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문화와 불교의 특성
본 자료는 9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해당 자료는 9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9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절 불교의 역사적 배경 
1. 문화적 배경 - 인더스 문명

2. 종교 및 철학적 배경 - 베다(veda) 사상
1) 베다 문헌
2) 우파니샤드 이전의 사상
(1) 『리그 베다』의 신관(神觀)
(2) 제사의 의미
3) 우파니샤드의 사상
4) 베다 사상과 불교

본문내용

모든 인간이 그 내면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함으로써 가장 진화되고 완성된 인간인 붓다가 되기를 목표로 하는 종교[成佛之敎]다. 불교는 궁극적 가치와 종교적 진리(실재)가 저 멀리 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바로 인간의 삶과 내면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치 금을 함장하고 있는 광석처럼 여래장(如來藏), 즉 여래를 품고 있는 모태다. 또, ≪열반경≫에선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가르친다. 미혹에 사로잡힌 범부들이 ‘나’라고 믿고 집착하는 것은 실은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5온으로서, 5온은 가아(假我)이고 비아(非我) 혹은 무아(無我)다. 그러나 참 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가장 가까운 곳, 우리 존재의 심연에 감추어져 있다. 그것이 곧 여래이고 진여이고 열반이고 불성이다. 초기불교가 생멸하는 5온이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이고 고(苦)인데 대해 열반은 불생불멸 즉, 적정(寂靜, s~a~nti)이라고 부정적으로 표현한 데 반하여, 대승불교에선 열반은 상(常)이고 낙(樂)이고 아(我)이고 정(淨)이라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열반=여래=진여=불성이 곧 참 나[眞我, 아트만]이고 대아(大我, 마하-트만)이다.
⑤ 불교는 비권위주의적인 자각의 종교다 :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는 것이다. 믿음이나 신앙은 초기 단계에서 요구되는 방편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어떤 교설이든 권위 때문에 받아들이고 맹종해선 안 되며, 자신이 스스로 검토하고 실험하고 검증하여 바르다고 확인되었을 때 비로소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믿고 따르라’가 아니라 너 스스로 ‘와서 보라’(ehi passa)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불법의 특성이다. 이 점은 경직된 도그마를 거부하는 불교의 특징과 연관된 것이기도 한다.
⑥ 불교는 심리학적이고 분석적인 종교다 : 인본주의적이고 자각의 종교라는 불교의 특성과 연관된 불교의 또 다른 특성은, 불교가 세계의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인간의 의식세계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하는 분석의 종교라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의 본질이 마음에 있고, 궁극적 진리도 마음 속에서 발견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마음 혹은 의식은 단순한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인 복합체이고 또 다양한 차원의 깊이가 있으며, 불교는 그러한 의식의 구성과 변형의 메커니즘에 대해 치밀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초기불교의 5온, 12처, 18계설[三科], 12연기설, 그리고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중국에선 구사종), 대승의 유식설(중국에선 법상종)은 모두 미혹과 번뇌의 마음에 대한 정밀한 검토를 통해 초월적 의식 혹은 깨달음의 마음으로 변형시키기[轉迷開悟] 위한 실천적 심리학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서양에서 현대에 와서야 인정된 개인의식(프로이트), 집단무의식(칼 융)의 존재가 불교에선 이미 천여 년 이전인 A.D. 4~5세기경에 알라야식(藏識)이라는 개념으로 유식학파의 중심이론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양에선 C. J. 융이나 에이브러햄 마슬로우의 제3세력의 심리학, 더 나아가 초개인(트랜스 퍼스널) 심리학에서 동양의 명상이나 신비체험에서 드러나는 초월적 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동양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요가나 선불교, 유식불교에 대한 심리학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⑦ 불교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엔 사문이라고 불리는 많은 자유사상가 내지는 구도자들이 활동했으며, 우파니샤드의 흐름에 속하는 사상가들과 더불어 갖가지 이론과 견해들이 난무하면서 서로 시비를 따지고 논쟁하기를 즐겼다. 그러는 와중에 62견, 363견, 혹은 육사외도라 불리는 이론들이 나타났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기의 견해나 주장만이 옳다는 고집을 견착(見着)으로서 아집(我執)과 마찬가지로 경계했다. 특히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사변이나 지적 만족을 위한 이론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불교의 목적은 생사윤회의 고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열반의 언덕으로 건네주는 것이며, 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을 위한 이론, 이기기 위한 논쟁을 거부했다.
세계는 공간적으로 유한한가, 무한한가? 세계는 시간적으로 영원한가, 끝이 있는가? 신체와 정신은 하나인가, 다른가? 여래는 사후에 존속하는가, 소멸하는가? 이러한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은 침묵[無記]을 지켰다. 침묵의 이유는 회의주의나 불가지론(不可知論)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질문이 아예 문제로서 가치가 없고 무의미한 공리공론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고 또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모습을 독화살을 맞은 사람에 비유했다. 독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사람이 당장 독을 제거하고 치료를 받는 대신, 이 화살을 만든 재료가 무엇이며, 누가 만들었고, 또 그것을 쏜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고 신분은 무엇인지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실을 떠난 요원한 이상이나 관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현상을 편견이나 왜곡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즉 여실지견(如實知見)에 다름이 아니다. 범부들은 사물을 자기의 욕망이나 과거의 업력에 의해 왜곡된 의식으로 보기 때문에 실재가 아니라 자기의 주관이 투사한 영상을 볼 뿐이다. 불교는 바른 지견(知見)을 열기 위한 방법으로서 계촹정촹혜의 삼학(三學)을 제시한다.
⑧ 불교는 근본적으로 수행의 종교다 : 불교는 타종교처럼 절대자를 숭배하고 찬양하고 기도드리는 종교라기보다 - 대승불교에서 이런 요소가 도입되긴 했지만 - 근본적으로 스스로의 노력으로 사물과 자기의 마음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요가수행(瑜伽行), 혹은 선정수행을 통해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수행의 종교다. 그러므로 출가한 스님은 다른 종교의 사제나 성직자처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가 아니라 스스로 수행하면서 남들도 이끌어 주는 수행공동체의 일원이다.

추천자료

  • 가격500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03.11.20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369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