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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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Ⅱ. 유가
Ⅲ. 묵가
Ⅳ. 도가
Ⅴ. 법가
Ⅵ. 기타 사상들

-참고문헌-

본문내용

父 亦云. 此二人說者皆當矣 厚者爲戮 薄者見疑 則非知之難也 處知則難也 『韓非子』 「說難」
今有美堯舜湯武禹之道於當今之世者 必爲新聖笑矣. 是以聖人不期修古 不法常可, 論世之士 因爲之備. 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兎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 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復得而身爲宋國笑. 今欲以先王之政治當世之民, 皆守株之類也. 『韓非子』 「五 」
楚人有 楯與矛者. 譽之曰..「吾楯之堅, 物莫能陷也.」 又譽其矛曰..「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或曰..「以子之矛, 陷子之楯, 何如?」 其人不能應也. 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立. [韓非子.難一]
Ⅵ. 其他
1. 名家
中國 諸子百家 중 詭辯學派. 戰國時代에는 辯者察士로 불렸고, 前漢時代에 司馬談이 모든 학파를 분류할 때 6家 중의 하나로 명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名家라는 명칭은, 이 학파가 명(名:槪念·表現·名目)과 실(實:內容·實體)의 일치·불일치 관계를 중시하여, 세상이 혼란한 것은 명과 실의 불일치에 그 원인이 있으므로 名實合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연유하였다. 이 학파의 대표적 인물은 公孫龍·鄧析·尹文·惠施 등으로, 특히 공손룡의 白馬非馬論과 堅白論은 서양의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처럼 교묘한 詭辯論으로 유명하다. 명가의 논리는 지나친 점도 있으나 논리학 발달에 공헌한 논리학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2. 縱橫家
중국 전국시대의 諸子百家 중 정치적 책략으로써 당시 국제외교상에서 활약한 遊說客들. 특히 蘇秦이나 張儀로 대표되는 合縱連衡의 책략이 그 중심을 이루었으므로 이 이름이 생겼다. 소진 등이 주장한 合從策이란 당시 동쪽에 있던 燕·楚·韓·魏·趙·齊의 6국이 연합하여 서방의 秦나라에 대항하려고 한 정책이며, 장의가 내세운 連衡策이란 진나라와 6국이 각각 손을 잡게 함으로써 진나라의 발전을 꾀한 책략이다. 그들의 언동을 많이 수록한 서책이 『戰國策』이다.
3. 陰陽家
고대 중국에서 陰陽說을 신봉하던 학파. 전국시대 諸子百家 중의 한 파로 齊나라의 鄒衍·鄒奭 등이 그 대표적 사상가이다. 『漢書』 「藝文志」에 의하면 그들의 설은 고대에 曆象을 관장하는 관직에 있던 羲氏·和氏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였다. 天體의 운행이나 四季의 推移 등 자연현상의 법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나, 반면 이 법칙을 人事에 관련시켜 인간생활도 이에 따르지 않으면 災害를 입게 된다는 등 미신적 요소가 강하다. 이 같은 중국의 음양설은 일찍이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天文과 曆學을 연구하는 많은 음양가[曆官]와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陰陽師가 속출하였는데, 주로 음양가라 하면 후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되었다. 그 대표적 인물로는 土亭 이지함을 들 수 있으며 地官 또는 日官이 묘지와 집터의 선정에서부터 年事의 길흉까지 점쳤다.
4. 雜家
중국 漢代에 행하여진 학문 분류의 한 流派. 한대의 史書 『漢書』 「藝文志」는 ‘諸子百家’라고 일컬어지는 고대 여러 학파의 학문을 10개파로 분류하였다. 그 중 9개유파는 각기 독자적인 주장과 체계를 갖는 학파이지만, 잡가는 문자 그대로 다른 학파의 학설을 자유롭게 채택하여 하나의 思想을 구성한 것으로, 이 유파를 한 유파로 간주하여 10개학파라 하였다. 이 잡가에는『尸子』『呂氏春秋』『淮南子』『東方朔』등이 포함되며, 또한 唐代의 역사서인『唐書』에는『論衡』『風俗通』『包朴子』 『玉燭寶典』 등도 잡가에 포함시킨다.
5. 農家
농업을 중시하고 농경에 힘써서 衣食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고대 중국의 학파. 농업경제와 농업기술에 대하여 연구한, 諸子百家 중의 일파이기도 하다. 본래 농업이 인류사회에 있어 기본적인 산업이라는 점에서 오랜 옛날부터 농업기술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고대 중국의 문헌을 처음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漢書』 「藝文志」의 「諸子略」에는 농가에 대해서, 『神農』(20편) 『野老』(17편) 등 농가 9사람의 書 114편을 들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모두 흩어져 없어지고 단편적인 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밖에 陰陽家·卜筮家의 書인 「數術」 중에 『神農敎田相土耕種』(14권)『昭明子釣種生魚鼈』(8권)『種樹臧果相蠶』(13권) 등과 같은 농업기술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農家’란 단순한 농업기술을 해설한 것이 아니라 어떤 思想的인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예문지」에 의하면, 그것은 君臣이 함께 경작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孟子』에“神農의 말을 이룬 자에 許行이 있다”라고 쓰인 허행의 주장도 똑같은 설이지만, 이 사상은 秦·漢의 제국 통일 후로는 쇠퇴하였다. 후세 농가의 書로 지목되는 것은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史書의『經籍地』등에는 농사에 관련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잡다하고도 짜임새가 없이 허술해졌다. 이에 따라『四庫全書』의 「總目」에서는『齊民要術』『農書』『農桑輯要』등 농가에 관계된 것을 9부 68권으로 한정하여 게재하였다.
6. 兵家
諸子百家 중의 일파로 춘추전국시대와 漢代에 많이 출현한 兵法家·兵學者의 一群. 周나라의 孫子·吳子·위료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고대의 司馬職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用兵방법을 설명하였다. 『漢書』 「藝文志」 兵書略에서는 이것을 兵權謀·兵形勢·兵陰陽·兵伎巧의 4종류로 분류하여, 병가의 書, 53家 790編, 圖 43권으로 정리하여 설명하였다. 후세에는 武經七書라 하여 『孫子』 『吳子』 『司馬法』 『위료자』 『三略』 『六韜』 『李衛公問對』가 대표적 병서로 불리었다. 이들이 해설한 바는 儒家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단순히 전략·전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외교 등 처세 전반에 걸친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어, 병술만을 해설한 서유럽의 병서와는 그 내용이 크게 달랐다.
참고문헌
韓龍得 著, 漢文入門, 弘新文化社, 1991.
장기근.이석호 譯, 老子/莊子, 삼성출판사, 1989.
리우샤오간著·최진석譯, 莊子哲學, 소나무, 1990.
勞思光著·鄭仁在譯, 中國哲學史(古代篇), 探求堂, 1992.
石田 博編, 諸子精選, 笠間書院刊.
李春植著, 中國古代史의 展開, 新書苑, 1992.
李海英, 先秦諸家의 批判意識에 관한 硏究,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학위논문, 1990.
두산동아, CDROM 두산세계대백과사전, 1997.

키워드

유가,   묵가,   도가
  • 가격3,300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2.11.07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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