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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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빠른 수단이 '보스에 대한 아첨과 절대충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권위주의가 만연해 있는 나라도 달리 없을 것이다. 수구적 봉건윤리가 여전히 판치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나 자유화가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져도 권위주의는 사라질 줄을 모른다. 예전엔 단순히 군사독재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원흉이라고 생각하여 그 해결책의 제시도 쉬웠다. 그러나 외형상 군사독재 문화가 사라진 지금, 권위주의 문화를 없앨 수 있는 뾰족한 처방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도덕성 회복'이니 '의식개혁'이니 하는 투의 막연한 처방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다시 한번 성에 대한 이중시각(二重視角)에 바탕을 둔 금욕주의적 봉건윤리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강력한 아버지'의 관념에만 의지하려고 하는 정신편향의 봉건윤리는 자아상실이나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성적 억압에 따른 '화풀이 문화'를 가져온다. 화풀이 문화는 성욕을 권력욕으로 대체시킨 데 따른 부작용의 산물이다. 국민 각자 각자가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 '야(野)한 자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권위주의 문화에 따른 상명하복과 복지부동 풍조의 만연, 그리고 개성과 창의성을 억누르는 풍조가 사라져 우리나라는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성문제를 얘기하자면 청소년 문제와 이른바 신세대 문화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사라'가 처벌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청소년 문제를 핑계삼은 것이었고, 새시대에 맞는 성윤리와 개성 있는 다원주의 문화의 가능성을 다소 낙관적으로 예견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신세대 문화의 급속한 대두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선 신세대 문화는 청소년 문화에 다름 아니고, 신세대 문화의 대두는 그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금지적 규범에 대한 반발의 결과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는 성인들의 금지적 규범 때문에 숨통이 꽉 막힌 상태여서 몸부림치고 있다. 가난했던 조선조 시절에도 이도령과 춘향이가 15세 나이에 연애도 하고 질탕한 성희까지 벌이는 등 성인 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으로 인해 발육이 빨라진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유로운 멋내기나 놀이 공간의 확보 등 성적 대리배설의 수단조차 전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또 성 자체에 대한 알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형편이고 보니, 그들이 격심하게 갈등하며 반발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런데도 어른들이 제시하는 청소년 훈육용 카드는 기껏해야『명심보감』식의 구태의연한 훈계요, 거기다 한술 더 떠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입신출세를 효도의 근본으로 보는 봉건시대의 유교적 교육철학이 강요된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지배 엘리트로 출세하려는 극소수의 '독종'을 뺀 나머지 신세대 청소년들은 억울한 열패감(劣敗感)과 막연한 반발심리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해마다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억압적 성인문화에 항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 비참한 현실을 만들어놓은 책임은 전적으로 어른들에게 있다. '하지 말라'는 규범밖에 모르는 시대적 적합성을 상실한 어른들의 그릇된 가치관과 의식구조, 그리고 비민주적 사고방식이 신세대 청소년들의 숨통을 죄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세대 문화는 봉건적 정신주의 문화에 대항하는 '육체주의 문화'에 다름 아니 다. 거기에 덧붙여 소아병적 민족중심주의 문화에 편견에 반발하는 '탐미주의 문화', 그리고 집단적 전체주의 문화에 반발하는 '비이기적 개인주의 문화'가 신세대 문화의 내용을 이룬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육체주의 문화'다.
육체주의란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종교·윤리·철학 등의 이념적 명분을 위한 투쟁보다 육체적 안락이나 실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리키는 것인데, 한마디로 말해 평화주의에 바탕한 '실용적 쾌락주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관이나 결혼관을 놓고 볼 때 신세대 문화는 각자 선택의 방식을 지향한다. 순결 이데올로기를 악착같이 고수한다고 해서 윤리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로 촌스러운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고 프리 섹스를 실천한다고 해서 타락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로 세련된 멋쟁이로 간주되는 것도 아니다.
성적 취향 역시 마찬가지. 그들에겐 동성애까지도 자연스런 사랑의 패턴으로 간주된다. 결혼관 역시 그래서 결혼이든 간주된다. 결혼관 역시 그래서 결혼이든 동거든 각자가 알아서 하고 안 하는 것이지 일정한 규준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식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을 해도 자식을 안 가질 수 있고 결혼을 안 하더라도 '당당한 미혼모'로 아기 기르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고등학교 고학년이나 대학 초년생 정도의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얘기고, 문제는 중학생 정도 아이의 청소년들에게 있다. 여자 중학생이 자꾸 헛배가 불러 내과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임신진단을 받는 일이 생길 정도로, 그네들은 여전히 무지와 암중모색 상태에 있다. 이럴 경우 "아는 것이 힘이다"를 적용하여 성에 관한 정보를 학습시켜야 하고,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니까 안 한다"는 속담을 적용시켜 보다 적극적인 성교육과 대리배설 수단을 마련해줘야 한다. 요컨대 '강간보다는 프리 섹스가 낫고, 낙태보다는 적극적인 피임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보다 개방적인 토론 풍토의 확립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본능적 쾌락욕구의 정당성을 인식시키는 일이 중요한데, 그 까닭은 쓸데없는 죄의식은 죄를 저지르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기대불안 심리를 낳고, 기대불안 심리를 곧바로 진짜 성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성적 표현물에 대한 무조건적 차단으로 호기심을 부추기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런 접촉을 허락함으로써 '시큰둥하게 하기'의 면역효과를 노리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이 땅의 칙칙한 성문화를 상징하듯 '슬픈 사라'가 돼버린 '사라'가 다시금 '즐거운 사라', 아니 '밝고 솔직하고 합리적인 성문화'로 거듭나기를, 또한 하루 속히 해금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쓴다.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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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07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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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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