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싱어[동물해방] 동물학대에 대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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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따른다. 대부분의 철학자에게 있어, 이 결과는,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다루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평등이란 문제를 논할 때, 정신적 결함 문제를 무시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양, 한 쪽으로 쓸어낼 수는 있다. 이것은 가장 쉬운 탈출구다. 그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현대철학의 종차별주의에 대한 나의 마지막 인용은, 한 작가가 정신적 결함을 무시하지 않고, 또 반계몽주의적 헛소리에 호소하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이외의 동물의 평등이란 물음에 대담하게 맞서기로 작정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스탠리 벤(Stanley Benn)의 확고하고도 솔직한 논문, [평등주의와 이익의 동등한 배려]는 이 설명과 잘 부합된다.
벤은 상투적으로 "분명한 인간 불평등"을 거론한 다음, 평등주의의 가장 가능성 있는 원리로, 배려의 평등을 주장했다. 다른 작가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벤은 "인간 이익의 동등한 배려"만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벤은 이 동등한 배려의 제한조건을 옹호하는 데 매우 개방적이다:
... 인간의 생김새를 갖지 않는 것이 실격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개가 충직하고 영리하다고 하더라도, 개에게 인간과 동등한 잣대로 잴 수 있는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괴한 감상이다. ... 예를 들어, 만약에 사람들이 배고픈 아기를 먹일지, 배고픈 강아지를 먹일지를 결정해야 할 때, 강아지를 선택한 사람은 누구든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고, 권리의 근본적인 불평등을 인식할 수 없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박약자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동물의 자세를 구분 짓는 잣대인 것이다. 정신박약자와 이성적인 사람의 존엄성 또는 인격을 동등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배려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는, 어떤 복지기준의 고려 요구에 상응한 진정한 배려를 각각의 이익에 부여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정신박약자가 갖지 않으면 안되는 배려의 근거에 대한 벤의 주장은 일견 옳게도 보이지만, 어째서 개와 정신박약자 사이의 요구에 어떤 근본적인 불평등이 존재해야만 하는가? 벤은, 만약 동등한 배려가 합리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면, 우리가 현재 개나 기니픽을 실험용으로 쓰듯이 정신박약자를 이용하는 데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이런 점에서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다" 라고 벤은 말한다. 상식적인 구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벤이 질문하지 않은 그 어떤 것에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 우리들은 인간의 이익을 존중하며, 그들이 합리적이 아니라고 해도, 합리성은 인간의 언어이므로 개들에게보다는 인간에게 우선권을 준다. 맹인으로부터 돈을 훔치는 것이, 단지 늘 있는 부정직한 행위가 아니라 부당한 행위인 것처럼, 합리성이 부족한 정신박약자의 결점을 이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가 개에게 이 점을 배려하지 않는 이유는, 개의 불합리성을 결점이나 장애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인과 정상적인 개를 구분 짓는 특성(합리성의 유무)은 우리들 자신이 편드는 바로 그 종의 이해관계와 능력, 즉 주장을 가진 다른 이들에 대해 명료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이런 특성들이 인간과 다른 종의 구분점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사실상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조건, 또는 도덕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는 계층의 판단기준은 아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해 이것은, 인간이 다른 종의 구성원이 못되기 때문이며, 다른 종은 그들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런 특성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벤은 정신박약자가 개보다 우월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양보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실 때문에 정신박약자가 개를 비롯한 "다른 종"의 일원이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정신박약자를 개를 이용하듯 의학실험용으로 쓰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그 근거는 무엇인가? 정신박약자가 합리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문제가 풀렸다는 것이고, 같은 논리가 개에게는 적용된다? 그 어느 것도, 더 이상 그들의 정신적 수준과는 관계없다. 만약 공통의 결함을 이용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더 일반적인 한계(합리성 따위)를 이용하는 것은 어째서 정당한가? 이 논의에서는, 정신박약자가 인류의 일원이므로 그들의 이익을 더 배려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 외에 다른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정신적 체험을 제시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두 인종, 예컨대 백인과 흑인 사이에 평균적인, 또는 정상적인 지능지수의 차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때, 벤의 글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백인"으로, 모든 "개"를 "흑인"이란 말로 바꿔보자. 그리고 "합리성"을 "높은 지능"으로, "정신박약자"를 백인의 정상적인 지능지수보다 떨어지는 "말 못하는 백인"으로 바꿔보자. 마지막으로, "종"을 "인종"으로 바꿔보자. 이제 그 글을 다시 읽어보자. 바뀐 글에서는 백인과 흑인간에 존재하는 특성상의 명백한 중복을 거스르지 않은 채 지능지수만을 근거로 했을 때,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엄격하고도 예외 없는 차별의 방어벽이 구축되었다. 물론 다시 바뀐 글은 허무맹랑하지만, 이것이 단지 다른 말로 이야기를 꾸며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요점은, 벤은 원문에 특성상의 명백한 중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동물이 서로 다른 종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배려의 양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원문에서 이 점을 옹호하지 않았더라면, 바뀐 글처럼 처음 읽을 때 언어도단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우리들 대부분이 종차별주의자라는 것에 주로 기인한다.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최선의 생각을 가지고 편안함을 누리려는 것에 대한 경고로서의 벤의 자세는 현존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라고 볼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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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2.05.12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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