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시대의 패션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고전주의의 부활

2.허식의 시대

본문내용

기 위해 리본과 보석으로 장식한 브레이드를 엮어넣어, 많은 시간을 걸려 정성스럽게 꾸민 것이다.
의장의 부속품중에는 장갑과 신발 등에 비해서 헤드 드레스의 변화가 가장눈에 띄었다.. 이것도 15세기 중반의 머리에 뿔을달은 것 같은 스타일에 세간의 악평이 집중한 덕택에, 정평있는 꾸미기 좋아하는 여성들도 싫어하게 되어 뉴 모드를 고안한 듯 하다. 하여튼 15세기말에는 머리 위에 축제용 차를 올려놓고 있는 듯한 스타일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15세기 후반에 새롭게 출연한 것은 보통 에넹이라고 부르는 머리장식이었다. 소재는 여러 가지인데, 원추형모자의 일종으로 앞머리를 보아고 뒷머리 쪽에 썼다. 고대시대부터 계속되어온 두건과 본넷풍에서 햇 형에 가까워진 것으로 쓰인 것은 린넨등 단단한 재료로 만들고 그 위에 장식이 붙어있다. 위로 끌어올린 머리를 감추어 쓴 것이다.
에넹에는 대개 비쳐보이는 큰 베일이 붙었다. 원추의 꼬대기에서 철사심으로 이어서 뒤에 붙이고 때로는 지면까지 닿았다. 1545년경에는 검정색 폭넓은 밴드를 바탕에 돌려붙여 이마를 일자로 자나가 어깨에 떨어지게 하고, 일상복에는 베일을 붙이지 않게 되었다.
르네상스 건축양삭에서 시작한 가로지항은 여성의 헤드 드레스를 높이 올란 각형 돔풍에서 평평한 후드 타입으로 바꾸어 대체로 60년간은 이 라인이 주류가 된다. 후드가 살아난 것은 아마 부해연안의 나라들일 것이다. 초기 후드는 지금도 네덜란드에서 볼 수 있는 전통민속적인 것과 매우 비슷하다. 가장 간단한 후드는 산을 둥글게 한 천 밴드로 어깨까지 늘어뜨려 쓰는 것이다.
후에 영국의 후드가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간 디자인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각진 후드의 산은 고대 그리스 신전의 지붕과 똑같은 것이었다. 측면의 늘어뜨려 어개에 걸친 것은 신전 벽면이 되는 것이다. 후드 테두리를 먼저 금속으로 짜고 호화로운 직물을 위에 놓아 만들었다.
이 스타일은 더욱 발전해서 벽은 곧 머리 앞쪽까지 좁아졌다. 얼굴은 작은 마름모꼴이 되었다. 자수와 보석으로 풍부하게 장식하고 언더 캡 위에 썼다. 검정색 벨벳의 폭넓은 띠가 등에 늘어지게 되어 있었다. 차양달린 캡의 여성판도 애용되었다. 남성 것과 마찬가지로 뱃지와 보석, 털을 장식하고 플리츠들어간 언더 캡 위에 썼다. 한가운데를 갈라 맨 앞머리를 가늘게 보이고 후두붕에 똑바로 썼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런 호화패션은 귀족이나 기껏해야 부유한 상인들에 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하는 여성들은 15세기 후반부터 100년간이나 심플한 슈미즈 위에 검소한 겉옷을 입었다. 겉옷에 V네크를 받아들여 속의 옷을 보인것도 있었다. 이코트에 걸친 것은 큰 회색 에이프런이고, 린넨 본넷으로 머리를 감싸고 목에 흰색 행커칭을 둘렀다. 신발은 당시 극히 일반적인 디자인이지만, 물론 재료는 상류계급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액세사리
15,16세기가 되어서 조금사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중요한 시대의 특징이 있다.
첫번째 외적요인은 유럽사회 전체가 풍요로와지고 사치제한령도 계속 느슨해진 덕택에 보석과 귀금속세공 시장이 확대된 것이다.
두번째 요인은 내적인 것이다. 당시 화가들은 유명한 금세공사 휘하에 들어가 실력을 연마하는 고나습이 있었다. 그것이 전통적인 공예세계에도 르네상스의 새로운 숨결과 미으식을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 우사한 화가들에는 예들 들면 보티첼리. 도나텔로, 듀러등이 있다. 르네상스의 매력은 장르를 초월해 마음대로 표현의욕을 불태울 수 있었던 점에도 있다. 홀바인과 같이 따로 금세공 공방에서 입문하여 수련을 받은 적이 없는 '비전문가'라도 후원자를 위한 유니크한 보석디자인을 했다.
16세기 초기의 보석디자인은 대부분이 구체적인 것의 형을 표현하고 있다. 인물을 본뜬 것도 많다. 기술 쪽은 디자인적으로도 세공기술고 전 시대에 비하면 훨씬 세련되고 공이 들어간 것을 만들게 되었다.
형도 변화가 풍부해졌다. 이것은 패션의 변화에 보조를 맞췄기 때문이다. 뭐라 해도 장식이라면 의복에는 붙일 곳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새로운 것이라고 하면, 5, 6세기풍으로 부활한 네클리스이다. 은 사슬의 네클리스는 이 시대 남녀 모두가 언제나 착용할 만큼 마음에 들어한 액세서리였다. 특히 북해연안제국과 이태리가 그랬다.
이테리의 여성은 이외에 델리케이트하고 우아한 보석 끈장식을 애용했다. 진주를 주로 해서 여러 가지 보석을 조합했다. 많은 수가 2중으로 해서 배모양의 펜단트 브로치를 늘어뜨렸다. 북구에서 애호된 것은 크게 어깨에 걸치는 네클리스였다. 금대에 보석을 끼워박은 사슬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헨리8세 페하를 위해 홀바인이 디자인한 훌륭한 바라스 루비의 네클리스일 것이다. 홀바인은 거기게 헨리 8세의 초상을 그려넣었다.
그러나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서 남성들은 모자 뱃지에 가당 힘을 기울였다. 모자 차양을 걷어 올려 고장하고 커다란 깃털장식을 고정하기 위한 것인데, 가자각색의 큰보석에 성서와 영웅이야기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새겨넣은 것이다.
잠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태리 여성은 머리를 감추는 장식보다 머리 그자체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장 엘레강트한 헤어 스타일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진주의 끈장식이었다. 또 반지와 보석을 끼워박은 벨틀를 남녀 모두 좋아했다. 그렇지만 이 시대 보석세공기술이 발휘된 것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의장 그자체였다. 금도 보석류도 아까운 기색없이 풍성하게 여기저기 박은 것이다. 그리고 16세기후반에는 보석패션의 최전성기를 맞아한다.
남성용 액세서리로는 그외 손잡이에 금과 세공을 장식한 긴 지팡이와 또 거들에 달아맨 지갑이었다.
장갑은 남녀 모두 손가락 관절부분에 슬래쉬를 넣어 마디마디 끼운 반지가 보이도록 고안했다. 손등과 커프스에는 자수를 놓았다. 꼭맞게 끼운 가는 건틀릿 타입의 장갑이었다.
----------END------------
Reference Book
A HISTORY OF FASHION1.2 홍문당 라은숙 P157-189
패션이란 무엇인가..? 계원출판사 이윤정외2 P230-311
중세시대의 패션 아트패션 화보잡지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2.06.28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741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