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2대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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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인더스 문명
(2) 이집트 문명
(3) 황하 문명
(4) 메소포타미아 문명
(5) 올메까 문명
(6) 떼오띠우아깐 문명
(7) 마야 문명
(8) 똘떼까 문명
(9) 아스떼까 문명
(10) 잉카 문명
(11) 아프리카 문명
(12) 에게 문명
(13) 크레타 문명
(14) 미케네 문명
(15) 바르나 문명
(16) 오리엔트 문명
(17) 그리스 문명
(18) 메소아메리카 문명
(19) 아스테크 문명
(20) 안데스 문명
(21) 관개 문명
(22) 수메르 문명

본문내용

4요소에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마다 태양이 되어 우주의 네 구역에서 행동을 일으켜 세계에 변화와 갈등과 진화를 가져다 주면서, 탄생과 사멸의 주기(週期)를 되풀이하며 역사의 각 시대를 구성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아스테크는 자기들이 지진(地震)을 나타내는 제5의 태양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태양이 사멸하고 우주(宇宙)가 멸망하는 것을 저주하기 위해 대규모적인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행했던 것이다. 즉 세계의 본질인 허무의 암흑과 싸우는 태양에게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쳐, 여기에 활력을 주어 영원히 아스테크 시대를 지속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스테크는 인신공희를 행하기 위한 여러 개의 대신전을 수도에 세웠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달력에 의해 제일(祭日)을 정하여 각종 의식을 행하였으며, 또한 산 제물을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강대한 군사조직을 만들어 끊임없이 정복을 행하고 포로를 모아들였다. 많은 종속도시로부터 완비된 세제(稅制)에 의해 받아들인 방대한 돈은 모두 이와 같은 종교 ·사회기구를 확장하고 기능을 확대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회조직면에서 아스테크는 카르프리라는 공동체 조직을 단위로 하는 계급사회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토지 보유의 형태가 보이는 한편, 그 도시생활에 있어서는 사회 계층과 직능에 따라 거주구역의 행정조직이 이루어져 있었고 자치적인 경찰과 사법(司法) 조직도 발달해 있었다. 직업도 여러 갈래로 분화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포추테카라고 불리는 상인(商人) 계층이었다. 그들은 토라테로르코 ·초르라 그 밖의 도시에서 큰 시장을 개설하였고, 그들 집단은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지방을 널리 여행하며 교역을 행하였다. 또한 귀족 ·평민의 교육기관도 발달해 있었다.
이처럼 발달한 아스테크문명은 1520년 갑자기 나타난 에스파냐의 페르난도 코르테스가 거느린 수백 명의 군대의 침입으로 수개월에 걸친 외교교섭과 격렬한 전투 끝에 멸망하였다. 그러나 그 문화의 모습은 정복된 후 건너온 가톨릭교 성직자들 중의 유지와 그 밖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아스테크 시대에 텍스코코 등에서 만들어진 인디오의 그림 몇 가지가 소멸을 면하였으며, 또한 에스파냐 식민지시대에 복제(複製)된 그림도 상당히 있으므로 아스테크 문화의 상세한 점이나 그 왕조의 역사는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늘날 멕시코나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 이 문화에 대한 분석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 안데스 문명
이 문명은 이미 BC 1000년경에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메소아메리카문명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고대문명의 2대 중심을 이룬다. 안데스 지대에 살았던 최고(最古)의 인류는 약 1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채집(採集)과 수렵생활을 하였다. 안데스 문명은 고고학상으로 형성기(形成期:BC 2500∼BC 300), 고전기(古典期:BC 300∼AD 1000), 후고전기(後古典期:1000∼1532)의 3기로 나누어진다.
안데스 문명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문자(文字)는 끝내 발명되지 않았다. 가축은 구대륙의 소 ·말 ·양 ·돼지 등 대신에 낙타과의 라마나 알파카가 사육되었다. 식물은 신대륙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토마토 ·담배 등이 재배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자 이 문명은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에 의하여 파괴되었지만 그것은 구대륙과 신대륙의 문명의 내용, 사회의 발전 단계가 다르고 무력적으로 강약의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21) 관개 문명
나일강의 고대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도 문명, 황허강[黃河] 유역의 중국 문명 등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이 관개사업 위에 성립되어 발달하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 지대의 고대문명도 관개문명에 속하지만, 잉카 ·마야 문명은 큰 하천을 끼고 있지 않은 것이 특징으로 관개문명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BC 4세기경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古朝鮮) 문화와 1세기 무렵에서 3세기 중엽에 이르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 제국(伽倻諸國)의 문화가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던 관개문명이었다. 이집트에서는 BC 5000년경의 아무라기(期)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BC 5000년경의 우바이드기에, 중국에서는 BC 700∼BC 400년에 이르는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미 관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관개사업을 하는 데는 강력한 지도자와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하였고, 이때의 치수(治水)사업을 위한 강력한 지도자가 곧 왕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관개에 의하여 풍부한 식량공급이 보장되었고 거주지와 인구가 더욱 확대되어 도시문명 발달의 기반이 되었다.
(22) 수메르어, 수메르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강 사이의 좁고 기다란 평야지대는 옛 그리스인들이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의 땅')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에는 시리아 북부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을 합쳐서 그렇게 부른다. 엄밀히 말해 이 지역 최초의 문명은 서기전 5000년~4300년경 번영했던 시리아 북부의 옛 도시 '텔 할라프'에서 일어난 비수메르계의 '할라프 Halaf 기' 문화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곳은 1972년~1929년 사이 독일의 오펜하임이 발굴했던 신석기 초기 시대의 도시 유적으로, 보리재배, 가축사육과 함께 구리 제품과 칠무늬 토기를 만들었던 문화기였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이후문명은 남부 메소포타미아가 기선을 잡았다. 늦어도 서기전 3500년~3000년 사이에 분명히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수메르인은 원래 이 지역 원주민이 아니라 이르게는 서기전 4000년 무렵 중앙 아시아의 어디에선가 이 곳으로 이주, 정착했던 것이 분명하다. '수메르'라는 호칭은 원래 북부의 아카드인이 부르던 두 강 사이 하류지역 '낮은 땅'을 뜻하는 이름이었는데, 수메르인은 스스로 '키 엔 키르' 의 주민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GIR는 로켓( 및 '게 crab') 이라는 뜻이다. 곧 '로켓의 신의 땅' 이란 뜻이다. 이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그들이 자기네 땅에서 신들이 로켓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던 것이다.

키워드

세걔,   22대,   문명
  • 가격2,3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2.12.20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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