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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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카톨릭 개혁
Ⅰ. 스페인의 개혁
Ⅱ. 이탈리아의 개혁
1.추기경 콘타리니와 카라파
Ⅲ. 레겐스부르크 협의회

2.반(反) 종교개혁
Ⅰ. 예수회
Ⅱ. 트렌트 공의회
Ⅲ.종교재판

본문내용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진행됨으로 그에 대한 카톨릭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교리의 성문화 작업을 필요해 지게 되었다.
트렌트 공의회의 소집 목적은 신앙적인 분열을 극복하고 교회의 개혁을 추진하고 불신자들에 대한 기독교권의 통일권 대처라고 하는 3가지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찰스 5세는 루터파가 주장하는 만인제사장설로 인해 개신교도와 중세적인 교리의 예식사이에 생겨난 진정한 거리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이 화해하기를 원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의회의 성격은 갈수록 카톨릭 적으로 흘러가고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의 그 무엇하나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리 혹은 개혁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다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교황은 행정적, 교리적 규정에 먼저 착수하기를 원했으며 찰스5세와 스페인 감독들은 폐해들의 개혁을 먼저 진행하기를 원했다. 결국 다른 두 그룹이 각각 두 문제를 다루도록 하는 의사 진행 방법이 채택되었다.
회의의 목적은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지 이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고 선언하였다. 성경과 전통은 동일하게 복음과 도덕들의 출처들로 정의되었다.
1회기에 논의된 원죄와 칭의 개념에서 칭의에 인간 행위의 공헌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성례전들은 중세 신학과 유사하게 7가지로 확정되었다.
성직자 독신주의는 강화되었다.
면죄부교리는 그대로 보수하면서, 이에 수반된 재정적 오용들을 시정하려고 했다.
이러한 조항들로 보아 우리는 왜 트렌트 공의회가 반 종교개혁의 코드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공의회는 개신교와의 일체의 타협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성직자들의 부패에 대해서 인정하기는 하였으나 교리적인 잘못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트렌트 회의는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한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의 응답으로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논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로마교회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재천명하였다. 즉, 개신교의 교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Ⅲ.종교재판
- 교황 바울 4세가 된 추기경 카라파는 스페인의 종교개혁에서 훈련받은 인물로 개신교들에 대한 억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스페인에서 행해지고 있던 종교재판을 도입했다. 4개의 규칙들이 제정되었는데 혐의만으로도 처벌할 것, 유명한 사람이라고 봐 주지 말 것, 권력 있는 사람들의 비호를 받으려 하는 사람들 엄하게 처벌할 것, 칼빈주의자들을 관대하게 대하지 말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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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3.06.05
  • 저작시기2003.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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