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외교정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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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외교정책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트루먼 때의 쟁점 : 북대서양 조약

Ⅲ. 아이젠하워 때의 쟁점 :
1. 수에즈 운하 위기와 미국의 중동정책
2. 유럽경제공동체 창설

Ⅳ. 케네디 때의 쟁점 : 쿠바 미사일 위기

Ⅴ. 존슨 때의 쟁점 : 베트남 전쟁

Ⅵ. 닉슨 때의 쟁점 : 닉슨 독트린

Ⅶ. 포드 때의 쟁점 : 에너지 의존과 동맹문제

Ⅷ. 카터 때의 쟁점 : 핵확산 금지정책

Ⅸ. 레이건 때의 쟁점 : 이란·이라크 전쟁

Ⅹ. 결 론

본문내용

. 다른 어떠한 이슬람 국가보다도 더 많은 시아파 인구를 가진 이라크는 전통적인 '코란'의 가르침에서 연유한 문화적 해방보다는 서구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개념에 기반한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 정권과 같은 비정통적 정권을 향한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자 선전에 효율적인 표적이 되어 왔었다. 이라크 후세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이집트 같은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그 지역의 정권들에게 부여한 위협 때문에 그들로부터 실질적인 군사 원조를 받았다. 1984년 까지 특히 프랑스와 소련으로부터 무기선적과 더불어 이라크는 아랍세계로부터 총 3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 원조를 받았다. 이에 다른 아랍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후세인 역시 이란을 공격하여 호메이니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당시 이란은 지리적으로 상당한 규모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소련과 국경선을 접하고, 호르무즈 해협과 그것을 넘어서는 페르시아 만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호메이니가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미국에게 광대한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나라였다.
이라크는 1980년 9월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을 개시하여 초기에 군사적 성공을 이루었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이란군의 연속적인 맹공에 부딪혔다. 이란군은 주기적으로 이라크 영토를 침입하여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킬 정도로 위협을 가했다. 전쟁 반발 후 몇 주 동안 이라크는 대략 4천 평방마일의 이란 영토를 점령하였지만 이란이 반격을 개시하자 점령한 거의 모든 영토를 이란에게 다시 돌려 주어야 했다. 그 이후로 전쟁은 이라크가 방어하고 있는 연속적인 군사적 위치에 대한 이란의 일련의 맹공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음에 소련은 이란을 지원하였지만 이란의 공산당인 투드당을 탄압한 호메이니가 취한 반소련 입장과 더불어 이란이 승리할 가능성을 보이자 탄약, 무기, 대포, 항공기 등의 형태로 이라크에게 대규모 군사원조를 하였다. 더군다나 1984년 초 소련의 직접적인 원조·무원조하에 이라크는 참호를 파고 방어하고 있던 이란군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전쟁을 확대시키는 방안으로 이라크는 프랑스가 공급한 전투기와 엑소시트 공대지 미사일로 이란의 유전시설물을 공격했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에 있는 유조선들과 다른 해상선박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에 대응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는 아라비아 해에 해군력을 배치시켰다. 레이건은 해협을 통한 석유수송의 공급중단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양쪽의 손실은 엄청났다. 1984년까지 이란의 군 사상자는 50만명 정도로 추산되었고 이란의 석유생산 시설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레이건에게 있어서 이 전쟁의 결과들 중 하나는 다른 걸프국가들과 미국 그리고 서유럽국가들 사이의 밀접한 군사협력에 관한 제한을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완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확전으로 그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았으나 이들 정부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이방인이며 적대국가라고 여겼던 미국과 밀접한 군사협력을 맺음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정통성이 약화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지받기 위해 미국과 정치적으로 거리를 둔다면, 이들 정부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 운동으로 상징되는 혁명세력들에게 노출되는 위험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부분적인 방법은 페르시아만 연안을 따라 위치한 위협받는 국가들간에 더 긴밀한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의 이익은 이란·이라크 어느 국가도 승리하지 않는데 있었다. 호메이니의 이란과 제휴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정권이 현존 이라크 정부를 대체했다면 그것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페르시아만의 산유국가들뿐만 아니라 요르단과 이집트 같은 나라에게도 추가적인 충격파를 던졌을 것이다. 또한 장기전으로 치달은 이란·이라크 전쟁은 앞에서 언급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걸프지역 국가들과 중동지역의 석유에 의존하는 서방세계에 다시 한번 대단한 충격을 주고 그 대책을 강구케 하였으며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후 아랍국가들에게 있어서이란을 지원했던 시리아, 리비아, 남예멘과 같이 친소련 국가들과 이라크를 지원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의 국가들이 심각하게 양극화 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되다.
Ⅹ. 결 론
지금까지 트루먼부터 레이건까지 각각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쟁점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 중요도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또한 사건이라는 것이 각각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대에 걸쳐 일어나고 종결되기 때문에 어느 대통령 시기에 그러한 쟁점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다. 또한 교양으로서 국제정치학을 듣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미국외교정책사'라는 책을 이해할만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그나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쟁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내 자신 나름대로의 기준은 그 쟁점에 의한 국제체제의 변화 양상과 미국과 소련의 관계 변화였다. 어떠한 국제정치적 지식도 갖고 있지 않는 나였지만 냉전시대를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따져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미국과 가장 밀접한 동맹국임을 자처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일말의 비판도 없이 적극 동의하고 협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안보적 문제나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방어하고 이끌어 나갈 능력이 부족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국의 패권주의 정책에 이끌려 갈 수만은 없다. 때문에 우리가 보다 빠른 시간내에 미국과의 종속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을 알아야 우리도 우리의 의지에 따라 외교정책을 자주적으로 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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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23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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