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과 학생운동에 관한..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시련의 고비 넘어

◆승리의 감동을 이제 100만과 함께
99년 전쟁 반대 투쟁
99년 구조조정,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 투쟁

본문내용

니다.
① 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은 이 시간 이후부터 총파업을 단행한다"
96년 12월 26일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은 새벽에 기습적으로 국회에 등원하여 그 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노동법과 안기부법 등을 날치기로 통과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내쫓기 위한 법,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기 위한 법, 노동자들을 죽이기 위한 악법 중의 악법이 세상이 모든 잠든 어느 날 새벽 단 몇 초만에 기습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 몇 시간 후 명동성당에서는 지금껏 억눌려 살던 노동자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은 이 시간 이후부터 총파업을 단행한다'. 총파업의 거센 물결은 전국을 휘감았습니다. 수많은 기업과 공장의 기계들이 멈추었습니다. 세상이 완전히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차가운 아스팔트를 열기로 녹였습니다. 기계를 멈춰 세상을 멈추어 버린 노동자들이 이 땅의 썩어빠진 반노동 세력과 악법들을 갈아엎고 노동자들의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한 위대한 투쟁에 하나같이 떨쳐 일어났습니다. 눈 내리는 도시의 거리를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노동악법의 날치기 통과를 규탄하고 결사항전의 태세로 돌입하는 그 유명한 97년 '노개투'의 총파업이 핵 폭탄이 되어 태풍이 되어 세상을 집어삼킬 듯 파죽지세의 기세로 진군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단순히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닙니다. 노개투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스님들이, 신부님들이, 수녀들이, 목사님들이, 교수님들이, 농민들이, 그리고 모든 민족민주 운동세력들이 한 몸이 되어 떨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한총련의 깃발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를 비롯한 각계각층 민중들의 투쟁을 가로막는 정권의 앞잡이들은 언제나 한총련의 기세 앞에 꼬리를 감추기 일쑤였습니다. 역시 한총련이구나 하는 것을 노동자들의 가슴에, 민중들의 심장에 새기는 순간들이었습니다.
② 99년 구조조정,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 투쟁
"지하철, 금속, 공공기업 노동자들과 함께한 연대 투쟁"
IMF가 이땅에 들어왔을 때, 이 IMF가 도대체 어떤 화를 불러일으킬지 알고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외국자본이 손쉽게 국내 경제를 장악하기 용이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경제는 초고속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국경제는 빈사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와 기업들에서는 국가신용도를 높여야 한다,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앞다투어 노동자들을 잘라내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업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 고통분담론을 들이밀며 노동자들에게 죽음을 강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었습니다. 사람이 살수 없는 시대, 뼈빠지게 일하고도 일자리에서 내동댕이쳐져야 하는 시대, 지옥 같은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노동자들은 차라리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투쟁은 대단히 조직적이었습니다. 전국의 수천 개의 단위 사업장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세상이 뒤집히는가 싶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의 노동자들에 대한 폭압적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도 노동자 투쟁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 금속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공공기업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총파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김대중 정권을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집권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정권의 한총련에 대한 탄압으로 대의원대회의 개최가 불투명한 조건에서도 서울로 집결한 한총련 학우들은 노동자 투쟁에 먼저 주목을 돌렸습니다. 가진 것 모두 다바쳐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한총련은 노동자와 함께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성적으로 시민들을 만나 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역설했습니다. 노동자들 다죽이는 김대중 정권을 타격하기 위해 한총련은 선도적인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은 더욱 끈끈한 혈연적, 동지적 관계로 되었습니다. 노학연대 투쟁의 위력성이 확고히 검증되었던 투쟁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철같은 노학연대가 변혁운동의 종국적인 승리를 내어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
교육재정확보! 수석이를 살려내라!!
식민지 조국의 현실은 우리 교육의 구석구석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라 잃은 망국노의 삶에는 교육조차도 민족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외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백악관의 앞잡이들은 도저히 이해 못할 민족교육 말살책동에 광분하고 있고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우리 교육을 파탄내기 위한 법이고 제도였습니다.
민족교육을 사수하고 자주학원을 건설하기 위한 학원자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투쟁의 전설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학원에서부터의 자주화 실현은 100만학도 모두의 일치한 요구이고 청년학생들의 처지에서부터 나오는 투쟁과제이기에 더욱 대중적인 투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순의 상대가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해서 상황의 긴장감과 절박감, 순간순간의 분노가 한층 극대화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학자투쟁은 대부분 폭발적인 양상으로 진행되고 강고한 형태의 투쟁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학자투쟁은 단순히 학내 모순해결에만 그 목표나 지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인 정권의 사대매국적이고 반민중적인 반교육정책과 미국의 교육침탈에 대한 투쟁으로 각이 맞추어지면서 반미 반정부 투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학생들의 대규모적인 투쟁을 막아 나서기 위한 미제와 정권의 악랄한 탄압은 더욱 극심해지고 결국 첨예한 전선이 형성되게 됩니다.
한총련 100만 학도는 학원자주화 투쟁의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투쟁들 속에 승리의 감동을 체감하게 되고 근본적인 모순 해결에 적극 나서게 됩니다.

추천자료

  • 가격2,3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2.05.23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494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