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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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전쟁의 영향과 전후복구의 성격
1. 한국전쟁의 영향
2. 전후복구의 성격과 방향

Ⅲ. 전후복구와 사회주의적 개조
1. 농업협동화의 전개
2. 사영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
3. 사회주의적 개조의 특징

Ⅳ. 전후논쟁과 사회주의체제 건설
1. 전후 건설노선을 둘러싼 논쟁
2. 북한형의 사회주의 건설

Ⅴ. 맺음말

본문내용

회주의의 특수성의 단초를 형성하는 요인들이었고, 이것은 대부분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 분단의 고착화와 대립이라는 북한사회의 역사구조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이 주체형 사회주의는 당과 국가기구 위에서 사상, 대중, 자립적 민족경제를 핵심적인 요소로 하여 구성되었다. 그러나 중공업의 우선적 발전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는 지방 공업의 대대적인 육성이라는 정치적 구호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불균형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특히 대중동원에 의한 경제발전은 단기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스스로 내재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Ⅴ. 맺음말
대부분의 경우 전쟁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수반한다. 이는 전쟁을 계기로 그 사회의 기본적인 인적 물적 조건이 개조되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될 것은 계급구조와 계급역량의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계급구조의 변혁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북한 사회주의 지향과 효율적으로 접목시킨 결과이다. 극단적으로 파괴된 물적 조건하에서 인민생활의 현실적 요구와 주체성의 정도에 따른 자원성의 원칙과 또한 인민들에게 실물교양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정치의식을 고양하여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의 인민중심의 사회구조 및 계급구조 변혁을 수행하였다. 오늘날 북한이 주창하는 '인민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그 맹아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형성되고 초기 반제반봉건혁명기간에 구체화되기 시작하였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확대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북한 사회주의가 어쩌면 전혀 재기할 수 없는 조건을 형성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쟁이 남겨준 조건이 반대로 북한 사회주의가 일정하게 성공하게 만든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전쟁과 관련하여 북한 사회주의가 50년대 말에 이렇게 다시 재기하고 도약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전후 인민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공업, 특히 중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것이 그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전쟁으로 고양된 인민들의 의식을 충분히 동원해냈다는 점 또한 이유가 된다. 결국 공업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 인민들의 고양된 의식을 통한 사회주의 개조, 그리고 이들에 바탕 하여 지도와 대중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5개년계획의 성과 등이 전후 폐허상태의 북한을 50년대말 새롭게 도약하는 북한 사회주의로 변화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토지개혁을 비롯한 민주개혁의 기존 성과에 대한 기층민중의 신뢰와 자력갱생의 혁명적 기풍을 고양시키는 지도부의 적절한 전략 전술과 어느 정도의 물질적 보상 등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군중을 핵심동력으로 삼아 혁명적 군중노선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것이 그 이후 북한 사회주의의 '순탄한' 건설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북한 사회주의는 독특한 체제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주로 1956년의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볼 때는 김일성이 중심이 되는 동질적이고 강화된 '주체형'의 지도부가 형성되었고, 경제적으로 볼 때는 위로부터의 강력한 지도와 혁명적 열기로 무장된 대중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이 모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이후 북한 사회주의의 전개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북한의 변혁은 스탈린적 모형과는 물론 다를 뿐만 아니라 2차대전 이후의 동구의 모형과 동아시아 사회주의의 다른 나라와도 다른 특이한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식민지 경제유산의 극복과 해방이후 미국자본주의의 시장범주에 새로이 포섭되는 한반도의 남북분단이라는 긴장성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경제는 인민민주주의개혁을 통한 축적력과 복합적 경제구성체의 실험운용으로 평화적 이행의 사회주의 개조의 예비력을 확신하고 점진적 혁명의 탄력성과 신축성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북한경제는 3개년 계획과 5개년 계획을 통하여 사회주의 경제모형으로 개조되었고 적어도 내부 생존문제의 해결과 일정한 정도 외연적 성장확장의 진행 그리고 동구에서의 현실사회주의 실패와 사회주의 대변혁의 전환기에서도 체제고수의 근성을 발휘하는 이른바 '우리식의 주체형 사회주의' 구성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작금 전쟁을 통한 북한의 경제적 건설의 실상은 전쟁이 사회주의 경제발전의 촉진적 매개가 되었다는 목가적인 국면도 아닐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 나아가서 북한권력에게 까지도 혁명적 낭만주의 그리고 전투적 경제주의의 낙관관을 운위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건설노선이 당시의 상황 속에서 올바른 사회주의건설 노선이었다고 하더라도 건설노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어진 특징, 구체적 정세의 변화 등으로 인해 모든 시기, 모든 상황에 적합한 노선이라고 하기는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몇가지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파주의에 대한 극단적 비판, 항일 빨치산 경험의 극대화된 미화로 인해 해방이 빨치산 투쟁에 의해 주어졌다거나, 국내 공산주의 투쟁의 공적을 전혀 인정치 않는 왜곡된 역사인식이 나타났다. 둘째, 미국과 남한의 상황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는 양자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중대한 장애요인이 된 것이다. 셋째, 당시의 현실에 맞게 구체화된 대중지도방법으로서 청산리 방법, 대안의 사업체계가 북한의 구체적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큰 변화없이 일관되게 고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구체적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위험성, 즉 새로운 형태의 관료주의를 낳을 위험을 안고 있다 하겠다. 넷째, 주체적인 건설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 기술신비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판 등은 외부로부터의 기술도입 등을 가로막는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이 북한경제에서의 현재적 유산은 민족경제범주의 확보를 의도한 주체경제 모형의 확대재생산의 한계와 정체된 생산력의 문제, 경제체제의 획일적 중앙관리체제에서 오는 내부경제의 탄력성의 협애화와 해외부문과의 접합력의 약화 그리고 남북경제의 군사적 대립적 구도에서 오는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한국전쟁은 북한경제에 현대사적 桎梏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적 의미에서도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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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19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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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33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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