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독후감 1
아마존 닷컴의 경우
왜 접속인가?
소유는 정말로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가?
독후감 2
독후감 3
독후감 4
독후감 5
독후감 6
독후감 7
아마존 닷컴의 경우
왜 접속인가?
소유는 정말로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가?
독후감 2
독후감 3
독후감 4
독후감 5
독후감 6
독후감 7
본문내용
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같은 듯 해도 다르게, 그것도 아주 근본적으로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 번 돈을 지불하고 무엇을 영원히 소유하고 그것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자신이 가졌던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정 시간을 사용하는 대가로 일정 기간마다 돈을 지불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의 제한된 사용권을 얻을 뿐 절대 그 이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아웃소싱이나 리스 형식으로 일정 기간만 사용하는 것이 일일히 사들이고 팔아치우는 것보다 더 유리합니다. 재적 재산은 한 번의 지불로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가구같은 것과는 달리 소유권의 일부가 계속 저작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건보다는 지속적인 서비스가 더욱 큰 가치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 사회를 소유보다 접속을 선호하게 만듭니다. 제가 매달 내고 있는 통신 요금이 그 가까운 예입니다. 저는 전용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달동안 사용할 접속권을 얻은 것 뿐이죠.
저자는 이 흐름이 좋거나 나쁘다고 결론을 모으지는 않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각 분야에서의 변화가 어떤 섬찝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네트워크에 접속할 권리가 없는, 세계적으로 대다수인 사람들을 더욱 더 철저히 소외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 정보나 식물 품종과 같이 원래 우리가 손안에 쥐고 있던 것들에 대한 권리까지 빼앗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더 적은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겠죠.
이런 접속의 질서들을 제가 온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제가 최근에 꿈꾸던 세상은 거의 완전한 접속의 세상이었으니까요.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절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을 세상의 고유한 것인마냥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의 꿈이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죠. 조금은, "정말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될 지도 모르는 시점입니다.
독후감 7
왜 이 책을 읽고 이리도 심란한 마음이 드는건가. 책읽기도 글쓰기도 어렵다.
<소유는 가고 접속의 시대가 온다. 지금 우리는 체험의 판매에 기초를 둔 체제로 이행하고 있고, 우리의 삶까지도 점점 상품화되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될 것이다.> - 제레미 리프킨
나처럼 개인적으로 읽고 쓰는 과정을 공개된 네트워크에 연결해 놓은 사람은 이런 말들이 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그동안 웹과 관련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살펴보더라도 제레미 리프킨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시대의 조짐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는 이미 내 일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근대와 탈근대의 중간 지점 어디에선가 서성이고 있는 자의식….근대의 비장한 그림자가 남긴 계급, 민족, 이데올로기 등의 말들이 탈역사, 탈정치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점.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감각이나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식을 빠르게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
사회적 네트워크가 점점 비중이 커지면서 그동안 사용되던 많은 개념들이 폐기처분되고 새로운 뜻을 갖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인간의 본성' 이라든지 '자아'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자아 관념이 파편화되고 다중의 인격을 갖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자아의 실종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하고 성숙한 의식의 단계다' 라는 진단까지 이미 나와 있고. 내 안에서 역시 많은 개념들과 정의들이 다시 조합되고, 지워지고 새로 탄생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는 모호하고 다양하며, 재미와 유머를 추구하며, 어수선하고 너그럽다. 절충을 중요하게 여기며 권위를 우습게 여긴다> 라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들린다.
인간의 행복을 통일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가 ? 고정되고 인식가능한 현실은 존재하는가 ? 단 하나의 이상적 사회체계가 있는가 ?... 하지만 이런 근대의 빛바랜 질문들이 무용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 답이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것. 또 아무리 국지적인 경험의 소산이라고 할지라도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다양한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시스템 안으로 흡수된다는 것…
어쨋거나 이 책을 읽고 부유하는 나의 '과거와 미래의 연결짓기'와는 별개로 책에 나오는 제레미 리프킨의 걱정거리는 다음과 같다.
1.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없다. 이전의 공동체와 상품화된 관계는 다른 전제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양립 불가능하다.
2. 각 개인의 체험이 사이버 스페이스로 자꾸 옮겨가고 그 속에서 체험을 문화상품으로 구입하는 추세가 일반화될 때 인간의 공감능력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그 안에서 성장한 세대의 상호소통은 어떤 방식 ? 개인 의식의 파편화 결과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안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3. 저자는 책의 결말을 정치적으로 각성된 지역문화, 내지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기대로 맺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저항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 존립에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단,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근본주의의 준동을 경계하자…. 골치 아프군….저자는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실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보면서도 이상적 사회체계가 단일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새로운 모양의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어찌보면 이 책을 보는 것보다 오시이 마모루 영화를 보거나 윌리엄 깁슨의 소설을 읽는 것이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갖추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나 영화, 그 환상의 세계 밖을 둘러보면 세상은 디지털을 경계로 두 부류로 나뉜다. 접속할 수 있는 자와 접속할 수 없는자. 경제적 사회적 격차 때문에 '접속'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날로 커져갈 것이고 앞으로의 정치담론을 지배할 것이다.
