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절정,참회록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와 한국현대시 감상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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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자화상, 절정,참회록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와 한국현대시 감상론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자화상

2.절정

3.참회록

본문내용

언급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현대시 감상론』은 윤동주의 전기를 연구하여 위와 같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굴욕감을 무릎쓰고 창씨개명을 하여 유학 수속을 마치는 일이 윤동주에 부끄러움으로 남았으리라는 생각에서 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2연의 내용처럼 진정으로 부끄럽고 욕된 것은 기쁨없이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무력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보람을 느낄 만한 목적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윤동주의 시에서 윤동주는 부끄러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그런 이유를 발견해 나가는 일이 평론하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또한『한국 현대시 감상론』은 전반적인 시의 설명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시의 난해어구를 해석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할지라도 다루는 시에 관한 것은 자세히 밝히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윤동주의 시가 고개 숙여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내적 성찰의 모습이라고 본다. 『한국 현대시 감상론』의 4연을 해석하는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해석하고 있는데,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가 4연이라는 구체적인 연을 제시해서 설명했더라면 더 쉽게 이해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3.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절음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왜 미래의 즐거운 날까지도 참회록을 써야 했는지를 교과서의 해석과 이남호의 해석 두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남호의 해석을 반박하고 있다.
윤동주를 이남호의 지적처럼 민족의 현실을 책임지기 위해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던 사랑과 순수의 세계를 일시적으로 포기해야 했던 인물로 보기 힘들다. 윤동주에게서 순수와 민족은 따로 이분법적 선택에 의해 존재하는 양단의 대립적 대상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순수와 사랑을 중시하였기에 민족을 사랑할 수 있었고 별 하나하나에 그리운 고국의 이름들을 대칭시킬 수 있었다. 그런점에서 3연의 참회는 시인의 순수를 다시 부각시키는 참회임에 틀림없다.
두 가지 해석을 놓고 한가지 입장을 주장하며, 반대편의 입장을 반박하는 것은 확실히 더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한국 현대시 감상론』처럼 윤동주가 쓴 미래의 참회록의 내용은 무엇인지 밝히면 더 좋은 해석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미래의 참회록의 내용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아무 기쁨도 없이 살고 있다는 나약한 고백을 한 것에 참회이다.
4.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에서는 밤에 손바닥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한국 현대시 감상론』에서 밤에 거울을 닦는 이유는 '밤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는 것은 자신의 온 힘을 기울여 닦아,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본다.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거울을 닦는 노력을 여성적 마조히즘의 전형이라고 까지 해석한다. 남성적인 마조히즘이 파괴적인 것으로 나타는데 반하여 죄의식과 속죄의 의미를 띠는 닦는-수행의 과정은 자신의 참회와 부정을 통하여 긍정을 찾는 여성적 마조히즘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그리고 '닦는' 행위가 그의 운명을 담고 있는 은유라고까지라고도 해석한다.
그는 끊임없이 '닦는' 수행 과정을 통해 긍정을 향한 자기 부정이라는 삶을 감행한다. 시인에게서 자기 부정과 자기 수행의 극치는 결국 시쓰기의 기원이라는 근원점으로 향하게 된다. 시인에게 시를 쓰는 것은 곧 부단히 거울을 닦는 행위와 일치한다. 동주는 '쉽게 씌어지는 시'를 부끄러워한다. 그의 시는 다음에 태어날 시를 기다리며 억제된 채 침묵하면서 속삭이는 부끄러움의 시이며 자기 부정의 시인 것이다.
'거울'의 의미해석도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서고 있다.
거울은 반성의 등가물이다. 어둡고 깊은 인간의 근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의 분열을 드러내는 쌀쌀맞은 나르시스의 본체이다. 거울은 내가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견지시키는 자기 연민/자기 학대의 물상인 것이다.
'닦는' 행위와 '거울'에 대한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의 두 가지 해석 방식은 조금은 과장된 해석인 것 같지만 참신한 해석 방식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시 해석하는 데 있어 명료한 언어로 시를 해석하지 못하고, 난해한 말을 일부러 섞어 쓴 듯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5.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5연을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의식으로 가득 찬 고독자의 상징'이라고 해석한다. 김남조, 김우창, 김승희의 여러 해석들도 열거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의미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 현대시 감상론』에서 '운석'은 죽은 별이므로 죽음의 은유로 보고, '홀로 걸어가는 것'은 자아의 고립된 상황을,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계속해서 참회록만 쓰는 사람이므로 즐겁지 않고 슬프다고 한 것이라 해석한다.
6. 시간의 문제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에서는 윤동주가 시간의 시인이라고 하여 작품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한다. 미래의 즐거운 날을 기다리는 것은 윤동주가 말하는 '희망'의 모습이라고 본다. 그래서 거울을 닦는 행위는 더 나은 미래를 보기 위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항상 과거와 연결되어 결코 행복하지만 않다고 한다. 즉 미래가 희망이라는 것은 일종의 환상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오히려 윤동주의 진정한 열망은 미래라는 이름으로 그 어느 날을 기다리기보다 현재의 끝없는 자기 수행의 과정, 현재의 자기 존재감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연결 고리를 지은 것은 참신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 현대시 감상론』의 해석 방식이 윤동주의 일생과 관련지어 시의 의미를 끌어들이고 있어 좀 더 명쾌한 해설 방식이라 생각되나 새로운 의미망을 끌여들었다는 점에는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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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12.10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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