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유적 답사기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제 목 :
□ 총 페이지수 : 13
□ 목 차:

남도유적답사문 모음입니다.
8p분량 하나, 2p분량하나, 3p분량하나

******************
이번 답사여행은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일상에서의 탈출 그 자체였다. 우리를 태
운 버스가 시동을 걸며 첫 바퀴를 돌렸을 때, 나는 생각했다. 3박4일의 일정 끝
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을. 아니 소망했다.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에서 어떤 깨
달음을 얻기를.
남원까지는 5시간이 걸렸다. 순조롭게 일정대로 가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광한루를 코앞에 두고 우리는 고픈 배를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차려진 식탁을 보며 그 유명한 전라도 음식의 넉넉함이 이것이구나하고 놀랐다. 하지만 저마다 식탁 가득히 차려진 반찬의 가짓수에 압도되면서도 젓가락을 들었을땐 씁쓸해짐을 느꼈다. 오래전 아버지를 따라 가보았던 전라도 식당의 음식맛이 아니었다. 형식적으로 가짓수만을 나열한, 그것은 식당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배를 채운 뒤 곧바로 광한루에 들어섰다. 겨울이면서도 남쪽지방이라 햇볕이 따사로와 춘향과 이도령이 연애하는 광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한켠에 설치된 춘향의 그네를 보니 장난끼가 발동하여 춘향이가 된 양 그네를 올라 보았다.


*한글97
위글은 3p분량의 답사문의 도입부 입니다.

본문내용

답사하기로 했는데 거리상으로
매우 가까워서 버스로 10분 정도마다 들락날락 해야 했다. 다들 여독을 풀지 못
한 얼굴들이 밝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열의 찬 설명으로 다시금 힘을 찾았
고 부지런히 메모들을 하고 있었다. 면앙정과 송강정, 식영정, 서하당은 자그마
한 정자와 같았다. 그 건물의 외소한 모습보다는 그 내력에 의의가 크기 때문에
몇 자 적어 본다. 면앙정은 조선 중기 송순이 만년에 벼슬을 떠나 후학들을 가
르치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낸 곳이라 하고, 송강정과 식영정, 환벽당은 송강유적
으로 불리는 곳으로 식영정에서는 정철이 주변의 경관을 즐기면서 '성산별곡'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전라
남도 일대는 대나무 숲이 즐비해서 다른 지방과 달리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었다. 소쇄원 역시 잘 생긴 대나무 숲 속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다른 정자와
달리 이곳은 계곡을 중심으로 애양단, 오곡문, 제월당, 광풍각 등이 자리잡아 규
모면이나 경치면에서 다른 곳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소쇄'란 말은 깨끗하고 시
원하다'라는 뜻이라는데 그 뜻을 알지 못해도 이곳을 보면 저절로 이 뜻을 뱉어
내고도 남을 것이다. 여름에 이곳을 다시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쉬움을 뒤
로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첫날의 숙소는 월출산 자락에 정해졌다. 산을 무척 좋아하는지라 많은 산들을
찾아 다녔었지만 기암괴석의 월출산을 보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랜 침
식, 풍화작용으로 지금과 같은 다양한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제발 일정 중에 산
을 올랐으면 했지만 촉박한 시간이 허락치 않았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나서 도갑사를 찾았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에 650살 먹은
느티나무가 일행의 시선을 끌었다. 오랜 세월로 불어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여러 개의 받침목으로 가지들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불로장
생하는 생명을 보니 경외스러웠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뜸해 주인인 양 구
석구석을 돌아 다녔는데 도갑사 석조가 인상 깊었다. 통나무 배모양의 화강암의
안쪽을 파서 물을 받고 있는데 중간에 배수구까지 장치한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
였다. 이것은 17세기말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어 찾아간 곳은 김영랑의 생가이다. 시인이 일본까지 유학을 간 걸 보면 부농
임에 틀림없다는 추측만 가기고 있다가 직접 생가를 방문하니 약간 의외였다.
실제 모습을 얼마나 복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박한 몇 채의 건물만이 자리
를 지키고 있었다. 집을 둘러싼 돌담을 바라보니 입안에 시 한 구절이 맴돌았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울창한 대나무 숲을 따라 들어서니 다산초당이 나왔다. 동백나무, 잣나무의 길목
의 끝에 위치한 이곳은 소박하고 한적한, 세속에서 벗어나 맑은 심성을 갖게 해
주기엔 더할 나위없는 장소였다. 초당옆에는 연지석가산이라는 연못이 정취를
뽐내고 있었고 초당에서 약간 내려온 곳에는 제자들이 거쳐했다는 서암이라는
초막이 있었다. 서암에 앉아 주변의 고요함의 주는 안락함을 느끼니, 유배지가
이렇다면 한번 유배당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철없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은 윤선도의 고댁인 녹우단을 방문했다. 궁궐이라고 할지 박물관이라 할지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볼거리였다. 예술을 3대째 이어온 것을 보니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제일 먼저 富를 축적하려 하
고, 이를 달성하면 권력을 잡으려 하고, 그 다음에는 예술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말이 녹우단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윤씨 집안의 재력답게 집의 규모가
대단했는데, 후손들의 보존으로 오래 된 화첩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중에는 습
작집과 세밀하게 그려진 우리나라 지도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대흥사에 도착하니 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절 입구까지 버
스를 타고 갔는데 여느 절보다 규모가 컸다. 아무리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지
만 자연의 영향력 아래에선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대흥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나오는 길목에 하얀 개 두 마리가 비도 아랑곳
않고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둠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 쯤에 완도에 도착했다. 이날 하루 동안은 많은 일
을 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며 지친 몸을 풀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보길도 일정은 아침이 되었을 때 무산되었다. 좋지 않은 일
기로 배가 뜰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2시간 동안을 목포를 돌며 일기가 좋아지
기를 고대했지만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계획에 없던 진도를 향해 방향을 틀었
다.
진도의 명물은 뭐라고 해도 진돗개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하던 곳에도 귀여운
진돗개를 팔고 있었는데, 주인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진돗개의 가격은 10만원에
서 200만원까지 어미의 혈통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진도는 다른 농촌과
는 달리 정갈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누군가가 진도는 양반마을이
라고 하던데, 이곳을 보니 그말에 수긍이 갔다.
'새옹지마'라더니 그 다음 일정으로 찾아간 곳은 선운사였다. 서정주의 시 <선운
사 동구>에서 막연하게 상상하던 선운사를 직접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치 보
너스를 타는 기분이었다. 이 선운사 일대는 동백꽃으로도 유명한데, 동백꽃은 겨
울에 새빨간 꽃을 피우는 독특한 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온
도가 맞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고 봉우리 채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여간에
서 꽃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눈꽃을 연상시키는 함박눈이 선운사를 가득 메운
동백나무의 푸르고 굵은 잎을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덧 여정의 끝은 돌아오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서울을 향한 차 행렬에 섞이
고 있었다. 일행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마다의 일상 속으로 돌아갈 채비
를 하듯 눈을 감고 있었다. 제1회 답사여행의 무사한 여행에 안심을 하며 나또
한 밀려 놓은 일들을 생각해 보고 일상에서의 탈출이 아닌, 폭 넓은 경험의 기
회에 동참한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 가격2,3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10.09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95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