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국학 연구 - 실학파의 역사인식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서론

2. “국학”의 의미

3. 조선후기 “국학”연구- 我에 대한 관심
1) 우리 말에 대한 인식
2) 우리 땅에 대한 인식

4. 조선후기 “국학” 연구의 의미- 我와 彼의 관계 인식

5. 결론

본문내용

은 대상세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국가 단위로서 타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개별주체에 대한 인식이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개별주체로서의 타자를 인식하는 가운데, 또한 독립된 존재로서 자아에 대한 인식도 가능했다고 보며, 그것은 화이관 극복의 다른 면이었다.
화이관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발제자는 다소 급진적인 평가를 내렸다. 발제자는 실학이 지향하고 있었던 세계관, 사고의 구조라는 측면에서 화이관을 극복했다고 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근대적인 민족에 대한 인식이라거나 민족의식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평가를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 시기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우리에 대한 지식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던 "국학"의 흐름 역시 이러한 인식의 흐름과 함께 했던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은 "국학"연구의 중심에 실학이 있었던 것, 또 바로 그 점에서 조선학 운동에서 실학이 발견되었던 점과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 결론
조선후기 사상사의 지형에서 볼 때 "국학"연구는 실학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1930년대 민족을 강조하고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던 조선학 운동에서 실학의 흐름을 발견하고 체계화 했던 것은 그러한 점에서 "국학"의 의미 범주를 명확히 해 주는 측면이 있다. 조선후기, 언어, 역사, 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고유의 것, 우리의 현실에 주목하고, 그것을 객관적, 구체적인 태도로 궁구하면서 학문적으로 체계화 하려고 했던 움직임은 자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적 소중화의 인식 유형에서 갖게 되는 자존의식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을 띄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개별 주체들에 대한 자각으로 상대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살펴 본 몇 가지의 소략한 문제들만으로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데 무리가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역사의식의 고찰 및, 다양한 분야에서 "국학"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움직임들을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했음에도 이와 같이 논의가 한정되어 버린 것은 이것으로써 논의가 충족되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필자의 역량이 부족한 탓에 있다. 또한 세계관의 변화라는 추상적이고 커다란 주제는 전체 사상의 구조 속에서 섬세하게 다루어져야 구체화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은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절실히 느낀 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통해 나름대로 발견한 "국학"의 문제의식은 현재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국학"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문제가 있기도 하겠으나, 현재의 우리에 대한 연구-한국학은 우리 것에 대한 강조와 그에 이어지는 우리의 우수성에 대한 강조의 측면, 혹은 단순히 지역학의 개념으로서 한국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선후기 "국학"의 문제의식 속에서 볼 수 있듯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발견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자각은 물론, 다른 세계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 당시 객관적으로 놓여있는 상황은 여전히 조공질서였고, 지금 객관적으로 놓여있는 상황은 각국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으로 평등한 세계질서이다. 지금의 세계인식, 타자에 대한 인식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참고문헌
김석득, 1975,〈실학과 국어학의 전개〉《동방학지》, 16.
조광, 1975,〈조선후기 변경의식〉《백산학보》16.
정구복, 1978,〈한백겸의 동국지리지에 대한 일고〉《전북사학》2.
이우성·정창렬, 1981,〈한국학의 반성과 전망〉《한국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조광, 1983,〈실학 및 개화기의 영토문제연구〉《영토문제연구》, 창간호.
조광, 1985,〈조선후기의 역사인식〉《한국사학사의 연구》, 한국사연구회.
김현영, 1987,〈실학연구의 반성과 전망〉《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상), 한울.
2002,〈실학, 환상인가 실체인가〉《한국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조광, 1987,〈조선후기의 역사지리 연구〉《제9회 한국사학술회의》, 국사편찬위원회.
강신항, 1988,《국어학사》, 보성문화사.
김준석, 1990,〈조선후기 국가재조론의 대두와 그 전개〉, 연세대 박사학위논문.
정창렬, 1990,〈실학의 역사관〉《다산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 창작과 비평.
임형택, 1992,〈홍대용의 의산문답〉《제2회 실학국제학술회의》; 2000,《실사구시의 한국학》, 창작과 비평.
조성을, 1992,〈아방강역고에 나타난 정약용의 역사인식〉《규장각》15.
최영준, 1992,〈조선후기 지리학 발달의 배경과 연구전통〉《문화역사지리》4.
국사편찬위원회, 1993,〈국학의 발달〉《한국사》35.
조성을, 1995,〈조선후기 화이관의 변화〉《근대 국민국가와 민족문제》, 지식산업사.
임형택, 1995,〈국학의 성립과정과 실학에 대한 인식〉《현대 학문의 성격》; 2000,《실사구시의 한국학》, 창작과 비평.
김인규, 1996,〈조선후기 화이론의 변용과 의식〉《유교사상과 동서교섭》
조영록, 1996,〈조선의 소중화관〉《역사학보》149; 2002,《근세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교류와 문화》, 지식산업사.
배우성, 1997,〈17.8세기 청에 대한 인식과 북방영토의식의 변화〉《한국사연구》99.100.
하우봉, 1997,〈실학파의 대외인식〉《국사관논총》67, 국사편찬위원회.
한영우, 1997,〈한국학의 개념과 분야〉《미래를 위한 역사의식》, 지식산업사.
박인호, 1998,〈조선시기 역사지리학의 추이와 특성〉《조선사연구》7.
배우성, 1998,《조선후기 국토관과 천화관의 변화》, 일지사.
정옥자, 1998,《조선후기 조선중화주의 연구》, 일지사.
한영우, 안휘준, 배우성, 1999,《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효형
강석화, 2000,〈조선후기의 북방영토의식〉《조선후기 함경도와 북방영토의식》, 경세원.
김인규, 2000,〈북학파의 역사인식과 북학론〉《북학사상의 철학적 기반과 근대적 성격》, 다운샘.
박인호, 2002,〈발해고에 나타난 유득공의 역사지리인식〉《한국사학사학보》6.
박인호, 2003,《조선시기 역사가와 역사지리 인식》, 이회.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3.12.05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648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