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문 주석으로 선택하게된 동기와 의의
나. 하나님 형상에 관한 끊임없는 논쟁
다. 본문 주석의 범위와 글의 전개 방법 (본문의 화정)
2. 창세기의 위치 (문헌비평)
3. 원역사의 구조와 주석할 본문의 위치
4. 야훼 문서와 사제 문서에 대한 오리엔 테이션 (역사의 컨텍스트)
가. 창세기 1:1-2:4a과 2:4b-25절이 동일한 문서와 저자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 (문학적 문체)
나. 사제 문서와 야훼 문서의 특징 (양식과 구조)
5. 본문 주석
가. 창1:26∼28 주석
나. 창세기 1:26∼28에 나타난 사제 신학자의 `인간 창조 신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전반적인 이해
다. 창 2:4b∼7 주석
6.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한 케리그마 발견! (神學的 意味)
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문 주석으로 선택하게된 동기와 의의
나. 하나님 형상에 관한 끊임없는 논쟁
다. 본문 주석의 범위와 글의 전개 방법 (본문의 화정)
2. 창세기의 위치 (문헌비평)
3. 원역사의 구조와 주석할 본문의 위치
4. 야훼 문서와 사제 문서에 대한 오리엔 테이션 (역사의 컨텍스트)
가. 창세기 1:1-2:4a과 2:4b-25절이 동일한 문서와 저자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 (문학적 문체)
나. 사제 문서와 야훼 문서의 특징 (양식과 구조)
5. 본문 주석
가. 창1:26∼28 주석
나. 창세기 1:26∼28에 나타난 사제 신학자의 `인간 창조 신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전반적인 이해
다. 창 2:4b∼7 주석
6.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한 케리그마 발견! (神學的 意味)
본문내용
신비적으로 성서를 보는데 있어서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바른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양식 비평학의 한계에서도 우리가 배웠듯이 성서가 단지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만 수단화 되어버릴 때 성서는 더 이상 우리에게 경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성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신앙의 렌즈를 끼고 보아야 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형상"을 해석함에 있어서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모든 언어는 그 언어가 사용되었던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그 언어의 의미의 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단어나 구절의 뜻은 사전에 나타난 "사전적인 의미" 만 안다고 해서 그 말이 함축하고 표출하는 의미를 다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사전적 의미 이상의 "의미의 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사의 인간 창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형성 배경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또한 인간의 창조 이야기가 구약 성서에서만 나오는 고유한 이야기가 아닌 것도 알고있다.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이집트와 가나안 문화 역시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 문화에 섞여 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두 가지 인간 창조 이야기가 그 형성 과정과 삶의 자리, 환경 등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스라엘의 두 가지 창조 이야기는 자신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시고 또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 구원의 주로서 하나님을 알게 된 후 가나안에 정착하여 원주민들의 창조론에 접하면서 독특하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그곳에는 신학적 해석의 가치가 있는 이론과 특유한 인간관이 반영되어 있다.
창세기의 첫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로 시작된다.
성서를 하나의 큰 문장으로 보았을 때 주어를 쓴 것이다. 누가 했는고 하니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했는가 보았더니 천지와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주어와 동사를 정확히 밝히고 있으며 목적어도 분명하다. 창세기를 최종적으로 편집한 편집자의 목적은 어쩌면 이것이라고 하겠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사람과 만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결국 하느님이라는 주권 선언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좌우지간 인간은 누구든 스스로 다른 인간보다 높다 하지 말 것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더욱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읽는 것이다. 결국 내가 두가지 창조이야기를 주석하면서 얻어낼 수 있었던 신학적 교훈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처럼 그냥 존재하는 것이거나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범한 결의'에 의해서 창조 되어지고 하나님의 특수 사명을 몸에 구체적으로 짊어지고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특수 사명이라 함은 자연에 대한 통치와 공존을 말한다.
첫째로 육지의 생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곧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기 위해서 였다. 이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위치에서 땅, 바다, 하늘, 그리고 땅의 모든 생물들을 모두 포함하여 '통치'하는 특수 사명을 부여 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연을 다스릴 의무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부여 받은 특수 사명은, 자연 통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남자와 여자의 결합체로서의 기능속에서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인간은 단순한 "類"의 개념으로서만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단수나, 중성, 또는 양성으로 창조된 것도아니라, 남자와 여자인 "복수 인격" 으로서 창조 되었으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더불어 함께사는 '공존'을 특수 사명으로 부여받았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도록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원인간의 모습이라 함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통치'와 '공존과 조화와 사회적 상호 협력 행위'의 특수 사명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짊어지고 가는 존재를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오늘의 상황속에서 조망해 보면, 이러한 놀라운 케리그마의 발견은 오늘날 남녀의 차별과 인권의 차별을 극복하고 동등한 인격으로 대해야 할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며 생태계 보존과 정의와 평화, 생명세계를 가꾸고 살리는데에 이론적 기틀이 되어줄 것이다.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통하는 하늘의 명령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한다. 우리에게 "살아라"는 명령과 함께 내려진 "이렇게 살아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포괄절인 명령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가 이 난감한 시절에 태어날 때에 우리보다 먼저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가 전달하기로 하고 이미 받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이 있었다면 하늘에 되물어볼 일이다. 그러면 하늘이 대답 할 것이다. 참 인간으로 돌아오라! 나의 형상으로 회복되라!
