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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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믿어서는 안될 역사

Ⅱ. 신화에서 역사로

lll.과학으로서의 역사

Ⅳ.계급 투쟁의 역사

Ⅴ.민족사이 발견

Ⅵ.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

Ⅶ.영웅과 대중

Ⅷ.그래도 믿어야 할 역사

Ⅸ.결론

본문내용

사회주의자를 적대시하고 민족주의자를 거부하고 반공주의자만을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민족주의자들은 미군정과 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전쟁이 끝나고 숨어 들어갔던 친일세력들은 미군정에 다시 붙어서 정치적 권력을 얻게된다. 곧 그들이 세력의 자리를 다시 잡게 되면서 반민족행위와 친일파들의 처벌이 더욱 어려워졌다.
과연 처벌의 기준과 방법이 없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기준이 없거나 방법이 없던 것은 아니였다. 제2차대전이 끝난 직후 일제 강점기에 일신의 부귀를 위해 민족을 팔아먹고 일제에 아부 협력한 민족 반역자와 친일파를 응징하기 위해 대한 민국 국회는 1948년 9월 만장 일치로 '반민족 행위자를 예비 조사할 특별 조사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기구을 설치한 직후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파 세력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재하기 위해 숨어있거나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의 특위위원과 직원들에 잡힌 자들은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의 힘을 받아서 세력의 자리에 앉은 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이승만 정권과 힘을 합세해 "반민 특위"를 경찰을 동원하여 강제해산 시켰다. 결국 반민 특위의 역할은 만 1년을 넘기지도 못하고 해산하게 되였다.
얼마 전 MBC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라는 프로에서 이 사건에 대한 사실진상을 밝혔다. 또한 2002년 3월1일(삼일절)에 친일 세력을 발표했으며 그때,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여러 작가들 중에도 수많은 친일 세력들이 포함 되여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결국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민족을 등지고 자신만이 살기 위해 민족의 피를 빨아먹던 자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는 아주 좋은 위치에 앉아서 떳떳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떠한가? 먼저 우리 나라와 가장인접한 국가인 중국 역시 일본의 침략에 의한 큰 피해국 중 하나다. 그럼 중국은 반민 행위자와 친일세력을 어떻게 처벌했을까?
중국의 경우에는 전쟁이 끝나고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반민족 행위자와 친일파를 활동 행위에 따라 숙청을 시작했으면 대부분 공개재판을 통해 처형하거나 형벌을 내렸다. 또한 공산당이 국민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교체한 뒤에도 반민족행위자와 친일파를 숙청하는데 온힘을 다했다.
또한 서양의 경우도 영국, 미국, 소련, 프랑스는 독일 사회에서 나치의 주동자와 협력자를 추방하는 것을 점령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철저히 색출 작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나치의 선전 책임자였던 괴링을 비롯한 12명을 교수형에 처하고 수 십 명의 전범에게 무기 징역등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나치에 협력한 자국민을 엄하게 했다.
결국 우리 나라만 반민족행위자와 친일파의 세력을 숙청하지 못 함으로써 부끄러운 역사로 남게되였고, 아직도 깨끗이 정리하지 못한 채, 또 한번 그들로 인해 우리 겨레는 지난 반 세기동안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일본군과 경찰에서 잔뼈가 굵은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의 수뇌부는 보고 배운 대로 행동했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사건도 근원을 추적하면 이 문제에 닿는다. 또한 국민을 주권자로 대접하지 않고 통제와 조작의 대상으로 취급한 이승만 정권이래 역대 독재 정권의 시대 착오적 행태도 조선 총독부의 통치 방식을 연상하게 한다.
일그러진 역사는 인간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민족의 독립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나선 사람들은 오직 희생만을 치렀고 일제와 미군정, 역대 독재 정권에 아부한 자는 부귀 영화를 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의로운 자가 아니라 강한 자를 따르고 사회적 정의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럼 민족의 미래는 있는가? 의문이 생긴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역사가가 아니다. 역사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이며 오늘의 역사을 사는 사회적 인간이 짊어지고 가는 삶의 일부이다. 역사의 심판도 후세의 역사가가 아니라 인간이 실천을 통해 이룩하는 사회의 변화가 내리는 것이다. 만일 우리 시대에 벌어진 범죄 행위의 전모를 우리 시대에 밝혀 놓지 않는다면, 결국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역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데 따른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난날의 일그러진 역사를 단호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민족의 미래에는 진보도 없다.
Ⅸ.결론
역사의 무엇인가? 란 의문부터 시작해서 역사가의 역사의 서술이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사상의 흐름은 어떻게 변화하고 다른가를 둘러보았다. 지금의 우리는 역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의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사전적인 의미만을 말 할 수 있다. 곧 역사의 정의를 단정적으로는 말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과거의 서양이 역사와 우리 나라의 역사사건들을 통해 역사의 또 다른 면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한 예로 일제시대의 반민족행위자와 친일파세력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활동하고 있었고, 친일파로서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써주던 전형적인 작가들인 '이광수', '노천명', '서정주'등의 글이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 되여 있고, 이 글들이 훌륭한 글이라면 수업을 받는 이 현실이 정말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된다.
아직까지도 이런 부끄럽고 빨리 청산해야 할 사건들을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으로 제한하고 밝히지 못하게 하여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신이 너무나 안타깝다.
만약 이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이런 우리의 역사는 후세에 일그러진 역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곧 이런 역사는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며. 민족의 독립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나선 사람들은 오직 희생만을 치르고, 강한 자를 따르고, 아부한 자는 부귀 영화를 평생 얻고 살게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의로운 자가 아니라 강한 자를 따르고 사회적 정의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민족으로 아니 타민족에 지배 받아가며 살아가는 노예로써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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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10.30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9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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