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드러내는 신음소리 비슷한 음성(音聲)이 들려와 나의 감정(感情)에 동의(同意)를 보내주었다. 정말 무엇 때문에 영화 속에 나온 저 일본의 한 산간마을에서는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를 늙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산 속에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몇 달 때 계속된 고민(苦悶)을 해결해 보기 위해 지겹게 생각하였다. 단지 정말로 식량 문제 때문이라면, 난 인간(人間)이란 존재가 더 없이 미워질 것 같았다.
난 내 자신(自身)에게 치열하고 끈질기게 질문(質問)하고 요구(要求)했다. 제발 스크린에 비춰진 저 들의 문화(文化)를 좀 제대로 이해해 보라고...
영화의 막바지, 드디어 다츠헤이는 오린을 나라야마에 내려주고 자리에 앉게 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다츠헤이는 오린을 내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오린은 다츠헤이의 어깨를 흔들며 여기에 내려달라고 한다. 다츠헤이는 오린을 내려준다. 다츠헤이와 오린의 마지막 포옹(抱擁).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엇이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이 내 마음속에 전해왔다. 내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난 너무 놀랐다. 내가 지금 왜 이 장면을 보고 우는 것인가.
' 아! 그렇구나. 오린이 다츠헤이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에 온 것이구나. 다츠헤이가 오린을 등에 업고 나라야마에 온 것이 아니구나.'
정말 치열하고 끈질기게, 혼자서 나라야마 풍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 왔다. 오린이 나라야마에 올라 온 것은 비록 마을의 전통(傳統)적 관습(慣習)이었지만, 그것은 어떠한 강압(强壓)도 아닌, 오린 자신의 선택(選擇)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깊고 한없는 '내리사랑'이었다.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츠헤이가 산을 내려가다 눈이 내리자 다시 어머니에게 찾아가는 장면부터는 더 이상 눈물 때문에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린은 마지막 자기에게 주어진 도시락마저도 아들을 위해 다츠헤이의 지게에 걸어준다. 그녀는 자신이 나라야마에 남음으로써 다츠헤이의 남은 식구(食口)들이 올 겨울을 나는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녀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 바로 나라야마에 남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갑자기 내가 너무 감상적(感傷的)으로 변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영화는 끝이 났고, 난 강의실의 뒷문으로 빠져 나와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쉬는 시간이후에 다른 수업이 있었기에 영화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동물(動物)들도 갖고 있다는 모성애(母性愛). 그렇다. 오린이 보여준 나라야마로 가는 모습은 어머니로서 다츠헤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내리사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존경(尊敬)하고 사랑(愛)하는 것에 비교(比較)할 수가 없다. 인류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든 인류가 다 소유한 자식 사랑이다. 바로 어머니의 모성애.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연구하더라도 발견(發見)할 수 있는 모성애. 이것이 바로 이 "나라야마 부시코"에 나오는 '나라야마 풍습'을 인류학적으로 해석한 나의 포인트(Point)다.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孝)". 이 제목은 분명 잘못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선배 형에게 '나라야마 부시코'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더니 '나라야마에서 효(孝)를 마친다'는 뜻이라 가르쳐 주었다. 분명 다츠헤이가 오린의 뜻대로 어머니를 업고 나라야마에 간 것은 그의 지극한 효(孝)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영화의 제목을 지었다면 '나라야마에서 모성애를 마친다'라는 뜻의 제목을 지었을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인류학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해석한 것에 관점을 맞추어 제목을 짖는다면 정말 다른 제목을 지을 것 같다.
