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스미스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유진 스미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문
1. 유진 스미스의 약력
2. 유진 스미스의 철학
3. 유진 스미스의 작품 활동
1) 포토 에세이
[ 조산사 ]
[ 시골 의사 ]
2) 연출 사진
3) 그 외의 작품들
4. 유진 스미스의 작품세계
5. 유진 스미스에 대한 평가

Ⅲ. 결론

본문내용

익명의 헌신과 용기에 대한 예찬자였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결코 모순 되지 않는 도덕적 분노를 품고서 자기의 사진을 통해 전쟁과 비참과 불의를 고발한 작가인 것이다. 유진 스미스의 유명한 기록사진들은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준엄한 논고이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뉴스위크」지의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유진 스미스는 사진의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보도사진의 길을 고집한 사진가이다. 1936년 「라이프(Life)」지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보도사진의 전문지가 탄생되어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확장시켜 주어 단시간 내의 대량의 정보를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라이프」지를 기점으로 우후죽순 늘어난 포토저널리즘 시대가 펼쳐준 것이다. 즉 문자언어에 의한 '읽는다'는 행위가 영상언어와 결합되어 '보는 것'을 추가시켜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몫을 한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미스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라이프」지는 스미스에게 큰 도약의 발판이 된 셈이다. 그러나 누구나가 부러워하던 「라이프」지를 편집자와의 마찰로 인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사진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스미스의 성격상 본래 개성이 워낙 강하고 주장이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에 편집자와의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그가「라이프」지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itzer> 라는 작품 때문이었는데 이유인 즉 슈바이처 박사를 찍을 때의 의도는 대개 성인으로 바라보는 슈바이처 박사라는 입장에서 촬영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보통 사람으로 표현하되 다만 그의 생명경외 정신,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인데 편집자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선별하여 트리밍에서 레이아웃까지 고쳐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을 이유에서였다. 이후 1955년에 사진 원고 은행격인「매그넘(Magnum)」에 가담하여 작가 의지대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 활동을 벌이다 워낙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1959년에 매그넘도 탈퇴하게 된다. 스미스의 사진세계에 있어 가장 주된 요지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처럼 "사랑"이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살길을 위해 잔인함과 폭력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49년의 <시골의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1951년의 <스페인 마을>, <조산원>,<산파> 1952년의 <촬영중인 찰리 채플린>, 1954년의 <자비로운 슈바이처>, 1972년의 <미나마따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중 1951년 6월 4일자 라이프지에 실린 <스페인 마을>은 카르멘과 투우, 정열적인 춤으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을 촬영한 것으로 파시스트 프랑코의 압정 밑에서 찌든 민중들의 진정한 생활과 감정을 잘 표현해준 작품으로서 이 작품으로 인하여 U. S 카메라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간가족 전에서도 그의 사진은 높이 평가받았는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스미스의 <낙원 뜰에 이르는 길 A Walk to Paradise Garden>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들을 촬영한 작품인데 이는 두 아이가 숲을 빠져나가 미래의 길로 향한다는 느낌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진 스미스는 1942년부터 그가 부상을 당하는 45년까지 3년여에 걸쳐 태평양 전쟁의 종군 사진가로도 활약을 하여 아래의 <유일한 생존자>를 촬영할 수 있었다. 1944년 태평양전쟁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한층 더 치열해져가고 있을 때 일본군은 가장 중요한 거점인 사이판의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동굴들을 요새지로 무장하여 생활하였는데 이 사이판이 1944년 7월 7일에 미군의 맹공 앞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이때 촬영된 것으로서 미군의 화염병사기가 내뿜은 화염으로 인하여 초토화된 사이판의 한 동굴에서 수백 명의 일본군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시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숨결이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가 미군 병사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구출된 순간이었다. 유진스미스의 <유일한 생존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사진이라고 평해졌는데 비록 전쟁이 서로를 살상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지만 그 속에서도 어린 생명을 소중히 하는 군인의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또한 진한 인간애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아담스는 유진스미스를 "다큐멘터리 사진이 진실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요소의 강력함과 훌륭한 기술과 정신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증명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Ⅲ. 결론
유진 스미스는 처음에는 단지 인류애를 이야기 하는 작가로 다가 왔다. 그의 사진들, 조산사, 미나마따, 시골 의사, 종군 기자 시절의 작품들은 그런 내 생각에 더욱 더 확신을 주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고, 행동하게 하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유진 스미스의 사진집에서 보여진 그는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묵묵히 휴머니즘적 작업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 어릴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만 집착하고 몰두 하는 모습, 흔히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스스로 완벽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그는 평범한 생활을 해내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이고, 약에 중독 되어갔고, 가족들과 멀어져 버렸다. 이런 그의 모습을 접한 후 그의 사진을 다시 보았을 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다. 그의 사진이 이전에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 세상으로 보였다면 이제는 극단적인 완벽성의 추구에 따른 결과물로 보이는 것이다. 천재의 광기의 산물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가 부럽기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유진 스미스와 포토 에세이 그리고 연출 사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 과제를 마치면서 나도 나만의 포토 에세이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 가격1,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3.12.11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752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