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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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근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1. 근대의 맹아와 근대성의 문제
2. 일제 식민기의 한국미술
3. 프로예술과 조선향토색
4. 해방공간과 월북작가

Ⅲ. 우리 나라 현대미술의 흐름과 그 논리
1. 국전과 아카데미즘 미술
2. 반아카데미즘과 앙포르멜
3. 한국적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
4.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성과와 한계

Ⅳ. 80년대 한국미술의 반성과 평가
1. 미술과 정치 혹은 미술의 사회적 참여
2. 민중미술 논의의 부상과 미술운동
3. 비판적 리얼리즘과 현장미술 4. 평가와 반성

Ⅳ. 1990년대 한국미술과 포스트 모더니즘
1. 포스트 모더니즘 신드롬
2. 예술과 일상의 경계 허물기
3. 테크놀러지 아트와 환경미술
4. 신체.성.여성주의

결론을 대신하여

본문내용

히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 역시 여전히 자연과 자원이 제공하는 유형, 무형의 물질에 의존하여 작업하여야 하며, 자원의 고갈과 자연환경의 파괴가 가져올 파국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4. 신체·성·여성주의
이제 신체는 90년대 문화담론의 중심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보았던 플라톤적 관념으로부터 육체야말로 자아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많은 작가들이 신체를 이용한 작업에 전념했다. 그중 몸에 새긴 문신을 이용하여 육체가 환기하는 에로티시즘과 권력을 표현한 김준, 신체의 특정부위를 연상시키는 입체를 보여주는 김미애, 성의 상품화와 부패하여 사라져버릴 육체의 위기를 표현한 이불, 신체를 자기신화와 동일시한 이윰 등을 비롯하여 사진의 김석중, 입체의 임영선 등의 작업을 통해 신체에 대한 작가들의 의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을 보노라면 오늘날 인간의 몸은 가장 하찮은 대상, 즉 대상화되고 관능과는 하등 관계없는 물질의 덩어리며, 폐기 당해 마땅할 대상처럼 표현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신체담론과 함께 90년대에 현격하게 부상한 것이 여성주의 미술인 바 유교의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지배하던 한국에서 여류미술이 아니라 여성미술이 태동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이며 90년대 문화담론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패미니즘이다.
80년대 후반부터 패미니즘 경향의 작업을 하던 윤석남을 비롯하여 많은 여성작가들에 의해 패미니즘 미술이 확산되었는데 남성과의 대립적, 상대적 개념으로부터 여성성에서 자신의 작업의 실마리를 찾아가고자 한 작가들이 많이 나타난 것도 90년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로 김수자, 김미경, 문종숙, 이수경, 신경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향들 외에도 개념적 작업을 통해 미술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윤동천, 박화영 등과 지역주의 미술의 부상도 90년대 한국미술의 중요한 특징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창설과 더불어 국제적 규모의 전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도 90년대적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0년대 말과 60년대의 아주 소수의 제한된 작가들만 출품할 수 있었던 파리청년작가비엔날레나 상파울로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등이 먼 나라의 문화축제로만 여겨지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게임을 계기로 국제교류전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에도 국제적 규모의 전시를 유치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해야 된다는 필요성과 자신감이 만들어낸 광주비엔날레는 긍정적으로 보아 국제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역량을 알리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으나 부정적으로 볼 때 미술을 이벤트성 행사, 대규모 박람회로 만들어 놓았던 점도 있다. 게다가 빈번해진 국내외 교류전과 미술정보의 즉각적 유입이 젊은 작가들의 '신세대 취향'과 맞물려 새로움에의 과도한 탐닉을 낳기도 했다.
그 결과 머리만 아픈 거대담론 대신에 주변적이고 자전적인 이야기, 즉각적인 눈요기거리, 대중문화적 취미 등이 새로움의 붐을 타고 급속하게 확산되었으나 한편으론 미술의 인스턴트화도 야기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미술이 식료품이라면 차라리 며칠이나 몇 개월이란 표식을 달아 그 기간이 지나면 폐기해버릴 수 있겠지만 이 무형의 문화현상조차 자연산 식료품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우리의 감각을 스쳐지나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든다. 90년대에 부각된 이른바 신세대문화, 신세대미술에서 이러한 단명의 운명을 느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러나 전시와 저널리즘 등의 제도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음은 축복이며 존중받아 마땅한 권리이다. 그러나 청춘을 무조건 새로움과 동일시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미술마저 대중문화 마냥 젊음은 좋은 것, 무조건 새로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종의 최면을 거는 것은 미술을 지나치게 가벼운 것으로 내몰 수 있는 위험스러운 것이 아닐까.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진작가들에게 무조건 새로운 것만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신의 공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죄악이다. 또한 기성의 미술을 구태의연하고 지리멸렬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도 바쿠닌식의 무정부주의적 파괴를 숭배하는 것과 다름없다. 젊은 작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재치와 투명하고 아름다운 순발력, 감각은 장려되어야겠으나 그것만 부추기는 것은 문제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가는 문화운동의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우리 미술제도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현재 한국미술은 자본주의의 팽창을 가속시키고 있는 전지구화의 상승운동에 편승하여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소멸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논리 아래 세계를 재편하는 전지구화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되 민족의 주체적 자주의식에 뿌리내린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하는가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실제로 미술제도는 구태의연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근대적인 구조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들은 그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 국제미술계에서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국제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해 대화하고 알려주며 또 그 자신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해 토의할 수 있는 많은 자리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범람하는 무국적적 시각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표류하도록 하고 이중적 문화구조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단계 시각문화의 상업주의와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 다국적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문화의 모색도 요청된다.
전지구화는 당장에 닥친 금융위기에 의해 초래된 경제위기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체하여 경제논리 아래 인위적으로 재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변화를 수용하는 관용과 적극성을 지니면서도 과거의 경험을 발전적으로 지양하며 세운 자주·민주의 튼튼한 기초 위에 정립될 민족주의의 논의는 더없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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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30
  • 저작시기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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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99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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