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정치경제학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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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의 개관.
1.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
2.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여러 연구들.
3. 정치경제학의 비판과 도전.
II. 마르크스주의 외부에서의 정치경제학적 논의들
1. C. W. Mills의 「Power Elite」에 나타난 ‘엘리트 모델’/도구적 관점
2. J. Herbert Altschull의 「Agents of Power」에 나타난 ‘권력의 대리인’
3. E. Herman & N. Chomsky의 「Manufacturing Consent」에 나타난 ‘선전모델’
III.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연구 분야들
1. 상품화
1-2. 노동으로서의 시청(수용자 상품론의 정교화)
2. 공간화
3. 구조화(Structuration)
IV 정치경제학과 문화이론(Cultural Studies)간 논쟁:
1. Political Economy and Cultural Studies : Reconciliation or Divorce? - Garnham
2. Cultural Studies Vs. Political Economy: Is Anybody Else Bored With This Debate - Grossberg

<참고문헌>

본문내용

은 문화연구의 소비개념과 그에 대한 강조는 지나친 대중문화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비록 문화연구에서 그러한 경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주 미약하며 동시에 그러한 경향은 문화연구의 영역 안에서도 비판받는 지점이다.
문화연구는 문화적 산물을 소비하면서 즐기는 대중들이 그 내용을 "저항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한다. 즉, Garnham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적 산물이 해독과정에 있어서는 고정된 주어진 의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수용자들의 능동적이고 차별적인 해독이 존재한다고 파악한다. 기원(origin)과 효과(effect)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며 따라서 정치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생산과 소비의 문제 역시 별개로 사고되어야 한다. 결국 Garnham은 경제적 생산과 문화적 생산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의 생산에 대한 협소하고 추상적인 정의가 문화연구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두번째로 문화연구는 대중들이 정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조작되고 속물적인 근성만을 지닌 존재라고 파악하지 않는다. 문화연구는 이러한 대중들의 속성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대중들이 수동적이고 조작되는 존재가 아님을 주장한다.
세번째로, 문화연구에서는 계급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파악하지 않는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성과 인종과 같은 것 역시 계급의 문제틀 하에서 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계급이라는 것이 현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핵적 가치는 아니다. 계급의 문제를 문화연구 역시 중시하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과 인종과 같은 문제틀이 똑같은 가치로서 취급되어야 한다. 특히 문화연구는 계급을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는 경제적 조건(계급, 시장)만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모순은 다양한 사회적 모순들의 접합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은 모순(contradiction)을 사고하지 못한다. 모순은 다양한 사회적인 불평등의 접합에 의해 구성되고 드러나는데 정치경제학은 지나치게 기계적인 방식으로 자본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을 결정한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의 문제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을 고려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문화연구는 도식적인 토대-상부구조 모델을 거부한다. 문화연구는 문화안에 존재하는 복잡성과 모순을 사고함과 동시에 사람, 문화, 권력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역시 고려한다. 또한 문화연구는 '문화의 자기생산(self-production of culture)'을 강조하며 생산은 소비와 재생산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다는 테제를 거부한다. 문화는 생산된 산물에 대한 수용자들의 문화적 실천에 의해서 구성되는 새로운 생산이다.
이러한 관점하에서 문화연구자들은 문화연구가 적대(opposition), 저항(resistance), 투쟁(struggle), 생존(survival)의 문제를 동등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으며, 단지 투쟁과 생존의 문제가 적대와 저항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고한다. 결론적으로 문화연구는 지배의 체계를 사고하기보다는 지배의 체계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연구하며 실질적으로 적대를 발생시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따라서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은 통일된 이론틀 하에서 존재할 수 없으며, 한 시대를 다른 차원에서 연구하는 동등한 학문으로 양립할 수밖에 없다. 즉, 정치경제학은 문화산물의 생산과 그것에 연관된 조직적인 행위를, 그것을 작동시키는 권력의 문제와 함께 사고하는 것이고 문화연구는 문화적 소비와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기에 양자의 통일은 불가능한 것이고 실제로 통합된 적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Garnham의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은 연구영역이 아닌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생각해볼 문제 >
* Dallas의 '수용자 상품론'과 Jhally의 '노동으로서의 시청'의 문제는 정치경제학에서 새로운 관점과 분석틀을 제공해준다. 둘의 논의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도 적용가능한 것인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특히 인터넷 기업의 자산가치라는 부분에 대한 엄청난 가치평가가 거품인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위성과 케이블과 같은 협송에서, 그리고 인터넷 방송에서 '노동으로서의 시청'이 가속화될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 사이버네틱 상품에 관한 논의들의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해보자(수용자들의 분류화 등).
* 초국가기업의 등장은 기업과 국가간의 경계에 새로운 문제를 제시한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분야 및 통신, 위성 등의 부분에서 기업과 국가와의 상관관계는 상호구성적이고 가변적이다. 과연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이며, 물리적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듯한 초국적 기업의 활약 상황에서 이 둘 간의 정치경제학적 상관관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단적으로 말한다면 초국가기업과 국가(특히 민족국가)와 관계는 갈수록 독립적이 되는가 아니면 상호의존적이 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 정치경제학과 문화연구의 관계에 대해 Garnham과 Grossberg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전자는 '문화 정치경제학'을 그리고 '후자'는 둘의 각각 다른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피상적이나마 각 구성원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김지운 외. 「비판커뮤니케이션 이론」 나남, 1991.
Altschull, J. H. 「지배권력과 제도언론」 강상현·윤영철 역, 나남. 1991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s, March, 1995.
Herman, E. & Chomsky, N. "선전모델의 회고와 지평", 「커뮤니케이션 기술혁명의 정치경제학」, 커뮤니케이션북스, 1999.
Jhally, Sut. 「광고문화: 소비의 정치경제학」(1996) 윤선희 역. 한나래
Mills, C. W. 「파워엘리트」 진덕규 역, 한길사. 1979
Mosco, V.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성찰과 새로운 출발」 김지운 역, 1998.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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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4.27
  • 저작시기2003.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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