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의 문학적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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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보들레르의 문학적 선동
I. 반부르주아 미학
II. 현대의 파토스:알레고리와 형식

2. 보들레르의 영원한 예술미
I. 현대성과 심미성
II. 시간의 지양:미학적 범주의 형상으로서의 「마주친 여자에게」

본문내용

알레고리를 구성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일시적인 것에서 출발하고 일시적이고도 일상적인 현상을 재빠르게 지각하는 일에 도취하였던 기(C. Guy) 식의 영감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위대한 열정의 ‘장엄한 제스처’에서 출발하는 영감으로서 보들레르는 이러한 영감은 오로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영원히 제시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여기서 들라크루아의 현대성을 규정짓는 것은 주제의 선택이 아니라 다름아닌 그의 그림에서 진동하고 있는 멜랑콜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적 발전 과정에서 보들레르는 점차 다음과 같은 모순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즉 장엄하고도 경건한 언어적 제스처가 더욱 절제되고 또한 시적 텍스트가 강렬한 동작과 돌출로부터 멀어질수록, 현대성의 파토스는 더욱 치열하게 표현되어왔다는 것이다. 『악의 꽃들』 중 「백조」 「일곱 노인」 「초라한 노파들」 같은 시에서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적인 세계 고통의 문학적 파토스 같은 고전적인 비극의 파토스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그러한 파토스를 완전히 새로운 구성 배열(Konstellation)을 통해 표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위 대도시의 현상과 그 지각의 저속함을 열정적인―오늘날에는 거의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되어버린―구성적 여운과 결합시켰으며, 또한―마치 만화경처럼―신화적이고 장엄한 것을 일상적이고도 범속한 것과 서로 혼합시켰으며, 이러한 점을 모르는 고전적인 독자는 그의 문학성을 알지 못하며 또한 현대적인 도시 거주자는 그의 도시를 더이상 재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보들레르는 프루스트(M. Proust), 조이스(J. Joyce), 되블린(A. D쉈lin)에게서 절정에 도달하는 현대적인 소설문학의 전통을 구축해내었던 것이다.
보들레르에게서 문학의 도시화는 도시적 삶을 낯설게 하는 방식과 결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을 알레고리로 변화시키며, 바로 이 알레고리에서 현대의 파토스는 절정에 도달한다. 보들레르에 대한 최근 해석에서 즐겨 인용되는 대상으로서 시 「백조」에는 알레고리적 상상력의 기능 방식, 멜랑콜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알레고리의 특성, 그리고 알레고리의 전복적 특성이 동시에 하나로 주제화되어 제시되고 있다. 그 시는 이미 현대적인 영웅성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는 「1846년 살롱」의 후기 삽화의 성격을 띤다. 장엄한 장소에서, 예컨대 새롭고도 낡은 파리의 중심에서, 진부하게 복구된 루브르 궁전 앞에서, 왕들의 낡은 궁전에서 ‘유희를 즐기는’ 시의 관점 안으로 보들레르는 일군의 인간을 집어넣고 있으며, 그 인간들은 사실적으로 보나 미학적으로 보나 말 그대로 부적합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패배자들, 다시 말하면 진보에 의해 망각된 희생자들이다. 그들을 우의적으로 표현해내는 언어는 다름아닌 새장에서 도망친, 파리의 먼지 속에서 미칠 듯이 몸짓하는 백조이며, 그들은 죽어가는 시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신들의 분노를 사게 되는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처럼 나타난다. 이러한 문학적인 사유의 형상에는 바로 범속한 것과 장엄한 것, 우울과 이상이 서로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경험, 감성적 분위기, 관찰, 성찰은 격렬한 암시성을 지닌 시각적 암호들(visuelle Chiffren)로 전이되고 있으며, 이러한 전이 현상이 곧 보들레르의 현대성에 속한다. 특히 그 시각적 암호들은 그의 시학의 의미심장한 범주로 작용한다. 그 암호들은 매우 암시적인 방식으로 보들레르가 결코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비참한 삶의 구체적인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사회 운동을 통해 척결코자 했던 자본주의의 핵심 현상들(가령 사회적 빈곤화, 프롤레타리아화, 식민주의, 소외 등)이 보들레르의 텍스트에서는 사회적인 구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환기 방식(Evokation)으로 나타난다. 즉 그 어떤, 특히 고통스런 사회적인 삶의 현상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강한 빛으로서 말이다. 그럼에도 시 자체는 문학적인 회상의 집합 신호이자 각적 소리와도 같다. 악의 없는 토포스인 백조는―이야기의 전개와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인해―현대의 순수한 이념을 뜻하며, 그것은 환한 빛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볼 수도 없는, 또한 인정하기를 원하지도 않는 이념이다. 물론 그 시는 있는 그대로처럼 비의적인 차원에서 그 의미를 닫고 있으며, 또한 그 시가 상기시키려는 잃어버린 자들(이들은 곧 그 시가 헌사되고 있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재차 인식될 수 있는, 아무런 상속을 받지 못한 대중을 가리킨다)에게도 닫혀 있다.
보들레르의 문학적 요인이나 글쓰기 측면은 사실 수많은 현대 작가들(랭보, 말라르메, 게오르게, 후이스만, 와일드, 릴케, 조이스, 지드, 프루스트, 브르통, 예이츠, 엘리엇, 벤 등 다수인 시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그 자신 결코 시인이 아니었고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였던 발터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독자로서 그의 현대적 파토스를 가장 정확하게 읽어냈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의 문학적 발전은 결코 연속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문학사는 항상 비약적이며, 텍스트의 질적인 양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글쓰기의 역사나 문학의 수용에서 항상 상실되고 만다. 보들레르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매우 폭넓은 밀폐시적인 보들레르의 문학이 지닌 역사철학적 잠재력은 처음에는 전혀 인식되지 못했다가 결국 벤야민에 의해서 다시 발견되고, 아도르노는 보들레르에 관한 벤야민의 에세이를 이 시대의 가장 귀중한 역사철학적인 증거물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처럼 보들레르 문학이 부분적으로만 수용되고 있는 원인은 보들레르 스스로가 주장한 문학의 자율성에서 찾을 수 있다. 말라르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구가 그 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사실 문학의 자율성은 일종의 보호막일 뿐이었다. 그것은 이중적인 관점에서의 보호막이었는데, 즉 한편으로 보들레르가 이데올로기의 견인줄에 끌려다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미의 꽃―마찬가지로 추의 꽃―을 통해 진리를 말하려는 가능성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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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09.12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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