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사관계의 발전과정 - 노사관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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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한국노사관계의 태동과 방임적 노사관계
1. 한국노사관계의 태동(1945-1950)
2. 정치적 혼란기의 노사관계(1950-1961)

Ⅲ. 경제성장기의 상황과 억압적 노사관계
1. 경제개발기의 노사관계(1962-1971)
2. 고도성장기의 노사관계(1972-1980)

Ⅳ. 사회갈등기의 상황과 대립적 노사관계
1. 사회적 갈등기의 노사관계(1981-1986)
2. 사회적 욕구분출기의 노사관계(1987-1990)

본문내용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었다.
2. 사회적 욕구분출기의 노사관계(1987-1990)
1) 정치 경제적 상황
87년의 6 29선언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지만, 그동안 산업화의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요구되어 온 민주화운동의 성과였다. 6 29선언이 있은 다음부터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민주화를 위한 진통과 몸부림은 한국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접어드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의 민주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하였고, 90년대의 문민정부의 시대를 여는 서곡이 되었다.
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수출증대와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였지만 80년대 후반의 한국경제는 대외경제여건이 악화되면서 86년 이후 3년간 게속된 호황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물가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규모도 대폭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대내적으로는 성장호황에 따른 경기조정압력이 표출된데다 이전에 이루어진 원화절상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났으며 정치경제의 민주화과정에서 노사분규가 심화되고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되고 우리나라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이 더욱 높아졌다.
6 29 이후의 80년대 후반기의 노사관계는 정치적 민주화에 편승해서 노동쟁의의 양과 질, 조직형태와 규모, 그리고 노동운동의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일대 획기적 변화를 맞이한 시기였다.
개발경제시대 이후의 산업화과정에서 그동안 누적되어 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87년 6 29선언에 의한 힘의 공백상택 상태를 계기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특히 그동안 쌓여 왔던 노사문제가 폭발하여 전국적인 분규상태로 번졌다. 6 29 선언 직후에는 분규를 수습할 만한 기업의 역량이나 경영자의 자세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자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기구가 미비하였고, 노사교섭의 규칙, 노사관행, 노사관계 제도 등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태에서 노동쟁의는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고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기존노조와 민주노조, 근로자 간의 노노분쟁, 사용자측의 실권없는 고용사장에 대한 불신과 교섭능력 부족, 노조의 대표성 부족과 노조대표자의 노조경영능력과 지도이념의 미흡 등의 문제들이 노출되었다. 그러나 1987년의 노사분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근로자와 노동조합에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움직임과 문제점을 제기하여 한국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노사관계에 있어서 이 시기의 긍정적인 의미는 ①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진통으로 과거의 권위주의와 타율적 노사관계의 청산과 함께 자율 민주 참여의 새로운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과 ② 노동운동의 저변이 확대되어 노동운동의 본격적인 활성화로 노사문제해결에 있어서 노사대등의 여건이 구비되었다는 점, 그리고 ③ 80년대의 후반 초기의 경험부족으로 인한 미숙한 노사협상과 문제해결노력들이 한국노사관계의 수준을 한단계 성숙시키는 진보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2) 노사관계의 변화내용과 특징 :
6.29 선언으로 이제까지 정부가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고 간섭하던 정책과 노동운동을 억제하던 정책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는 노사관계에 다음과 같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가.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노조조직의 급격한 확대
자주적 노동조합조직에 대한 근로자들의 조직욕구가 분출되어 노동조합조직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동안 각종 법률상의 제약이나 사용자의 방해로 억제되어 왔던 노동조합의 설립이 노동조합법의 개정(87. 11. 28)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노동운동의 고양기를 맞게 되었다. 조직측면에서 볼 때, 노조조직률이 과거와 달리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높았는데 대기업에서 노동조합들이 새로이 결성되고 이들이 노동운동과 쟁의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연대행동과 연대조직화가 이루어져 지역별, 업종별, 그룹별 노동조합조직의 연대가 강화되었다. 특히 금융, 병원, 언론, 연구소, 학교 등 사무직근로자들의 조직화가 확대됨으로써 소위 화이트칼라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노사분쟁의 이슈도 당양하게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생활급 확보를 위한 임금인상, 임금 격차 해소 등 임금문제를 둘러싼 이익분쟁,권위주의에서 오는 비인간적 처우개선, 권리분쟁으로 부당노동행위나 노조결성거부를 둘러싼 조직분규, 경제와 노사관계의 민주화 요구, 전제적인 노무관리 철폐, 노사관계제도 개선, 노사관계제도 개혁 요구, 노조의 자주적 결성 요구, 신규 노동조합 결성, 어용노조의 민주화요구, 노동운동 전력자(블랙리스트)에 대한 해고반대 투쟁, 법외조합의 조직활동 보장을 위한 투쟁 등이다.
나. 노사분규의 급격한 증가와 전업종으로의 확산
그동안 활동의 규제를 받아왔던 기존의 노동조합과 새로 결성된 노동조합에서 모두 노사분규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6 29선언 이후 2개월 동안에 노사분규가 집중적으로 일어나 1987년에는 총 3,748건이 발생하였는데, 1988년에 들어오면서 쟁의건수가 1,873건, 1989년에 1,616건, 1990년에 322건, 1991년에 234건으로 매년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쟁의방식 또한 합법적 절차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배무기, 1991,) 그 후에는 노사분규의 빈도와 강도가 계속 줄어들어 갔지만 이전의 시대와 비교할 때, 분규건수의 엄청난 증가라는 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들 노사분규에 있어서의 특징은 시위, 농성 및 파업이라는 극한적 대립상태가 주종을 이루었고, 특히 7, 8월의 노동쟁의는 거의 대부분이 실정법을 무시한 선농성 후협상의 불법적인 파업농성이었다. 그리고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분규 발생률이 높았고 분규발생업종도 제조, 운수, 광업에서 전업종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과거 경공업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여성근로자 중심에서 남성근로자 중심으로, 그리고 근로환경과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재벌급 대기업에도 분규가 일어났었다. 이들 초기의 분규에 대해서는 노동쟁의 조정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으로서의 노동위원회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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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8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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