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읽고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결국 뚜렷한 위계질서에 입각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아내의 순종이 바로 부부의 사랑에 대한 여성적 표현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관계에 사랑이 언급된다고 해서(하기야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절대 싹틀 수 없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 낭만적으로 이해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가 "봉사와 사랑과 복종"이라고 가르치는 캐서리나의 유명한 긴 설교는 그 내용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출 때는 이 발언을 기존의 전통적 교리의 대변으로 보든 혹은 새롭게 등장한 인문주의적 결혼관의 표현으로 보든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위계질서를 옹호하는 남성중심적 정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메씨지도 이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긴 대사가 담고 있는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과의 모순을 주목한다면 좀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설교는 이 극 전체에서 가장 긴 대사(44행)이고, 이 대사를 말할 때의 그녀는 무대를 압도하는 '남성적' 힘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남성에게 여성의 말없음이 미덕인 한, 여성의 언어는 남성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되는 셈인데 캐서리나가 좌중을 압도하는 긴 대사를 읊는다는 사실은 전달하려는 내용에 위배된다. 게다가 캐서리나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비앵커와 호텐쇼의 부인(호텐쇼가 비앵커를 포기하고 결혼한 과부)을 나무랄 목적으로 페트루치오가 주문한 설교를 하고 있지 않은가. 페트루치오가 캐서리나에게 해를 달이라고 부르게 했을 때, 달이든 해든 아니 촛불이든 그 무엇이라도 남편이 하라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던 캐서리나를 상기한다면, 이 순간 그녀가 자신의 실제 생각과는 다르지만 남편이 주문한 내용을 듣기 좋은 말로 멋드러지게 읊어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사실 이 장면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언행의 변화는 너무도 극적인 것이라서 어쩌면 그녀가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즉 그녀는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패러디하고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아내의 순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자신의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케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이왕 길든 아내의 모습을 보여줄 바에야 아주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당시 순종적 아내의 표본인 그리젤다(Griselda)는 저리 가라 할 만큼 걷어붙이고 나서서 모든 사람을 놀라게 만들 만한 '기적'을 연출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우리는 전에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그녀를 '한술 더 뜨기 말괄량이 작전'으로 길들였다면 이번에는 그녀 편에서 '한술 더 뜨기 순종작전'으로 남편을 길들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막말로 이 순간에 캐서리나가 변심(?)하여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제대로 연출해주지 않는다면 페트루치오가 이룩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기적 같은 성공이 얼마나 빛바랠 것인가? 바꾸어 말해서, 그녀가 보기좋게 '길들어주는'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남편이 의도한 길들이기는 애당초 성공이 불투명한 과업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캐서리나는 남편의 한술 더 뜨기 작전을 배워 더 잘 써먹는 지혜를 발휘하는, 말하자면 페트루치오의 맞수라 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길들어줌으로써 가부장제적 질서를 완전히 내면화하거나 혹은 가부장제적 질서의 참담한 희생자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통해 남편을 길들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물론 그녀가 주어진 상황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 활기있고 재치넘치는 여성으로 남아 있으면서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에 잘 적응해간다고 해서, 이 극의 결말이 제시하는 희극적 타협이 아무런 유보 없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이상적인 결혼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극에 제시된 가부장제적 세계 속에는 캐서리나가 취한 선택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우리는 극중의 희극적 화해가 지닌 근본적인 불균형과 불평등에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령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 『헛소동』에 나오는 또다른 유쾌한 재치꾼 말괄량이 베아트리스와 그녀의 맞수 베네딕이 이룩하는 관계, 즉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강제적으로 지배할 필요도 또는 복종을 통한 지배를 꿈꿀 필요도 없는,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으로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맺어지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캐서리나와 페트루치오의 결혼생활에 나타날 수 있기를 (어쩌면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통해 가부장제적 결혼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주어진 한계 내에서 자신의 주체로 서는 활기넘치는 말괄량이 캐서리나를 창조해낸 뛰어난 성취로부터 우리가 읽어내야 할 메씨지는 여필종부라는 시대착오적인 부부윤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평등하고 호혜적인 결혼의 이상을 가꾸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필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캐서리나 같은 말괄량이 여성이 보여주는 그 유쾌한 언어적 활력과 재치는 순치되고 교정되어야 마땅한 결점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높이 사주어야 할 훌륭한 미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극들에 나타나는 사랑과 결혼의 모습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는 바이니, 특히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와 올랜도, 『겨울이야기』의 퍼디타와 플로리젤의 결혼이 아름답게 구현하듯이, 서로의 깊은 애정과 신뢰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이고 평등하며 호혜적인 관계로서의 결혼의 유대는 비단 남녀간에만 해당되는 이상적 관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건강한 충만함과 따스함을 불어넣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희극 속에서 사랑과 결혼의 이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은 현재의 관객과 독자의 몫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리라.
  • 가격2,0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3.10.24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807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