■ 참고문헌
1.다니엘 미글리오리(이정배 역), 『조직신학입문』 (서울: 나단, 1994)
2.클라우스 붸스터만(김이곤 황성규 역), 『성서입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5)
3.송기득, 『인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4)
4.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함께읽는 구약성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
5.심상태, 『인간 - 신학적 인간학 입문』, (서울: 서광사, 1989)
6.김이곤,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9)
7.장일선, 『예레미야』 (서울: 전망사, 1993)
8.폰 라드, 『국제성서주석- 창세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9.박준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성서적 이해", 『기독교사상 1989 9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0.이병렬, 『히브리민족의 원역사』 (서울: 페트라성경연구원, 1986)
성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신앙의 렌즈를 끼고 보아야 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형상"을 해석함에 있어서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모든 언어는 그 언어가 사용되었던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그 언어의 의미의 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단어나 구절의 뜻은 사전에 나타난 "사전적인 의미" 만 안다고 해서 그 말이 함축하고 표출하는 의미를 다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사전적 의미 이상의 "의미의 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사의 인간 창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형성 배경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또한 인간의 창조 이야기가 구약 성서에서만 나오는 고유한 이야기가 아닌 것도 알고있다.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이집트와 가나안 문화 역시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 문화에 섞여 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두 가지 인간 창조 이야기가 그 형성 과정과 삶의 자리, 환경 등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스라엘의 두 가지 창조 이야기는 자신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시고 또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 구원의 주로서 하나님을 알게 된 후 가나안에 정착하여 원주민들의 창조론에 접하면서 독특하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그곳에는 신학적 해석의 가치가 있는 이론과 특유한 인간관이 반영되어 있다.
창세기의 첫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로 시작된다.
성서를 하나의 큰 문장으로 보았을 때 주어를 쓴 것이다. 누가 했는고 하니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했는가 보았더니 천지와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주어와 동사를 정확히 밝히고 있으며 목적어도 분명하다. 창세기를 최종적으로 편집한 편집자의 목적은 어쩌면 이것이라고 하겠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사람과 만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결국 하느님이라는 주권 선언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좌우지간 인간은 누구든 스스로 다른 인간보다 높다 하지 말 것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더욱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읽는 것이다. 결국 내가 두가지 창조이야기를 주석하면서 얻어낼 수 있었던 신학적 교훈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처럼 그냥 존재하는 것이거나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범한 결의'에 의해서 창조 되어지고 하나님의 특수 사명을 몸에 구체적으로 짊어지고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특수 사명이라 함은 자연에 대한 통치와 공존을 말한다.
첫째로 육지의 생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곧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기 위해서 였다. 이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위치에서 땅, 바다, 하늘, 그리고 땅의 모든 생물들을 모두 포함하여 '통치'하는 특수 사명을 부여 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연을 다스릴 의무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부여 받은 특수 사명은, 자연 통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남자와 여자의 결합체로서의 기능속에서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인간은 단순한 "類"의 개념으로서만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단수나, 중성, 또는 양성으로 창조된 것도아니라, 남자와 여자인 "복수 인격" 으로서 창조 되었으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더불어 함께사는 '공존'을 특수 사명으로 부여받았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도록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원인간의 모습이라 함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통치'와 '공존과 조화와 사회적 상호 협력 행위'의 특수 사명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짊어지고 가는 존재를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오늘의 상황속에서 조망해 보면, 이러한 놀라운 케리그마의 발견은 오늘날 남녀의 차별과 인권의 차별을 극복하고 동등한 인격으로 대해야 할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며 생태계 보존과 정의와 평화, 생명세계를 가꾸고 살리는데에 이론적 기틀이 되어줄 것이다.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통하는 하늘의 명령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한다. 우리에게 "살아라"는 명령과 함께 내려진 "이렇게 살아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포괄절인 명령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가 이 난감한 시절에 태어날 때에 우리보다 먼저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가 전달하기로 하고 이미 받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이 있었다면 하늘에 되물어볼 일이다. 그러면 하늘이 대답 할 것이다. 참 인간으로 돌아오라! 나의 형상으로 회복되라!
■ 참고문헌
1.다니엘 미글리오리(이정배 역), 『조직신학입문』 (서울: 나단, 1994)
2.클라우스 붸스터만(김이곤 황성규 역), 『성서입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5)
3.송기득, 『인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4)
4.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함께읽는 구약성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
5.심상태, 『인간 - 신학적 인간학 입문』, (서울: 서광사, 1989)
6.김이곤,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9)
7.장일선, 『예레미야』 (서울: 전망사, 1993)
8.폰 라드, 『국제성서주석- 창세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9.박준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성서적 이해", 『기독교사상 1989 9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0.이병렬, 『히브리민족의 원역사』 (서울: 페트라성경연구원,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