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제사의 특징과 변천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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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로마의 고대(제1기 건국(서기전753년)-서기전202년………고대 또는 공화정전기)
1) 사회구성
2) 국가조직
3) 법의 특징과 법원

2. 공화정후기(제2기 서기전202년 - 동27년 …………공화정후기)
1) 종교및 사상의 변천
2) 만민법의 발달
3) 법무관법의 발달
4) 법학의 발달

3. 원수정시대(제3기 서기전27년-서기235년…………원수정시대)
1) 로마원수정의 확립
2) 법원
3) 고전시대의 전·후기별 특성

4. 전주정시대(제4기 서기 235년-서로마멸망(서기476년)…………전주정시대)
1) 제법체계의 통일
2) 로마법사상의 특징


Ⅲ. 결 론

본문내용

그리하여 고전시대의 학자가 남긴 업적의 주석, 종합만이 빈번하게 행하여졌고, 그 권력이 절대적인 황제는 이러한 정세에 대치하여 그 권력을 가지고 전시대의 학자의 견해의 인용을 봉제하는 방향으로 학설인용의 조류에 봉제를 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426년에 인용법의 제정으로 5학자의 저서와 이들 학자가 인용한 다른 학자의 견해로서 그 정본과의 비교에 의하여 확인된 것에 대해서만 구속력을 인정하여 특정의 구체적 문제에 관하여 이들 학자의 견해가 다를 때에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고, 동수의 경우에는 Papinianus가 취하는 견해에 의하며, 그 의견이 없을 때는 비로소 재판관이 어느 견해에 따를 것인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는 기계적인 규정을 만들었었다. 따라서 전시대의 학설만이 권위를 가졌고, 그것이 법원으로서 부동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황제의 명령에 의하여 효력을 가지는 학설법이 되어 법학의 자주적인 발전은 전적으로 정지되고 말았다.
이 시대에는 전시대와는 달리 오로지 교육 또는 실용의 목적으로 하여 칙법과 학설법이 편찬되었고, 자료의 집성과 법전의 편찬이 행하여 진다. 290년대에는 사편의 속법집으로 Gregorius 의 법서(Codex Gregorianus)와 그의 보유편의 의미를 가진 헤르모게니아누스의 법서(Codex Hermogenianus)가 있었는바, 전자는 196년으로부터 296년까지의 속법을 수록한 것이었다. 후자는 293년으로부터 365년까지의 칙법을 수록하고 있는바, Gregorius 와 Hermogenianus는 모두 Berytos법학교의 교수라고 전해지며, 이는 사인의 손으로 편찬된 사편의 법서이나 칙법집은 권물은 아니고 지금의 서적형식으로 만들어져서 법전으로 불리운다. 그 후 시대가 내려와서 동로마제국에서는 438년에 Theodosius Ⅱ세에 의하여 공편의 칙법집이 만들어졌는바. 이를 데오도시우스의 법전(Codex Theodosianus)이라 한다. 이는 Constantinus帝이후의 칙법중 실용적인 것만을 추려서 편찬한 것으로서 439년에 시행되었다. 서로마제국에서는 그 후 468년까지의 칙법의 편찬등이 행하여졌다.
2) 로마법사상의 특징
약 2세기반에 걸친 이 시대를 일반적으로 법학의 몰락과 로마법의 변질시대로만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고, 이미 전시대의 형식적으로 통일된 시민법과 만민법 및 시민법과 법무관법의 질적 융합을 가져온 시대로 평가되어야 하며, 이에 복잡다단하였던 관계제법원이 통일되어 황제의 입법으로 단일화하여 추진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황제의 입법에 법학자의 협력이 뒤따라서 법학에 기여하였으리라는 것은 추측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이 시대의 법의 변천에는 동부에 있어서는 그리스 기타 동부 제지방의 법이 영향을 미쳤고, 서부에 있어서는 게르만의 충돌과 융합의 과정을 밟았던 것이며, 이리하여 또한 동서양법이 서로 영향을 준 점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방면으로부터의 영향을 미친 것 중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는바, Diocletianus帝같은 분은 로마 고유의 전통을 부활, 보전하려고 힘쓰고 현지의 고유법을 박멸하여 국내법의 통일을 꾀하였음에 반하여 Constantinus帝는 구법의 혁신자 또는 반란자라고 불릴정도로 기독교적인 정신에 기하여 혼인 기타 가족법영역에서의 각종의 개혁을 하였고, 그 밖에 사회적 보존입법에 있어서도 기독교가 미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Ⅲ. 결 론
이상과 같이 로마법의 시대별 변천과정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로마의 역사는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장과 무역을 통한 활발한 상거래, 그리고, 광대한 교역범위로 특정지을 수 있을 것이며, 로마는 그러한 국가를 지탱해 나가기 위한 법률체제의 체계적인 정비를 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만민법이 발생하였고, 세계시민의 정신이 발생하였다. 오늘날, 이제 세계는 국경없는 무역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로마의 역사가 그러하였듯이 국경을 두고는 있으되, 국민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국내에 규정한 법률만으로는 유지가 힘든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로마법의 체제와 운영과정에 대한 연구는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법률이 발달하고, 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할 때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고, 법률의 권한이 축소되면서 또한 국가의 부도 소멸해 갔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김세신. 「서양법제사론」 법문사. 1997
이태재. 「서양법제사」 진솔.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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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3.07.29
  • 저작시기2003.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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