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후의 양안관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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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79년 이후의 양안관계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중국과 대만의 통일관
1. 중국의 통일관
2. 대만의 통일관

Ⅱ. 중국과 대만의 정책
1. 중국의 통일정책
2. 대만의 통일정책
3. 대만의 대외정책

Ⅲ. 중국과 대만의 대외관계에 따른 중ㆍ대만 관계
1. 대미관계
2. 기타 서방 주요국가와의 관계

Ⅳ.양안 교류
1. 경제적 측면
2. 사회ㆍ문화적 측면
3. 군사ㆍ안보적 측면
4. 반관기구의 활동

Ⅴ. 양안관계 개선의 문제점
1. 통일에 대한 시각
2. 국제적인 지위에 대한 문제
3. 민주화에 대한 시각 차이

본문내용

안의 교류ㆍ협력과정에서 파생된 제반문제를 협의하는 동시에 양안의 三通과 정부차원의 협상분위기를 조성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가 설립되어 양안의 교류 협력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교류협력의 제도화를 추진하는 중재기구 역할을 시작했다.
두 기구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93년 4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왕고회담(汪辜會談)
) 중국의 왕도함(汪道涵) 해협회 회장과 대만의 고진보(辜振甫) 해기회 회장을 대표로한 회의로서 주요현안은 ① 해협회와 해기회간 회담의 정례화, ② 교류와 협력과정에서 야기된 각종 범죄나 분쟁 처리를 위한 관련 협정 체결, ③ 대륙에 진출하고 있는 대만 기업의 투자보장문제 등이다.
'이다. 중국과 대만은 왕고회담을 통해 교류ㆍ협력의 제도화 추진을 위한 양안의 공식적인 접촉통로 확립이라는 기본적인 목적이외에도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중국은 비록 비정치 분야의 논의에 한정된 회담이긴 하지만 우선 대만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여 대만의 三不정책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반면에 대만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지자 三不정책이라는 카드를 이용해 투자보장협정, 무력사용 포기 등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어 대만의 정치적 실체 확보를 위한 목표를 단계적으로 실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왕고회담은 회담이후 공동성명을 포함한 4개의 협의서를 공식 채택하고 두 기구간의 접촉을 정례화해 양안간 교류ㆍ협력의 제도화 추진을 위한 협상통로의 확보라는 기본적인 목표는 달성하였으나 중국과 대만이 의도한 정치적 관계개선 측면에서는 그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왕고회담에 이어 93년 11월에 개최된 하문회담(廈門會談)과 12월에 개최된 대북회담 등 4차에 결친 후속 회담에서도 투자보장협정, 대륙 주민의 밀입국문제, 중국 민간항공기 납치사건의 범인 송환문제, 대만해협에서의 어로분류 등을 가지고 협상을 벌였으나, 쌍방의 정치적인 입장과 부딪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원인은 중국은 대만과의 각종 협상이나 협정을 국내차원으로 인식할 뿐 대만의 정치적 실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던 반면, 대만은 양안간의 협상을 대등한 정부 대 정부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해협회와 해기회의 실질적인 기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Ⅴ. 양안관계 개선의 문제점
1. 통일에 대한 시각
중국은 一國兩制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대만은 대만주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一國兩制를 다른 방면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이 계속 一國兩制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통일 후의 중국이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공산중국도 아니고 중화민국도 아닌 중화연맹 혹인 중화국가협력체(大華國協)등으로는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국정부, 두 개의 대등한 정치실체, 단계적인 두 개 중국 또는 국제연합속의 두 개의 중국대표, 중화민국은 대만 속에 있다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 沈君山, "北京歸來看兩岸關係", 『九十年代』(香港:1996.3.) pp.81-83
. 따라서 이러한 통일관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양안관계의 발전은 실질적인 변화를 예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2. 국제적인 지위에 대한 문제
중국은 대만의 국제적 지위 획득을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보고 있으며,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중국방문 기간 중에 이 관점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대만의 입장은 대만이 이미 국제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이 계속 국제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대만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중국도 한편으로는 대만의 외교적 능력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중국은 대만에 대해 좀더 전면적인 관계개선을 통해 양안관계를 유지하여 주도권을 선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3. 민주화에 대한 시각 차이
대만은 중국의 민주화를 원하고 있으며 중국이 민주화된다면 용이하게 통일을 위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이 말하는 民主化란 分裂分治를 주장하고 있으며 主權은 공유하되 治權은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라는 구호아래 민주적인 투표로 대만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것에 대해 중국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중국은 대만의 민주주의, 즉 서구식 민주주의는 중국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 원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모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중국의 민주주의는 구호만 민주주의일 뿐 다른 정당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당독재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중국의 군대는 공산당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군대의 군사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군대가 국가의 안전유지보다는 당의 정권유지로 활용되고 있다.
셋째, 권력분립이 되어있지 않은 중국의 정치체제는 비록 군부, 정당, 정부가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들을 통제하는 인사들이 모두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분립을 할 수가 없다.
그 외에도 중국에는 여러 가지 민주화와는 동떨어진 사회체계가 즐비하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은 서로 각기 다른 체제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고 그 체제를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중국과 대만이 각자 자신의 체제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에는 모두 무리가 있으며 이를 조율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문흥호, "중국 대만관계와 남북한관계의 대내외 요인 비교", 『중소연구』 제25권 3호 2001
조일희, "중국 대만의 통일정책 및 통일여건에 관한 고찰", 『한국동북아논총』 제10호 1999.5
문흥호, 『13억인의 미래』, 서울 당대 1996
문흥호, "양안관계 연구", 『중국정치연구론』정재호 편, 나남
박두복, "이총통의 발언으로 중국 대만관계 악화", 외교안보연구원 1999년 7월
정용하, "대만의 선거와 양안관계", 한국민족문화 2000년 6월
沈君山, "北京歸來看兩岸關係", 『九十年代』(香港:1996.3.) pp.81-83
中國時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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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9.26
  • 저작시기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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