본 보고서의 전반부에서 이 영화를 보고 해석한 나라야마 마을 사람들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모습과 풍습들을 이 마을의 특수한 문화로 해석하였다면,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화현상으로는 바로 내가 힘들게 발견한 '모성애'를 들고 싶다. 문화를 상대적(相對的)인 관점(觀點)에서 바라본다고 할지라도, 문화는 크게 두 부류(部類)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문화만이 갖는 특수(特殊)한 문화이고, 또 하나는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普遍的)인 문화현상이다. 난 이것을 "나라야마 부시코"에 이렇게 접목(接木)시킨 것이다. 난 이제 충분히 나라야마 풍습을 그 마을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난 내 자신(自身)에게 치열하고 끈질기게 질문(質問)하고 요구(要求)했다. 제발 스크린에 비춰진 저 들의 문화(文化)를 좀 제대로 이해해 보라고...
영화의 막바지, 드디어 다츠헤이는 오린을 나라야마에 내려주고 자리에 앉게 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다츠헤이는 오린을 내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오린은 다츠헤이의 어깨를 흔들며 여기에 내려달라고 한다. 다츠헤이는 오린을 내려준다. 다츠헤이와 오린의 마지막 포옹(抱擁).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엇이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이 내 마음속에 전해왔다. 내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난 너무 놀랐다. 내가 지금 왜 이 장면을 보고 우는 것인가.
' 아! 그렇구나. 오린이 다츠헤이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에 온 것이구나. 다츠헤이가 오린을 등에 업고 나라야마에 온 것이 아니구나.'
정말 치열하고 끈질기게, 혼자서 나라야마 풍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 왔다. 오린이 나라야마에 올라 온 것은 비록 마을의 전통(傳統)적 관습(慣習)이었지만, 그것은 어떠한 강압(强壓)도 아닌, 오린 자신의 선택(選擇)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깊고 한없는 '내리사랑'이었다.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츠헤이가 산을 내려가다 눈이 내리자 다시 어머니에게 찾아가는 장면부터는 더 이상 눈물 때문에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린은 마지막 자기에게 주어진 도시락마저도 아들을 위해 다츠헤이의 지게에 걸어준다. 그녀는 자신이 나라야마에 남음으로써 다츠헤이의 남은 식구(食口)들이 올 겨울을 나는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녀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 바로 나라야마에 남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갑자기 내가 너무 감상적(感傷的)으로 변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영화는 끝이 났고, 난 강의실의 뒷문으로 빠져 나와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쉬는 시간이후에 다른 수업이 있었기에 영화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동물(動物)들도 갖고 있다는 모성애(母性愛). 그렇다. 오린이 보여준 나라야마로 가는 모습은 어머니로서 다츠헤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내리사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존경(尊敬)하고 사랑(愛)하는 것에 비교(比較)할 수가 없다. 인류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든 인류가 다 소유한 자식 사랑이다. 바로 어머니의 모성애.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연구하더라도 발견(發見)할 수 있는 모성애. 이것이 바로 이 "나라야마 부시코"에 나오는 '나라야마 풍습'을 인류학적으로 해석한 나의 포인트(Point)다.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孝)". 이 제목은 분명 잘못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선배 형에게 '나라야마 부시코'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더니 '나라야마에서 효(孝)를 마친다'는 뜻이라 가르쳐 주었다. 분명 다츠헤이가 오린의 뜻대로 어머니를 업고 나라야마에 간 것은 그의 지극한 효(孝)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영화의 제목을 지었다면 '나라야마에서 모성애를 마친다'라는 뜻의 제목을 지었을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인류학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해석한 것에 관점을 맞추어 제목을 짖는다면 정말 다른 제목을 지을 것 같다.
본 보고서의 전반부에서 이 영화를 보고 해석한 나라야마 마을 사람들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모습과 풍습들을 이 마을의 특수한 문화로 해석하였다면,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화현상으로는 바로 내가 힘들게 발견한 '모성애'를 들고 싶다. 문화를 상대적(相對的)인 관점(觀點)에서 바라본다고 할지라도, 문화는 크게 두 부류(部類)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문화만이 갖는 특수(特殊)한 문화이고, 또 하나는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普遍的)인 문화현상이다. 난 이것을 "나라야마 부시코"에 이렇게 접목(接木)시킨 것이다. 난 이제 충분히 나라야마 풍습을 그 마을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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