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통일관련 서적읽고 독후감 쓰기예요(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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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독일통일과 한반도
제2부 남한의 정치, 경제 및 사회
제3부 북한의 이념과 정치, 경제
제4부 남북한의 이질성과 동질성
제5부 신세계질서와 한반도

본문내용

예측은 많은 관찰자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되었다. 이러한 것은 김정일위원장이 김주석의 사망이전부터 후계작업을 확실히 해두었고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 결과일 것이다. 차라리 김주석은 구시대적인 사람이였다. 지금의 김위원장은 현실을 직시하고 신진세력을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북한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김주석없는 북한을 자신의 영역으로 확실히 자리잡을수 있을 것이다.
제4부 남북한의 이질성과 동질성
9.남북사회는 얼마나 다른가?
오랫동안 갈라져 살아온 두 사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통일된 독일은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동서독의 판이한 사회구조와 환경에서 성장한 개인들의 삶은 여러 가지로 이러한 문제를 예민하게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물리적인 장벽도다 더 굳어진 마음의 장벽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독일인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분단 동안의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는 듯한 속도로 진행된 사회구조의 변화를 체험하였다. 독일통일이 가지는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어떤 형식으로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마음의 장벽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통일 이후 남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극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를 체험할 것인가는 아지 상상의 영역 속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러한 문제를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서 하나의 윤곽이라도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한의 사회구조는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1970년대의 경제성장이라는 두 시기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있다. 이 시기는 사회변화의 분기점을 형성했고, 모든 사회 분야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이런 사회적 역동성은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동시에 수반했는데, 3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산업화는 남한 사회구조를 근대적인 사회구조로 변화시킨 긍적적 측면도 있으나, 동시에 그것은 그에 상응하는 많은 대가를 요구했고,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를 고려하면 부정적인 측면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번장에서 말하는 남북사회의 이질성은 결국 통일문제의 걸림돌이 될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북한의 구조적 측면이나 사상적 측면은 다르다. 그러나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점고 남북사회의 사회구조적 동질성은 객관적으로 보아 작은 편이다. 그러나 동질성을 느끼는 감정은 아직도 크다고 할 수있다. 언제쯤이나 "남북이 함게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남북 모두 하나의 민족이었고, 앞으로도 하나의 민족으로밖에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의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0. 남북사회의 동질성의 뿌리
의실할 나위 없이 유교적 전통에서 남북사회의 동질성을 찾을수 있다. 이것은 사회인류학적·문화일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북한에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공통분모라 할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든지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이든지 간에 그는 먼저 유교적인 전통에서 자라고 유교적 덕목을 지녀야 인정받는다. 유교를 보수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경계로 해서 진보와 보수로 갈라보는 시도는 우리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한 대 활발했던 반공선전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남북한의 제도적·사상적 차이를 무색케 하는 유교적 사고체제 중의 하나는 아마도 교육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교육열이 남한의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북한도 그들 사회를 '교육의 나라'라고 칭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다. 막스 베버가 유교의 일본적인 인간형의 이상형으로서 일컬었던 '문화적 인간'이 내용적으로 변화하면서 남북한 사회에서 기능적 엘리트의 역할을 분명하게 증가 시켰다. 그러나 남북사회의 엘리트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는 그래도 몇 가지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3대 혁명소조'운동이 보여주듯이, 북한에서 가장 우선적인 덕목은 정치적인 충실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전'에 대해 '홍'이 일방적으로 앞선 것과는 다르다. 즉 북한에서는 공산주의자의 도덕적 품성은 반항적인 홍위병이 아니라 사려 깊은 맏형과 같은 성격이 강조된다.
제 5부 신세계 질서와 한반도
11. 군사적 균형과 불균형
남북군사력의 질적 비교, 북한의 군사적 우세를 입증하는 많은 자료가 나오나 그러한 자료들은 단순한 양적인 비교에 불과하지 21C기의 군사적 비교는 양적인 비교가 아닌 질적인 비교가 되어야 한다. 북한이 2천2백만 명 인구중 백만 명이 무장하고 있다면, 경제 분야에서 노동력의 공급에 많은 문제를 안게 될 것이다. 실지도 북한 인민군은 1970년대 말 이래 서해갑문 건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건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건설, 평양 주택건설 사업등 중요한 대건설에 군이 투입되었다. 미 정보부는 북한이 국방의무를 수행할수 있는 3백50만명의 예비병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였다. 남한은 병력면에서 북한보다 훨씬 우세하다. 왜냐하면 남한은 8백10만 명의 예비병력 확보와 매년 45만 6천 명의 신병모집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쟁이 반발할 경우 북한이 약 54만명의 예비군을 투입할 수 있는 반면, 남한은 약 4백 50만 명의 예비군을 투입할 수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북한이 3백만 명의 '노동 적위대' 소집을 할 수 있는 반면, 남한은 3백 50만명의 '민방위대'도 확보하고 있다. 어쩠던 남한은 베트남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상당수의 직업군이도 보유하고 있어 질적인 면에서 북한보다 우세한 실정이다.또한 전략과 물자·기술적 문제에 연관된 다른 측면에서도 남한은 북한보다 훨씬 우수한 군사물자와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계속 그 차이는 커 가는 실정이다.
12.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
북한은 1993년 3월 12일에 '핵무기개발 및 확산방지조약'의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일년 뒤에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탈퇴를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핵무기개발 및 확산방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해보기로 하겠다. 첫째는 1993년초에 실시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조성한 반도의 '준전시상황'이고, 둘째는 국제원자력기구가 그의 '엄격한 중립성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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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15
  • 저작시기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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