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민속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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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절 민속놀이
1. 아동놀이
2. 성인놀이

제 2절 민속극
1. 강능관노가면극
2. 북평원님놀이
3. 속초사자놀이
4. 고성통천가면극

제 3절 민속무용
1. 농악춤
1) 농악의 기원과 발전
2) 강원도농악
2. 무당춤
1) 무당춤의 발생과 그 배경
2) 우리나라 무당춤의 종류
3) 강원도 무당춤
4) 강원도 무속무용의 특징
3. 탈춤
1) 탈춤의 발생과 그 배경
2) 관노가면극
3) 관노가면극의 과장
4) 관노가면극의 특징
5) 관노가면극의 기능보유자

제 4절 민속공예
1. 금속공예
2. 목칠공예
3. 도자공예
4. 자수공예
5. 지공예
6. 석공예
7. 풀공예
8. 섬유공예
9. 죽공예
10. 옥공예
11. 기타공예

본문내용

는 連花 唐草무늬 등이 있다(《강원의 미》, pp.133∼135).
4) 부적과 부작
부적이라 하면 복을 빌고 재앙을 쫓는 주술물을 말하는데, 부적과 부작의 개념상의 차이점은 부적'은 종이 헝겊 나무쪽 대쪽(대편) 따위의 평면 재료에 빨강색 또는 검정색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찍는 것을 말하고, '부작'은 조개 돌 뼈 털 등을 그대로 만들어낸 입체물 전체를 총칭하는 경우를 말한다.
강원도내에 전래되는 것을 보면 영서지방은 입체적 부작이 많고 영동지방은 평면적 부적이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표현형식을 보면 영동은 문자부적이 많고, 영서는 인물신상 동물신상 십이지신상과 무당과 같은 그림부적이 흔하다. 영동은 불가의 부적이 많으나, 영서는 불가이외에서 발행한 부적이 많다.
또한 부적수진본'이 있는데 이는 원래 중국의 송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袖珍本이라는 말로서, 자그만한 소형책을 말한다. 근래에 와서는 몸에 지니고 다니기 편하고, 장소에 구애없이 꺼내보기 쉽도록 만든 책을 수진본이라 하기도 한다. 부적수진본'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떠돌이 유랑 점술가들이 휴대하기 편하게 고안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강원의 미》, pp.103∼137).
5) 수결인
수결'이란 도장 대신 자기 성명이나 직함 아래에 쓰는 일정한 字形으로 수압 또는 수례라고도 한다. 수결은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 고유의 개념이고 명칭이다. 수결은 함'과 혼동하기 쉬우나, 함은 名字로서 개인의 인장 대신 사용하는 것이다. 함은 명자중 1자만으로 만들기도 하고 합자하여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결로는 고종황제의 수결을 꼽을 수 있다. 또 함으로는 김홍집의 것을 꼽는다. 고문서에 보면 수결은 직함 밑에 일심결을 각자 다르게 두고 있어, 당시의 그 직책을 맡고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지금에 와서 수결만 보고 가려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사서를 뒤져 그 당시 누가 그 직책에 있었는가를 알아보지 않고는 그 수결의 당사자를 판단하기 힘든 일이다.
흔히 서양에서는 싸인(sign)' 문화가 발달하였고 동양에서는 도장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하는데, 수결과 함은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싸인'과 '도장'이 겸했음을 알 수 있다(《강원의 미》, pp.161∼163).
6) 승경도
'승경도'의 기원에 대하여는 뚜렷하게 문헌에 올라 있는 것이 없고, 중국에서는 唐, 宋, 元, 明代에 이런 류의 놀이가 성행했던 기록으로 보아, 우리의 선비들이 중국을 다녀와 그것을 모방하여 만든것으로 짐작된다. 종정도'는 정승 河崙이 만든 것으로 승경도와는 놀이방법은 비슷하나 판이나 윷목이 차이가 난다. 말판의 크기는 보통 가로가 10행, 세로가 14행으로 목은 140개가 되고 벼슬이름은 바깥쪽에 지방관리인 外職을 배치하고, 안쪽에는 중앙관리인 京職의 직급을 적어 넣었다.
