인 연구소에서도 이러한 갈등이 아주 많았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모순된 긴장관계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연구실, 연구소, 학과 등을 운영할 수 있을까? 20세기가 진행되면서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하나의 주제보다는 여러 가지 다른 주제를 한 연구소 안에서 연구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는데, 어떻게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또 이런 새로운 환경을 선도할 다음 세대 과학자는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 필자는 그 해결의 실마리가 연구실 책임자나 학과장 등 지도급 과학자가 “어른”으로서 얼마나 아량을 가지고 젊은 후배와 제자들의 비판과 빗나감(?)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 키우기”는 미덕이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연구실, 연구소, 학과, 나아가 해당 분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20세기에 “사람 키우기”에 성공한 예를 과학사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다음 호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약 3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 캠브리지대학 캐븐디쉬연구소의 경우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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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2.04.17
  • 저작시기2002.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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