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 연구-실학 사상의 범위 설정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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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정복 연구-실학 사상의 범위 설정과 관련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실학에 대한 필자의 입장 정리

2. 본론-실학 형성의 배경

3. 실학의 의미와 성격

4. 순암 안정복의 생애

5. 순암의 학통

6.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

7.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 - 토지제도

8. 동사강목(東史綱目)

9. 안정복의 서학에 대한 비판의 이론적 근거

10. 평가

11. 참고문헌

본문내용

섬기는 것이라 가르친다. 서학에서 마치 무당이 여러 가지 기도를 하듯이 늘 자기 허물을 용서하고 지옥을 면해 줄 것을 안타까이 빌고 있는 것은 천주를 섬기는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순암은 천주를 섬기는 방법이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순암은 또한 천주를 섬기는 동기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예수가 세상을 구하는 뜻은 오로지 후세에 있으며 천당 지옥으로써 선을 권하고 악을 경계한다. 성인이 도를 행하는 뜻은 오로지 현세에 있으며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으로써 교화를 한다." 또한 성인이 도를 행하는 것은 공적(公的)이고 예수가 후세를 이야기하며 종교를 전파하는 것은 사적(私的)이라고 하여 동기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영혼에 대한 비판
순암은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이(異)를 중시하였는데, 이러한 이기론의 입장에서 영혼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서학에서 말하는 영혼을 유교의 문헌에 나타나는 귀신과 같은 것으로 보고 특히 사람이 죽은 귀신을 영혼이라고 본다.
내 나름대로 일찍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사람의 생사는 대체로 말한다면 모두 기(氣)의 모이고 흩어짐에 말미암는다. 사람의 죽음은 마치 불이 꺼져서 연기가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 가운데서 혹 읕어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천주인들의 말과 같이 영혼이 남아 있는 것이 된다.
順菴文集 卷 上星湖先生書戊
여기서 순암은 영혼을 기(氣)의 일부가 흩어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러한 견지에서 순암은 영혼이 불멸한다는 말을 비판하게 되었다. 영혼을 기(氣)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본다면 결국 영혼은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모였던 기는 반드시 흩어지고야 말기 때문이다. 다만 흩어지는데 걸린 시간이 길고 짧음이 있을 뿐이다. 물론 기(氣) 자체는 길이 남는다. 그러나 이 기(氣) 자체는 그 기가 모여서 생긴 특정한 영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10. 평가
안정복은 18세기 후반 성호학파가 분열되기 시작할 때 성호학파의 계보를 이어 제 2세대 성호 학통으로 넘기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한 사람이다. 안정복은 이상하리만큼 학통을 잇는 것에 집착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안정복 이후 계보를 이었던 황덕길, 황덕일이나 그 후 성호 학통의 새로운 전성기를 불러 일으킨 허전등 모두 계보를 잇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하여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계보를 잇는다는 것은 계보 위에 있는 사람은 좋지만 아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발전에 저항이 생기는 것 같다. 계보를 이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후학들은 보수적으로 전대의 학자들을 답습했기 때문이다. 후학들은 새로운 저서를 남긴 것이 유명하지 않고 단지 순암이나 성호의 문집을 간행하고 그들의 저서를 정리하였던 업적만 남아 있다. 후학들의 양성에 힘을 쏟은 것이 어찌보면 성호나 순암 안정복이 더 유명해 진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후학들이 떠받들고 그 후학들이 나중에 그들의 대 선배를 나쁘게 말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선배들의 저서를 집대성 하여 후대에 남겼다. 반면 후학 양성에 힘을 거의(전혀~!) 기울이지 않은 권철신 권일신 등은 재주가 뛰어나고 학문 수준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서는 유명하지 않고(전해지고 있는지 모르겠음) 은근히 안정복이 그렇게 아꼈는데도 불구하고 노년의 안정복에 반발하여 은혜를 져버린 사람들로만 기억되고 있다.
노년의 안정복이 이에 충격을 받아 자신의 계보를 이을 믿을만한 후학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반면 후대 학자들은 계보를 잇는 것을 신경을 쓰느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여유가 없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선배의 말을 경전처럼 따르고 거의 대부분 척사로 남아 시대에 뒤쳐지고 말았다. 실제 안정복이 서학을 반대한 이유는 서학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이익 학통 사람들이 그쪽으로 빠져들어 탄압받을까봐 두려워서 인듯하다. 안정복이 죽을 때 자신이 서학을 이해하지 못해 지옥에 갈 지도 모르겠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한 데서 우리는 안정복이 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철저히 분석 하였을 뿐 그 논리가 맞다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후대 계보를 잇는 학자들은 안정복의 서학 비판을 그대로 수용하여 끝까지 척사를 하며 계보를 잇는다고 하였다.
안정복의 중요한 점은 그의 학문이나 주장이 아니다. 학문이나 주장을 하는 데 있어 그가 가졌던 겸손함과 철저함, 그리고 열린 자세이다. 그런데 후학들은 안정복의 표면적인 면만을 받아들이고 말았던 것 같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안정복이 결코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정복이 서학을 비판하고 유학을 따른 것은 그것이 그의 논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그를 정말 실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점인 것 같다. 열린 자세로 학문에 임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북학파가 청의 문물을 무비판적으로 경탄하며 받아들이려 한 것 보다는 안정복의 열렸지만 철저하게 비판적인 자세가 더 근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받아 들이는 것 보다는 자주적으로 비판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근대 정신에 더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를 근대적 정신으로 보는 논리는 참으로 우습다. 서양의 근대 국가의 중요한 특징 은 비판 정신과 철저한 논리적 사고라 생각한다.
안정복이 근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충분히 근대로의 변환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안정복은 진정한 실학자이며 근대적 인간이다.
11. 참고문헌
-안정복의 사상 연구; 서학과 성리학에 관한 인식을 중심으로(강병수,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7)
-서학에 대한 한국실학의 반응(최동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출판부, 1988)
-강세구,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 지리고에 관한 일고찰
-강세구, 안정복의 국방론-동사강목의 사론을 중심으로
-강세구, 동사강목 연구
-한상권, 순암 안정복의 사회사상
-심우준, 순암의 정전제와 공전제
-김태영, 순암 안정복의 향정론
-심우준, 순암 안정복의 동약
-심우준, 순암 안정복의 지방행정론
-한국사상논문선집 13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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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9.28
  • 저작시기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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