강원도내에 '승경도'는 영서보다는 영동(삼척, 강릉)에서 더 많이 발굴되고, 오래된 것으로는 조선시대 후기 약 150년전에 만들어진 것도 볼 수 있으나, 이 경우는 아주 드물고 구한말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강원의 미》, pp.43∼45).
7) 자와 저울
조선시대에는 처음 만든 것과 가운데 길이를 재는 자(尺)로서는 營造尺이라 하여 목수들이 사용하던 자와 희건척이라 하여 베나 비단을 재던 바느질자 등 다섯종류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측정법이 변하고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정부에서는, 영조 26년(1750) 원형이 보존되어진 삼척부의 바느질자를 참고로 하여 다시 정리하였다.
영조척은 길이와 높이를 동시에 재는 도구로 T형', ㄱ형'이 있고, 길이와 높이를 따로 재는 一형'자가 있었다. 이밖에 연귀자라 부르는 45도, 60도, 120도 형의 자도 있었다. 영조척 가운데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모양은 흡사하나 크기가 약간 작거나 때깔이 얌전한 것이 있는데, 이는 선비들이 장황할 때 쓰는 것으로 裝潢(粧潢)이란 책이나 서화철을 꾸미어 만드는 일로서 표구 표장 장정이라고도 한다.
바느질자인 포백척은 집집마다 한두개씩 구비하고 있어 전래품도 많으나, 그중 이채로운 것을 보면 자에 자개를 박은 나전자와 쇠뿔에 채색그림을 그린 화각자 등도 전해온다.
저울은 용도에 따라 대저울(손저울), 약저울, 앉은 저울, 용수철저울 등이 있는데, 전래품 가운데 6할 이상이 일제때의 조선도량형'에 근거하여 만든 관제품이고 나머지는 1960년대 초반에 계량법'에 의해 통일된 저울로, 계량법 이전의 저울은 극히 드물다(《강원의 미》, pp.127∼129).
8) 향토오락기구
향토오락기구의 종류로 서민층에서는 주로 목대 주사위 장기 투전 돈치기를 즐겼고, 대가집에서는 쌍육 승경도 바둑을 즐겼다. 그 중 목대를 보면 청소년들이 땅바닥에 동전이 들어갈 만큼 구멍을 파놓고서 목대를 던지는 유희로 타전 또는 투전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주사위는 단단한 물건으로 만든 정육면체의 각면을 하나에서 여섯까지의 점을 새겨 이를 던져 그 점수를 겨루는 장난감이다. 주사위의 소재로는 유리 도자기 단단한 나무를 사용했으나, 영월 평창지역에 가면 검은 오석으로 만들어 흰당채를 구멍에 칠한 오석주사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외에 양구 방산가마에서 만든 백자 바탕에 청화로 점을 찍은 것이 있다.
쌍육놀이는 고유발음으로 생윷'이라고도 하는데, 말을 쌍방 15개씩을 갖고 놀며 크기는 어른 손가락 만큼의 높이와 기둥으로 영동 영서가 지역별로 다른 형태를 갖추었다(《강원의 미》, pp.73∼75).
9) 호패
호패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시기는 高麗 恭愍王때이고, 본격적인 시행은 조선왕조 太宗 13년(1413)이다. 호패의 기재 내용을 보면 관직이 있을 경우 관직명 주소지 등이고, 노비의 경우는 그의 주인 연령 거주지 얼굴빛 신장 수염의 有無까지 자세히 기록해야 했다.
호패에도 나무로 만든 것 뿐만 아니라 牙牌, 角牌라 하여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사용하던 것도 있다. 호패의 다른 종류를 보면 '공명호패'와 같이 특수층에서 관아의 낙인만 찍어 사용하던 것이 있고, '부작패'라 하여 무병 장수 등을 기원하는 글씨나 무늬를 새긴 것이 있다. 그리고 자수호패라 하여 호패를 넣어 다니던 주머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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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19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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