문제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생 동안 전화를 한 번도 걸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 사유는 다시 '근대'로 돌아간다. 뭐 이리 어렵냐...쩝.
한 번 돈을 지불하고 무엇을 영원히 소유하고 그것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자신이 가졌던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정 시간을 사용하는 대가로 일정 기간마다 돈을 지불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의 제한된 사용권을 얻을 뿐 절대 그 이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아웃소싱이나 리스 형식으로 일정 기간만 사용하는 것이 일일히 사들이고 팔아치우는 것보다 더 유리합니다. 재적 재산은 한 번의 지불로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가구같은 것과는 달리 소유권의 일부가 계속 저작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건보다는 지속적인 서비스가 더욱 큰 가치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 사회를 소유보다 접속을 선호하게 만듭니다. 제가 매달 내고 있는 통신 요금이 그 가까운 예입니다. 저는 전용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달동안 사용할 접속권을 얻은 것 뿐이죠.
저자는 이 흐름이 좋거나 나쁘다고 결론을 모으지는 않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각 분야에서의 변화가 어떤 섬찝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네트워크에 접속할 권리가 없는, 세계적으로 대다수인 사람들을 더욱 더 철저히 소외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 정보나 식물 품종과 같이 원래 우리가 손안에 쥐고 있던 것들에 대한 권리까지 빼앗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더 적은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겠죠.
이런 접속의 질서들을 제가 온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제가 최근에 꿈꾸던 세상은 거의 완전한 접속의 세상이었으니까요.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절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을 세상의 고유한 것인마냥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의 꿈이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죠. 조금은, "정말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될 지도 모르는 시점입니다.
독후감 7
왜 이 책을 읽고 이리도 심란한 마음이 드는건가. 책읽기도 글쓰기도 어렵다.
<소유는 가고 접속의 시대가 온다. 지금 우리는 체험의 판매에 기초를 둔 체제로 이행하고 있고, 우리의 삶까지도 점점 상품화되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될 것이다.> - 제레미 리프킨
나처럼 개인적으로 읽고 쓰는 과정을 공개된 네트워크에 연결해 놓은 사람은 이런 말들이 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그동안 웹과 관련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살펴보더라도 제레미 리프킨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시대의 조짐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는 이미 내 일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근대와 탈근대의 중간 지점 어디에선가 서성이고 있는 자의식….근대의 비장한 그림자가 남긴 계급, 민족, 이데올로기 등의 말들이 탈역사, 탈정치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점.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감각이나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식을 빠르게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
사회적 네트워크가 점점 비중이 커지면서 그동안 사용되던 많은 개념들이 폐기처분되고 새로운 뜻을 갖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인간의 본성' 이라든지 '자아'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자아 관념이 파편화되고 다중의 인격을 갖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자아의 실종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하고 성숙한 의식의 단계다' 라는 진단까지 이미 나와 있고. 내 안에서 역시 많은 개념들과 정의들이 다시 조합되고, 지워지고 새로 탄생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는 모호하고 다양하며, 재미와 유머를 추구하며, 어수선하고 너그럽다. 절충을 중요하게 여기며 권위를 우습게 여긴다> 라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들린다.
인간의 행복을 통일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가 ? 고정되고 인식가능한 현실은 존재하는가 ? 단 하나의 이상적 사회체계가 있는가 ?... 하지만 이런 근대의 빛바랜 질문들이 무용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 답이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것. 또 아무리 국지적인 경험의 소산이라고 할지라도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다양한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시스템 안으로 흡수된다는 것…
어쨋거나 이 책을 읽고 부유하는 나의 '과거와 미래의 연결짓기'와는 별개로 책에 나오는 제레미 리프킨의 걱정거리는 다음과 같다.
1.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없다. 이전의 공동체와 상품화된 관계는 다른 전제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양립 불가능하다.
2. 각 개인의 체험이 사이버 스페이스로 자꾸 옮겨가고 그 속에서 체험을 문화상품으로 구입하는 추세가 일반화될 때 인간의 공감능력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그 안에서 성장한 세대의 상호소통은 어떤 방식 ? 개인 의식의 파편화 결과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안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3. 저자는 책의 결말을 정치적으로 각성된 지역문화, 내지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기대로 맺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저항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 존립에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단,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근본주의의 준동을 경계하자…. 골치 아프군….저자는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실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보면서도 이상적 사회체계가 단일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새로운 모양의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어찌보면 이 책을 보는 것보다 오시이 마모루 영화를 보거나 윌리엄 깁슨의 소설을 읽는 것이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갖추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나 영화, 그 환상의 세계 밖을 둘러보면 세상은 디지털을 경계로 두 부류로 나뉜다. 접속할 수 있는 자와 접속할 수 없는자. 경제적 사회적 격차 때문에 '접속'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날로 커져갈 것이고 앞으로의 정치담론을 지배할 것이다.
문제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생 동안 전화를 한 번도 걸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 사유는 다시 '근대'로 돌아간다. 뭐 이리 어렵냐...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