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당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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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통일 전 단계까지의 중국화 과정

II. 분열기에 불교 성장을 가능케 한 요인들

III. 양견과 수(隋)의 건국

IV. 양제와 수의 몰락

V. 불교의 절정기 - 당

VI. 중국 불교의 자주적 모색

VII. 이론 불교에서 실천 불교로...

본문내용

家七宗의 번성기(선종의 황금시대)
당 말에서 송대에 걸쳐 소위 오가칠종으로 불리는 선의 여러 가풍이 활발하게 일어났을 때를 일컬어 선종의 황금기라 한다. 선종은 문자나 경론에 의거하지 않고 스승이 직접 제자나 구도자의 움직이는 마음을 가리켜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보게 하여 해탈을 이루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선종은 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부처의 마음을 이어가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특히 선의 융성기에 나타난 오가칠종은 바로 스승이 제자를 계도하는 독자적인 방편, 즉 가풍(家風)의 차이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오가의 성립은 남악회양과 청원행사의 계통이 분파하여 각자 특이한 종풍(宗風)을 선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 말 회양의 제자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선을 이은 위산영우 山靈祐 및 그 제자 앙산혜적仰山慧寂의 위앙종僞仰宗이 번영하였고, 백장의 제자인 황벽회운黃檗 希運의 제자 임제의현臨濟義玄에 의하여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선풍으로 하는 임제종臨濟宗이 성립하였다. 동산양개東山良价와 조산본적曺山本寂의 조동종, 운문문언雲門文偃의 운문종,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안종까지의 5개의 종파를 오가라 하며 여기에다 임제종의 게열에서 다시 황룡해남黃龍慧南과 양기방회楊岐方會)에 의하여 각각 황룡파 ·양기파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7종이라 한다. 오가칠종의 가풍은 점점 융합되어 운문종과 법안종이 일시 부각되었다가 다시 임제선풍을 진작시킨 대혜종고의 활약을 계기로 看話禪
화두(話頭)를 근거로 수행하는 참선법. 화두란 고칙(古則) 공안(公案)의 첫마디를 화두 하나로 해결하면 차례로 다음 화두를 들어 그것을 해결하며, 철저한 큰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선풍을 말한다. 묵조선(默照禪)이라는 평을 받은 조동종(曹洞宗)의 선풍에 대한 임제종(臨濟宗)의 선풍을 말한다. 송(宋)나라 때 조동종의 굉지 정각(宏智正覺)이 묵조선을 표방하고 나오자, 임제종의 대혜종고(大慧宗) 일파가 그것을 비난하면서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평등일여(平等一如)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류가 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선의 융성기에 있어서 뛰어난 선승들의 언동은 자기의 사상을 세운다든지 자기의 명성을 높이는 데 관심이 없었다. 오직 구도를 위하여 운집한 운수납자(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하면 빨리 그리고 직절直截하게 그들 자신의 '기사己事의 구명究明' 또는 '자기 본래의 면목'을 밝혀 대오하게 하느냐 하는 데 관심가졌을 뿐이었다.
(4)선종이 형성될 수 있는 불교의 내적 배경
첫째, 인도 불교의 자각적 정신주의와 표리관계에 있는 명상 수행의 전통이 모든 중국의 종파로 이어졌고, 불교의 중국호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수행론이 간명하고 실천성이 강한 좌선 수행으로 통합되어 갔다.
둘째, 천태지의에 의해 대승공관에 대한 여러 이론적 모색의 성과가 주체적으로 재창조되었고 특히 선악 대립을 실천적으로 해소하고자 제시한 명상 수행론인 지관(止觀)이 선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셋째, 현실 세계와 현실 인간의 본래적 완전성으로 귀결되는 사사무애의 화엄적 세계관은 자신 이외에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며 닦아야 할 것이 원래 없다는 선종의 인간관으로 수용되었다.
넷째, 칭명염불로써 일시에 왕생할 수 있다는 정토 사상은, 주체의 대중성과 실천의 간명성 그리고 구제의 일시성이라는 방향을 제시하여 선종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5)선종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ㆍ정치적 배경
회창會昌 5년 (845)의 대대적인 폐불 사건 이후 북쪽 지방과 장안을 비롯한 도시 불교가 큰 타격을 입은 데 비해, 변방인 강남 지역과 산악에 산재해 있던 선종은 그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폐불로 인해 경론과 주해서가 불태워지고 그것에 의존해왔던 교학적 불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경론에 대해 자유롭고 佛心만을 중요시했던 선종은 오히려 불교 발전의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었다.
또한 폐불로 인해 많은 전적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학문 불교와 황실 불교로 호사와 번영을 구가하던 천태종과 화엄종은 급작스럽게 몰락했다. 그러나 깊고 험한 산중에서 고행과 정진을 하며 노동을 통해 자급자족적 생활을 하던 선종은 당 말의 난세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융성하게 되었다. 원래 노동을 비롯한 자급자족적 생활 방식은 인도 승가에서는 계율로 금지되어 있지만, 선종은 그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중국적 운영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선종은 가장 중국화된 불교라고 할 수 있다.
(6)중국 불교의 총결산, 선종
인도의 불교는 중국의 선종에 와서 비로소 긴 중국화의 길을 끝내고 새 단장을 했다. 선종은 일체의 종교적 위엄과 복잡하고 어려운 교학적 치장도 과감하게 걷어치웠다. 그리고 현실의 개별 주체가 적나라한 자기 본모습에 직접 대면해서 주눅들어 있던 삶의 역동성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렇게 일깨워진 삶의 역동성을 타고 낱낱의 삶에 대응하며 창조적 유동성이 심신에 가득 채워질 때 禪的인 삶은 완성될 것이다. 선의 마음이 방종에 흐르거나 허망에 빠질 위험성을 염려하는 것은 선의 본래성과 현실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유동하는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본모습으로서의 마음의 작용인 것이다. 선종에서 말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불성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원적 깨침에서 체험되는 것이지 지식을 쌓거나 마음을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세계로 일거에 뛰어들어갈 길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일뿐일 것이다.
- 참고 문헌 -
『역사속의 중국철학』
김원중, 중국문화사 서울 을유문화사, 2001
김철호, 『동양 철학 이야기 주머니』, 녹두, 1995.
다마키로 시로 외, 『중국불교의 사상』, 정순일 역, 민족사, 1989.
심재룡 편저, 『중국 불교 철학사』, 철학과 현실사,1994.
아서 F 라이트, 불교와 중국 지성사 서울 예문지, 1994
이효걸 외 , 『논쟁으로 보는 불교철학』, 예문서원, 1998.
정무일, 중국 불교사 서울 경서원, 1992
풍우란, 『중국 철학사』, 형설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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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1
  • 저작시기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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