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문제와 한국의 대응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일본군`위안부`문제의 본질

3. 한국정부의 대응
1) 한국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 한국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4. 한국국민의 대응
1) 한국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 한국국민은 무엇을 했는가?
3) 한국국민은 왜 충분히 하지 못했는가?

5. 맺음말

본문내용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지금까지의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합병늑약」은 유효하며, 따라서 식민지 지배는 합법이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협정」에 의해 한국에 제공한 자금은 '경제협력자금 혹은 독립축하금'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한 일본측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잘못된 과거와 관련하여 한국측에 배상을 한 적은 한번도 없는 것이 된다. 잘못한 일이 없다고 본다면 배상할 것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 논리는 잘못한 일이 있다면 배상할 것도 있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리고 「공동선언」에서 일본 정부는 분명히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죄를 하였다." 다시 말해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국에 대해 죄를 빌어야 할 잘못을 하였고 그로 인해 손해와 고통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공동선언」에서 일본 정부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잘못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금까지 한번도 한 적이 없는 배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정부는 그러한 일본정부에게 당연히 배상을 청구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2) 한국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1) 한국정부의 조치
1992년 1월 '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을 설치하여 문서자료 조사, '정신대 피해자 신고' 접수,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발간 <-->이후 활동 부진
1993년 7월 「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 발효<-->"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되어 일본군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에 대하여 "국가가 인도주의정신에 입각하여" 최소한의 "보호"와 "지원"을 제공.
1996년 이후 국제연합 인권위원회 등에서 개인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국가보상을 요구, "피해자들이 총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쿠마라스와미 보고서, 맥두걸 보고서
1997년 11월 18일 국회에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통과.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정부, 일본정부와 동맹관계에 있던 정부, 일본정부의 우월한 힘이 미치던 정부의 지시 또는 연계하에 인종, 민족,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사람을 학살 학대하는 일에 관여한 자'에 대한 입국 금지 가능<-->입국금지 대상자의 명단이 현재까지도 미작성. 스스로 일본군'위안소'를 만들었다고 '자백'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가 입국금지되기는 커녕 1999년 2월 26일 한국정부가 세계은행(IBRD)과 공동주최한 국제회의에 초대되어 '정치지도자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함.
1998년 5월 7일 피해자 1인당 국민성금 300만원을 포함한 생활안정지원금 3,450만원씩을 지급<-->"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의 배상청구는 하지 않"는다는 방침
(2) 근본적인 문제로서의 의식의 한계
1993년 3월 13일 김영삼 대통령 "종군위안부문제는 일본에 대해 물직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방침", "물질적 보상은 필요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새로운 한일관계정립에 접할 수 있을 것"
1998년 10월 8일 「한일공동선언」 발표 후 김대중 대통령 "과거청산 문제는 일단락된 것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는 재론하지 않겠다", "한일관계의 과거는 청산되었다".
천황의 방한 추진
* 북일 국교교섭
4. 한국국민의 대응
1) 한국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주인으로서의 국민
대외관계에 소극적인 정부의 견인--sofa
2) 한국국민은 무엇을 했는가?
할머니들
정대협--1990년 11월 결성. 실태조사 성명 자료집 수요집회 2000년 법정
대구시민모임
--> 문제에 대한 이해의 확산. 피해자들에 대한 원조.
* 일본에서의 시민운동의 새로운 국면의 형성
3) 한국국민은 왜 충분히 하지 못했는가?
여성차별적 구조
--민족차별+여성차별의 희생자로서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족과 집안과 집단(민족)의 '명예'를 우선시키는 사회 / 활보하는 가해자와 울면서 잠드는 피해자
--40년 이상 강요된 침묵
--> 근본적인 문제로서의 의식의 한계
5. 맺음말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일본이 만든 것이고 악화시켜 온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정부와 한국국민 또한 그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국정부는 배상과 범죄자의 처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보호라고 하는 자신의 존립근거를 지키는 일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만일 한국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그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국민 또한 배상과 범죄자의 처벌을 위해 한국정부를 견인하고 일본정부를 추궁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국민은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여성차별적 측면을 인식하고 그러한 측면을 만들어내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바꾸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일차적인 해결은 할머니들의 피해의 구제이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는 그러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 잘못된 사회구조의 개혁에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할머니들을 진정으로 '안심'하게 하는 길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창록 외2,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를 중심으로」, 『法學硏究』 (釜山大學校 法科大學 法學硏究所) 제37권 제1호, 1996.12., 83-127면.
김창록, 「일본군'위안부'문제의 법적 해결을 위한 하나의 모색 -- 시모노세키판결을 중심으로--」, 『人權과 正義』 제167호, 1998.11., 86-102면.
김창록, 「한일관계와 과거청산 - '한일 신파트너십'을 실마리로 - 」, 『國際地域問題硏究』(부산대학교 국제지역문제연구소), 제17권 제1호, 1999.3., 43-91면
김창록, 「일본군'위안부'문제의 법적 해결 가능성--피해국(한국)의 입장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국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모임 법과 사회이론연구회,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과 일본군'위안부'문제』, 1999.6.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3.12.24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039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