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여인의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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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제 목 : 조선왕조 여인의 예복
□ 총 페이지수 : 10
□ 목 차:

*조선왕조 여인의 예복
1.요점정리
2.왕비 법복인 적의
임진왜란 전의 적의
대삼,배자......
임진왜란 이후의 적의
적의,중단,하피....
국말의 적의
적의,중단,페슬
3.원삼
4.활옷
5.당의

본문내용

적원삼.반가부녀자들의 초록원삼이 있었는데 이 초록원삼은 한때에 신부예복으로 착용이 허용되었다.
왕비의 원삼은 겹으로 자적색 또는 다홍색 길에 뒤가 길고 앞이 짧고 소매가 넓으면서 끝에는 홍황 2색의 색동과 금직단의 백한삼이 붙었으며, 옷과 7척 길이의 홍단대에는 운봉문을 화려하게 직금하였고,앞뒤에는 쌍봉문의 흉배를 장식하였다.
그런데 국말 왕후의 것은 황원삼이고,다홍색과 남색의 색끝동과 백한삼이 달리고,옷과 홍단대에는 5조용의 운용문을 화려하게 금직하였다.
그리하여 국경일과 같은 날에 대례복으로 착용할 때 는 5조용의 운용문을 금수한 원포를 양 어깨와 앞뒤에 가식하였으며,왕실의 경사 때에 소례복으로 착용할 때는 쌍봉문을 금수한 흉배를 앞뒤에만 가식하였다.
여러 예복에 있어 적의만
적말,적석이며,다른 것에는 백말이면서 검은 웅피로 만든 화온혜를 신었다.
色의 문양에 따른 계층별 분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계층 원삼의 色 원삼의 紋(문양)
황 후 황 옷과 단대에 오조룡의 운용문을 금직
왕 비 홍 옷과 홍단대에 봉문을 금직
비(妃),빈(嬪) 자적 옷과 홍단대에 봉문을 금직
공주,옹주 초록 옷과 홍단대에 화문을 금박
반가부녀(班家婦女) 초록 옷과 홍단대에 화문을 금박
*활옷은 어떠한 양태를 갖고 있을까?
이 활옷은 현재 한국의 전통의 복으로 꼽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고 널리 알려져 있는 옷이다.
홍색의 길에 화려한 무늬의 수를 놓은 옷이 활옷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
그 활옷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이 활옷이 공주의 대례복 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원삼과 같이 중국 포제에서 나와 국제가 된 것으로 원삼보다 화려하게 꾸민 것이었는데「고려도경」「귀부조」에 "왕비는 대홍의를 입었는데 이에 회수를 놓았다"함에서 활옷의 변모를 볼 수 있다.
또 옷에 꽃무늬가 많은 것을 보고 백화포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백화포의 모습을 활수의 포의에다 대대를 띠었고 화제에서 온 것이라 하였는데,이것은 '화의' 또는 '화의(花衣)'가 우리말 발음으로 '활옷'으로 된 것이라 생각된다.
주로 상류계급에서 착용하던 예복이나 나중에는 서민층에 도 혼례시만은 착용이 허용 되었는데, 이것은 다홍색 비단 바탕에 장수와 길복을 의미하 는 물결,바위,불로초,어미봉, 새끼봉,호랑나비,연꽃,모란꽃, 동자 등의 수 외에 이성지합, 만복지원,수여산,부여해 등의 글씨를 수놓았고 수구에 한삼 을 달았으며 대대를 띠었는데,
이를 노랑 삼회장 저고리와
다홍 대란치마 위에 입었으며, 수식으로는 용잠을 꽂고 뒷 댕기(큰댕기)를 드리웠으며 칠보화관을 썼다.
*당의는 어떠한 양태를 갖고 있을까?
당의는 간이예복 또는 소례복으로 평복 위에 착용하였는데 겹이나 홑으로 만들고 솜을 둔 당의는 없다. 계절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해서 만들고 일년을 통해서 계속 착용되던 옷이다. 또 비빈이 입는 직금당의에서부터 금박을 찍은 당의나 민가의 예복으로 입는 민당의도 있다.
*황후의
황후의 당의는 자색이고 왕비는 홍색당의이며 그 이하는 초록색이나 백색·흑색이다. 초록색 비단에 다홍색 안을 바치고 색에 관계없이 자주색 겉고름과 안고름을 달았으며 소매 끝에는 흰 거들지를 달았다.
또한 계절에 따라 흰색 홑 당의 즉 당적삼을 입었는데, 5월 단오전날 왕비가 흰 당적삼으로 갈아입으면 단오날부터 궁중에서는 모두 당적삼을 갈아입었으며, 또 추석 전날 왕비가 다시 당의로 갈아입으면 추석날부터 궁중에서는 다시 당의로 갈아입었다.
이것은 반가에서도 그대로 하였으며, 겨울철에는 자색당의를 입기도 하였다.
이러한 당의를 그 의미적인 면에서 복식사연구에 중요하므로 살펴보겠는데, 당의의 당자가 중국의 당나라와 같다고 해서 '당나라에서 들어온 옷'이라고 생각하는 종래의 개념에 대해서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문헌이나 신빙할 만한 자료에 당의가 당나라 옷이었다는 증거가 없는 데다가, 한국의 저고리와 같은 계통의 당의를 굳이 중국의 옷이었다고 주장할 이유가 없다.
역사적인 자료를 살펴보아도 중국의 당대에 한국의 저고리나 당의와 같은 계통의 옷은 없었다.
당의의 당자는 저고리의 양 귀가 뾰족한데서 '당코'라는 의미로 표기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저고리의 깃에서 '당코저고리'라 하는 것도 깃의 귀가 곡선으로 뾰족하게 구성된 데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의는 한국의 전통적인 저고리 중에서 옆트임을 했던 것이, 점진적으로 곡선으로 파여서 근대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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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01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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