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청소년교육에 미친영향, 학교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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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 2002년 6월 거리의 ‘붉은 물결’

2. 정치적 민주화의 결과로서 2002년 6월

3. 2002년 6월의 전사

3. 아이들은 거리에서 무엇을 체험했는가

4. 지식, 경쟁, 학벌, 특권획득에 갇힌 한국교육

5. 교육적 상상력의 열림을 향해

6. 문화광장, 열린광장, 열림을 향한 교육

본문내용

날 수 있는가? 점수경쟁만이 통한 '학력향상'의 유일한 길이라는 발상은 대체 언제쯤 완전히 깨어질 것인가? 한국인의 머리와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폐쇄적이고 빈곤한 교육적 상상력을 완전히 분쇄하지 않는 한 모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6. 문화광장, 열린광장, 열림을 향한 교육
교사로서 우리는 학생들의 '에너지 분출'이 두려울 수도 있다. 허나 오랜 세월의 '억눌림'을 벗어 던지는 것은 물론, '역사적 앙금'으로서의 (민족적) 자괴감까지 깨끗이 벗어 던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어른들의 짐을 물려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더군다나 1987년 6월의 거리에 나왔던 현재 30-40대의 '공적'을 이해라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2002년 6월, 거리에 진출한 10대 학생들은 보수적인 학교의 '폐쇄회로'를 벗어나 '광장의 자유'를 체험했다. 무엇보다도 '함께' 함의 소중함을 체험한 것이 크다. 이는 학교교육을 통해 반드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늦기 전에, 초중고 교육에 대한 '재규정'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보수적 어른들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화 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될 경우 고등학교 교육은 끊임없이 '동요'하게 될 것이다. 대학은 학부제로 '통합교육'의 길로 가면서, 고등학교는 보다 '전문성'있는 선택교과 중심으로 세분화한다는 모순은 그러한 '동요'에서 필연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며 보통교양교육으로 정립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자립형 사립고나 과학고, 외국어고처럼 '학교의 다양화'를 이룩할 까닭이 사라진다. 대부분 '의과대'에 진학하는 과학고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모두 폐지하고 차라리 대학의 학부제를 '특성화,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중고 교육은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사람의 '오래된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초중고교에서는 넉넉하게 공부하고 대학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0교시가 그토록 안쓰럽다면, 아침 9시에 학교에 등교하면 된다. 사실, 0교시는 '대학'에서 해야 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초중고교는 선진국의 오랜 역사적 체험에서 하듯, 지식과 활동, 몸과 마음을 균형있게 키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럴 경우, 초중고교는 학생들의 각종 다양한 학습과 활동으로 '살아 숨쉬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전은 지식중심의 학습을, 오후는 특기와 적성을 키우는 활동중심의 학교교육과정 운영은 불가능하지 않다. 경제규모 세계12위에 걸맞는 체제를 이제는 갖추어야 할 때이다. 주5일제 실시까지 생각하면 더 답답해진다. 점점 남는 시간은 많아져 가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학벌경쟁에 내몰려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못 배우고 있으며, 게다가 예체능교과목은 축소되고 국영수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으니,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꼴이다. 사실, '교과'로서의 음악이나 미술, 체육을 가르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새 교육과정 개념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초등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은 완전히 '재편'되어야 한다 7차교육과정으로 인해 오히려 '컴퓨터' 교과와 같이 지식교과가 늘어나 버렸다. 영어까지 생각하면 정말이지 숨이 콱 막혀온다. 아직 안 늦었으니 초등학생들은 '놀면서' 공부할 수 있게 교육과정을 대대적으로 재편성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광적인 교육열은 태어나자 3개월부터 한글을 가르치고, 3년이면 영어와 외국어를 가르치는 '조기교육'으로 표출된다. 지금은 소아 정신과 의사나 뇌신경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그와 같은 조기교육의 '무리'가 잘 밝혀져 있다. 특히 이른 바 '창의성'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놀면서 공부하는 것은 상식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에 아이들이 넉넉하고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갈수록 모든 교과목을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에 이해 통합적으로 재편성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갑갑한 학교를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상'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대안학교'조차 이미 낡은데다가, 모든 10대학생들을 위한 '대안'은 될 수 없다. 모든 이를 위한 교육은 누구를 위한 교육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부 어른들이 있지만, 이들의 말은 흘려버리도록 하자. 꿈은 이루어진다. 교육과정을 재편하여 학교 안에서 문화적 감수성을 키우는 문화예술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학교밖에도 아이들을 위한 각종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회관이나 도서관은 기본 시설물에 불과하다. 현재 닫혀 있는 '교육'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나, '교육적 상상력'의 열림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문화연대'의 제안처럼, 세종로를 '문화광장'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대단한 '꿈'이다. 세종로 주변의 온갖 위압적인 '권력기관'이 박물관이나 미술관, 과학관 등으로 대체되고, '녹색지대'로서의 '공원'으로 주변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녕 어려운 일일까. 그곳을 10대 학생들이 지식과 활동을 아우르며 '감수성'을 키우고 휴식까지 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해 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문화광장'인 세종로에서 10대들의 '축제'를 여는 것은 '열린 음악회'를 여는 것보다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2002년 6월의 거리에 나선 10대 학생들은 한국인의 '목마름'을 대변했다. 세계 12위의 경제규모에 걸맞는 '삶의 질'에 대한 목마름이다. 이제는 양적인 경제성장보다 삶의 질의 향상에 대하여 눈을 돌릴 때가 되었음을 그들이 보여준 것이다. 그들이 2002년 6월에 겪은 열린광장에서의 공동체 체험은 교육적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놀러 나갔다가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 어른들이 물려준 우리 역사에 대한 열패감 같은 것들까지 싹 날려버릴 수 있었다면 더욱 '교육적 승화'의 방책을 찾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질' 향상을 중심에 놓는 문화에서의 민주주의가 학교의 안팎에서 확대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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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25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8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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