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문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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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향가

2.장르적 성격

3.사적 전개

4.작가층

5.형 식

6.사상적 기반과 성격

7.어법과 수사

8.미의식

9.어학적 가치와 해독

10.향가의 정의

11.향찰(鄕札)

본문내용

소재의 향가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뇌가는 사뇌격조로 노래된 극히 일부의 가요에 한정된 개념으로 통설화하고 있다.
1) 향가는 신라 가요로서 우리의 문자가 없던 시대에 향찰로 표기된 노래이다.
2)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고유한 문화적 성격을 한반도 전역에 확대 시키면서, 민족 문학으로서의 개성을 뚜렷이 형상화(形象化)시킨 귀중한 문학적 유산이다.
3) 이 양식은 신라 유리왕(琉璃王) 때의 도솔가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4) 이 시기의 향가는 민족의 노래로서 널리 향수(享受)되면서, 신라인(新羅人)들은 이 향가를 통해 그들의 슬기와 기상을 나타내었다.
5) 고유의 토속 신앙과 접합된 불교적 신앙을 계승한 신화적(神話的)인 세계관 속에 감정을 표백(表白)시켰다.
좁은 의미
사뇌가(詞腦歌)로서 삼국 통일(6세기경)부터 고려 중기인 13세기까지 존재한 문학이다.
넓은 의미
기원전 후기부터 있었던 노래로서 중국 한시에 대한 그 때의 우리 나라 가요를 일컬은 문학이다
이와 같이 분류할 수 있으나, 현전하는 신라 노래들은 모두 사뇌가 중심이기 때문에 향가를 곧 사뇌가(詞腦歌)라고도 일컫는다. 사뇌가라는 말은 특히 10구체의 향가를 가리키는 말로 향가라는 한자어 명칭이 생기기 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찰(鄕札)
1)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어서 우리말의 문장 전체를 그대로 적던 방법이다. 향가에 사용되어 '향가식 표기'라고도 한다.
2) 대개 실사(實辭)는 훈차(訓借)하고 허사(虛辭)는 음차(音借)하였으며, 고유 명사는 음과 훈을 섞어서 사용하였다.(밑줄 친 한자 : 훈독, 밑줄 없는 한자 : 음독.예문 동일)
(예)他密只 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서동요>
남 그스지 얼어두고
이두(吏讀)
1) 향찰과 비슷하나 한문을 전제로 하고 향찰식 표기를 어조(語助)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2)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한문을 국어의 어순(語順)으로 배열하기 위하여 주로 조사. 접미사. 부사. 동사 등에 사용하였던 문자이다.
(예)必于 七出乙 犯爲去乃 三不出有去乙
비록 칠출을 범하거나 삼불출잇거늘
형성(形成)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리왕 5년 (A.D.28)에 도솔가(도率歌)가 지어진 것이 가악(歌樂)의 시초라고 하였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신라 가요 6세기 통일 신라 이후의 것들이다. 따라서,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전후(6세기-7세기)부터 시작되어 고려 광종까지 계속되었던 문학이다.
향가 문학의 특징
(1) 형식 : 향가의 형식에는 4구체, 8구체, 10구체 등이 있는데 10구체가 가장 정제(整齊)된 형식이다.
① 4구체(四句體) : 전래(傳來)의 민요(民謠)가 정착된 노래이다.
② 8구체(八句體) : 경주(慶州)가 아닌 지방에서 유행된 노래이다.
③ 10구체(十句體) : 가장 정제된 형태로서, 특히 낙구(落句)에 '아으(阿也·阿邪·阿耶)' 감탄사를 상투적으로 배치한 부분은 후대에 발생한 시조(時調)의 종장(終章) 첫 구에 흔히 나타나며, 가사(歌辭)의 낙구에도 나타난다.
(2) 성격 : 향가의 장르적 성격은 단순하지 않다. '풍요(風謠)' 같은 것은 민요이고, '처용가(處容歌)'는 무가(巫歌)인 듯하나, 대부분이 서정적이다. 특히 10구체는 격조(格調) 높은 서정시로서 세련된 수사와 투철한 시 정신을 갖추고 있다.
(3) 내용 : 향가는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주요(主要)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민요와 동요, 축사(逐邪)의 노래, 연군(戀君) 노래, 설도(說道)의 노래, 안민 치국(安民治國)의 노래, 신불(神佛)에의 발원(發願)을 나타내는 불교 신앙(佛敎信仰) 등으로 나타난다.
(4) 작자 : 향가 작자로는 승려(僧侶), 화랑(花郞), 여류(女流), 무명씨 등으로 여러 계층에 걸쳐 있는데, 현전하는 향가의 작자로는 승려가 가장 많다.
(5) 표기 : 향가는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어 쓴 향찰(鄕札)로 표기되었다. 이는 신라 시대의 우리말 표기법이다. 가요, 특히 향가의 표기에 이용되었기 때문에 향가식 표기법이라고도 하고, 또 향가 문학을 향찰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라인들이 향찰로써 우리말을 표현했다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문화에 예속되지 않고 우리 고유 문화를 확립시키려 했던 강력한 주체 의식(主體意識)의 발로(發露)로서 이 때부터 국문학의 주체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6) 표현 : 향가의 표현은 명랑하고 신비롭고 숭고한 기개가 넘친다. 수사는 소박하고 원숙하며 평화롭다. 따라서, 저속하거나 침울하거나 예리하고 정적(靜的)인 면이 없는 점에서 고려 가요와는 대조적인 면을 볼 수 있다.
(7) 향가집 : 신라 진성 여왕(眞聖女王) 2년(888)에 각간(角干) 위흥과 대구 화상(大矩和尙)에 의하여 편찬된 '삼대목(三代目)'이 있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삼대(三代)'란 상(上), 중(中), 하(下)의 삼대를 뜻하는 것으로 신라 시대의 향가가 수집·기록되어 있었으리라 생각되나 정확한 것을 알 길이 없고, 현재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가 전하고 있다.
향가의 잔영(殘影)
향가는 '보현십원가'를 마지막으로 소멸하였으나, 고려 16대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棹二將歌)'와 의종 때 정서(鄭敍)가 지은 '정과정곡(鄭瓜亭曲)'에서 향가의 잔영(殘影)을 엿볼 수 있다.
향가 및 이두의 연구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1882~1944)는 일본인으로 '향가 및 이두의 연구'를 했는데 그의 저서는 향가 및 이두 그리고 부론의 3편으로 되어 있는데 제 1편은 향가 일반에 관한 고찰에 이어 현전 향가 25수를 주해하고 향가에 있어서 한자의 용법, 어법, 형식 등에 관하여 논술하였고, 제2편에서는 이두의 명칭, 의의, 향찰과의 관계, 작자, 주해, 한자의 사용 예 등에 관하여 논하고, 제3편에서는 모음 조화, 된시옷, 향가와 이두에 나타나는 '白'에 관한 논문을 수록한 것이다. 향가 전반에 관한 주석으로는 최초의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분의 향가 연구에 자극을 받아 고 양주동 박사는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향가연구를 시작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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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3.11.06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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