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성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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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생한 인물이었다. 마리우스는 스스로 직업 군대를 육성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는 궁극적으로 게르만 부족을 패배시켰는데, 그리하여 그 자신이 개혁하고 있던 로마군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는 군인이 되려면 일정한 재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하였고, 지원병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로마군은 마리우스를 자신의 후원자로 보는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되게 되었다. 마리우스는 일곱 번이나 콘술에 선출되었다.
기원전 81년에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그의 군대는 기원전 90년대에 이탈리아 전쟁에서 명성을 얻은 장군이자 정치가인 술라(약 기원전 138-78년)에 의하여 패배 당하였다. 기원전 80년대에는 로마에서 원로원 분파 사이에 내란이 발생하였다. 일군의 집단이 술라의 뒤를 따라 기원전 88년에 로마에 침입하였다. 다음 해에 술라는 흑해 남쪽 연안에서 폰투스 왕국을 통치하고 있던 미트리다테스에 대항한 원정을 떠났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경쟁적인 파당이 로마를 장악하였다. 술라는 기원전 82년에 다시 한 번 로마를 장악하였다. 수백 명의 그의 반대자들이 학살당하였고, 그는 스스로 종신 독재관 자리에 올랐다.
술라는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로마를 재편하였다. 그는 원로원의 권력을 축소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믿었다. 즉, 호민관들과 군대 내의 강력한 장군들이 그러하였다. 그래서 술라는 호민관들이 원로원의 동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법안을 제정하였다. 그는 호민관이 다른 직책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또 다른 법을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호민관 직책이 정치적인 야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다지 매력을 끌지 못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술라는 속주 총독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하였는데, 이 조치는 어떤 사령관이 자신의 군대에서 영웅이 되어 로마로 진격해 들어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술라는 자신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교묘하게 막고자 하였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의 경력을 보면 로마 공화정이 존속된 마지막 시기에 권력을 장악하게 된 길을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세 단계를 따랐다. 첫 번째 단계는 원로원의 특권에 대해 대중이 품고있던 불만만이 아니라, 대중에 대한 원로원의 두려움을 이용한 것이다. 다음 단계로서 어떠한 장군이나 영웅이 등장하여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을 물리치도록 해주었다. 그런 다음에 사병(私兵)이 조직되고, 승리자는 로마인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안겨다주기 위하여 로마로 진군해 들어왔다. 이런 유형은 기원전 60년대에는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기원전 50년대에는 크라수스에 의하여, 기원전 40년대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하여 반복되었다.
마크 안토니우스(약 기원전 83-30년)도 기원전 30년대에 이러한 길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카이사르의 손자 조카인 옥타비아누스(기원전 63-기원후 14)에 의하여 제지당하였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죽었을 때 권력을 장악하고 원로원을 폐지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카이사르의 진정한 후계자는 안토니우스가 아니라 옥타비아누스임이 밝혀졌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는 또 다른 내전을 시작하기보다는 제2차 삼두정치로써 동맹을 맺었다. 로마 세계는 이제 이 통치자들 사이에 분할되었다.(안토니우스 : 동부의 속주들, 옥타비아누스 : 서부의 속주들, 레피두스 : 시칠리와 북아프리카)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와 동맹을 체결했기 때문에 안토니우스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켰다. 그런 다음 그는 원로원과 확실한 동맹 관계를 채결하고, 레피두스는 제거하였다.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결별할 무렵이면 로마인들은 지쳐있었다. 그들은 1백년 동안이나 내전 상태를 겪어내야 했다. 그들은 평화를 원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계를 끊임없이 방어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즐기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로 변절했다는 소문에 의하여 기분이 상하였다. 결국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는 패배 당하였다. 귀족과 평민이 모두가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로 불리게 된 옥타비아누스 아래에서 결집하였다. 악티움 해전과 더불어 로마 공화정은 종식되었고, 로마 제국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번 레포트를 계기로 정말 로마에 대해 새삼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영화 속의 시대가 나에게 더욱 깊이 와 닿았으며 그 시대의 전반적 문화와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키워드

로마,   성립,   발전,   공화정,   호민관,   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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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3.12.24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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