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 종교음악의 탄생부터 낭만파 시대 까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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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종교음악의 탄생

2. 로마 제국의 성립

3. 그레고리안 성가

4. 중세 음악

5. 르네상스의 음악 (Renaissance 1450-1600)

6. 바로크 시대의 음악 (Baroque, 1600-1750)

7. 고전파 시대 (Classic, 1750-1800)

8. 낭만파 시대(Romantic, 1800-1910)

본문내용

759) 등이 있다.
7. 고전파 시대 (Classic, 1750-1800)
고전음악(Classic Music)하면 대체로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하나는 순수 음악으로서의 모든 것을 말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빈고전파시대의 음악을 우리는 고전주의 음악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서의 클래식은 빈고전파시대의 음악 양식을 말하는데 라틴어의 Classicus는 "납세자 계급에 속하는 자"라는 뜻에서 "모범적'이라는 뜻을 갖기에 이르렀다.
음악에서의 고전파 시대는 시민계급의 해방과 때를 같이해 바로크 시대에는 주로 궁정과 교회를 중심으로한 음악이었는데 고전파 시대에는 공개 연주회와 궁정 음악이 중심이 되었다.
교회의 교리를 떠난 세속 음악이 주를 이루었으며 음악가들은 인간 중심의 무한한 세계를 표출하려 애썼다. 이 시기엔 바로크와 달리 선율이 표변에 강하게 표출되고 민요적이고 민중적인 것이 채택되어 예술적인 것과 합류하게 된다.
이 시대의 중요한 음악가로는 빈고전파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에토벤을 손꼽을 수 있는데 고전파 시대의 시작은 크반츠, 하세, 바흐의 아들들과 이탈리아의 도메니크 스카를라티와 그 후계자들로부터 출발하였다 볼 수 있다.
빈고전파 외의 다른 지방으로는 잘츠부르크의 요제프의 아우 마하엘 하이든과 뵈멘 출신의 천재적 교향곡 작곡가 로제티(Anton Rosetti 1750 - 1792), 피아노 음악가 뒤섹, 이탈리아 피아노 음악가인 클레멘티 보케르니, 또 프랑스의 케루비니 등이 이시기의 음악가들이다.
이 시기의 음악적 특징으로는 4소절 단위의 Phrase를 갖고 있는 선율(민속적)을 사용하고 부숴트린 화음이 선율의 주제가 되고 또한 음계를 이용한 선율을 사용하기도 한다.
강약에서 ff에서 pp로의 급작스런 변화라든가 작곡가들은 연주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적게 나타나도록 악상의 지시를 악보에 자세히 붙여 놓았다.
8. 낭만파 시대(Romantic, 1800-1910)
음악사적으로 1800년부터 1910년까지를 우리는 낭만파 시대라 일컫고 있다.
19세기는 극적인 사건 및 사상이 일던 시기이며 또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와 억압, 이성과 감정 및 과학과 종교간에 각각 심한 마찰이 있던 시기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자유사상이 대두되자 인간은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예술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음악에서도 낭만주의적 요소가 깃들기 시작하여 고전주의의 특성인 법칙과 제한에 대하여 반격을 가하며 무엇인가 다른 태도를 표출하고 그들이 이해한 대로 사물 및 사건을 묘사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음악은 감정의 표출과 상상력의 동원 등이 가장 큰 특징이며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것이나 우주의 신비에 대한 매력을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낭만파 운동은 보통 음악사상 19세기 무렵부터로 생각되고 있으나 그 징후는 18세기 후반부터 나타나 하이든의 만년이나 모차르트 작품에서 고전적인 요소와 낭만적인 요소의 융합이었고, 1780 - 90년대 클레멘티의 소나티네, 1800 -1810년 무렵 크로머의 협주곡이나 피아노 작품, 1800년 전후 듀섹의 실내악곡, 체르니와 훔멜의 작품 속에서 낭만적 태도의 조기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초기 낭만파 작곡가로는 독일 국민 오페라 확립자 베버, 많은 훌륭한 리트를 남긴 슈베르트가 있고 19세기 중엽 슈만, 멘델스존, 쇼팽 등이 있고 19세기 후반 "고전주의적"인 브람스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조류에 대하여 음악 외의 예술과의 연결을 요구하던 "로마틱 리얼리즘"의 계열이 대립되어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가 표제 교향곡, 교향시, 오페라 분야에서 활약했다.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주로 교향곡 분야에 있어 중요한 업적을 이룩한 브루크너, 말러, 리트 작곡가인 볼프, 그리고 교향시, 오페라, 리트 작곡가, 리하르트 시트라우스 등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후기 낭만파를 형성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구노, 생상스, 비제 등이 영속적인 생명을 지닌 오페라를 남겼지만 베를리오즈 이후부터는 기악의 부흥을 들 수 있다.
이탈리아는 19세기 기악의 왕좌를 독일에 양보하였으나 로시니, 도니제티, 베르디 등이 오페라 분야에서 전통적인 장점을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의 무소르그스키, 체코의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 북유럽의 그리그와 시벨리우스, 스페인의 알베니스 등 민족적 자각의 고조에 따라 융성된 국민악파는 고전적인 조체계의 동요를 촉진하여 드뷔시의 인상주의에 자극을 주었다.
이 시대의 음악적 기능은 고전주의 시대와 마찬가지고 역시 음악은 귀족사회의 유희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으나 18세기보다는 귀족들의 후원이 적었으며 하이든을 후원해 주던 식의 풍부한 후원적 근원이 적어졌다. 살롱에서는 주로 실내악 및 독주곡이 연주되었으나 낭만파 시대 음악은 숙달이 덜된 연주가들에게는 상당히 기교적인 연주를 요하기 때문에 아마추어 연주가들은 거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한편 살롱 이외에는 무조직적으로 덜 세련된 음악 애호 집단이 있어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였는데,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특히 이들 집단을 겨냥하여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청중들에게 큰 관심을 사거나 호소를 하고자 하였다. 이들 중류층의 대중들은 현실 생활에서 오는 무료함을 달래고 흥을 돋우기 위해 음악을 즐겼고 따라서 작곡가들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하였다. 따라서 작곡가들은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했기 때문에 어떤 후원자를 마음에 두고 작품 활동을 할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모든 사회계층에 사교춤이 유행하였던 바 작곡가들은 무곡을 쓰는 데도 열중하여 요한 스트라우스 및 그 아들 등과 같은 작곡가들에게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한편 교회는 더 이상 후원자가 되지 못했고 작곡가의 종교적 감정과 신앙심을 표현하고자 하는 연주회용 종교음악은 조금 있었으나 의식을 위한 예배용 음악은 매우 적게 쓰였다. 낭만파 음악의 특징은 소나타 형식에서 탈피, 적대 음악에서 표제음악으로, 개성 있는 민속적 특색은 삽입, 문학 등 다른 낭만적 예술과의 관련성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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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22
  • 저작시기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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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0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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